고통스러운 순간을 기록하여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보내다.
마지막으로 약을 먹은 순간이 2016년 가을 즈음이었다. 중증 공황장애를 8년 동안 앓은 나는 마지막 10개월을 좋은 선생님을 만나 기적처럼 이 지독한 병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공황장애를 앓은 이야기를 풀어내면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올 양이지만,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몰라서 글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혼자만 간직하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저냥 끄적끄적 기억의 조각을 끄집어내어 일단 적어라도 봐야겠다.
나는 둘째를 출산하고 공황장애가 더욱 심해졌었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앓게 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빨리 뛰는 심장 때문에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었었다. 그 때문에 이런저런 검사를 하다가 24시간 홀터 검사로 부정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학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심장 자체에 어떤 질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불안이 증폭되어 더욱 불편을 느끼는 것 같다면서 “정신과”에 가보라는 말이었다.
그 전에도 정신과에 다닌 적이 있지만, 딱히 효과를 보지 못하고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예측 불가한 죽음에 대한 공포감과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었다. 내가 앓는 병명이 사실 그때까지도 ‘공황장애’라는 것도 몰랐다. 이 병은 병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치료에 도움이 되는 병이었음에도 그 병원에서는 특별히 내 병명을 알려주거나 내 병에 대해 이해시키는 것보다는 약 처방만 계속해 주었다. 그러다가 마음대로 단약을 하게 되고, 또 심해지고 뭐 그런 식으로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터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았는데, 두 번째 만난 의사 선생님은 아래에 해당하는 의미에서 참 좋은 분이셨다.
1) 나의 병명을 알려주셨다.
전형적인 공황장애 증상이라고 하시며, 이 병이 단순히 불안하기만 한 병이 아니라 신체화 증상을 동반한 다양한 심리적 양상을 나타내는 병이라는 것 등 병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동안 내 병에 대해서 추측만 하고 있었는데, 안개 낀 길 위에 침침하던 눈앞에 희망 한 줄기가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 약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내가 먹은 약은 렉사프로, 리보트릴이었다. 렉사프로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로 세로토닌이 어떤 물질인지 상세히 설명해 주시면서, 이 약이 내 몸에 어떤 작용을 일으킬 것인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다. 공황장애 환우들은 대개 의심이 많다. 뭐 조금 더 부드럽게 표현해 보자면, 조심성이 많다. 아무래도 불안이 높은만큼 돌다리도 10번 20번 100번은 두드려보게 된다.
3)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바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 이야기할 것들을 적어갔었다.
“매일 새벽 6시면 갑자기 눈이 떠지는데 누운 상태로도 심장박동이 150까지 뛰어 응급실에 2-3번 갔었잖아요. 그런데 제가 이번 주에는 마음먹고 깊은 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일어나서 리보트릴을 한 알 먹어봤어요. 그리고 내 몸에 나타난 신체 증상들과 기분을 적어보고 언제 진정되는지 시간을 적으면서 관찰을 해 봤는데, 약이 작용할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진정이 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지금 괜찮아지는 게 약 때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조절한 건가? 싶더라고요. 약 때문이 아니라 제가 불안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맞나요?”
나는 내가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불안할 때 내가 한 행동들이 진정된 후에는 죄책감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엄청나게 물들어 버릴 때가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공황장애 환우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상 중에 ‘브레인 포그(brain fog) 현상이 있다. 머릿속이 탁해지는 현상. 그래서 나는 기억도 조작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일지를 썼었다. 그것을 토대로 셀프 모니터링 한 뒤에 궁금한 점들을 선생님을 만나면 하나하나 짚어 나가면서 생각의 길을 잡았다.
어떤 날은 40분, 어떤 날은 2시간 가까이 상담을 해 주셨다. 당시에는 병원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정말 충분히 상담을 해 주셨고, 사실 선생님께서도 내가 신기한 듯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놀라워하실 때가 많았다. 지금은 많이 바빠지셔서 그만큼 상담하지 못하실 것 같은데, 나는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무증상으로 3년 정도 지내다가 또 한 번 공황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이 많이 되었던지라 잘 넘겼고 지금까지 무증상으로 잘 지내고 있다.
공황장애 극복 tip.
1) 병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 - 검증된 도서나 카페 커뮤니티를 활용.
2) 약보다는 상담 위주의 병원을 찾길!
3) 일지를 쓰면서 철저한 셀프 모니터링
4) 두근거림, 식은땀, 죽을 것 같은 공포감, 숨을 쉴 수 없는 것 같은 느낌, 심장이 찌릿찌릿하다든지 특정 부분이 지속적으로 불편한 등과 같은 증상에 집중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보는 연습을 하기.
5) 증상이 너무 심할 때는 약으로 신체 증상 줄이며, 단약은 서서히! - 남에게는 없는 금단 증상이 나에게는 나타날 수 있으니까!
6) 때로는 죽어도 안될 것 같은 한계에 도전 함으로써,
“이 병으로 절대 죽거나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 ‘7살 나의 딸아이와 단 둘만 떠난 홍콩 여행’ 편 참고!
그 외에도 정말 적을 것들이 많지만,
한 번에 다 풀면 재미없는 것이 에. 피. 소. 드. 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