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만들어 먹는 일은 따지고 보면 짜장을 만들어 먹은 일부터 시작되었다.
그건 햇 양파가 나오기 시작한, 막 더위가 시작된 날이었다.
양념소불고기와 볶은 양파를 곁들인 일, 그러니까 그 양파의 맛을 본 것에서 시작되어 마른 팬에 그슬린 양파에 삼겹살 조각도 바짝 구워서 기름을 내고 짜장소스를 섞는다면 그건 오래전 동네 맛집이었던 중국집 주방장님이 잘 만들어내던 간짜장이 될 테다. 잘게 썬 양파들과 검은 윤기가 흐르는 간짜장 한 그릇을 먹으려고 1시간 거리를 차로 달려서 점심을 먹으러 드나들던 우리는, 식사도 해결하고 (때마침 이사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집도 해결하는 실용적인 결정으로, 이래저래 이 동네에서 살아보자 마음을 먹은 것이다. 간짜장 만들기에서 예상외로 고민된 것은 춘장을 고르는 일이었다. 내가 갈 수 있는 범위의 두 마트에 파는 춘장은 세 종류가 있었는데, 신중하게 고르려고 판매대 앞에서 검색을 시작한 나는 우연히 발견한, 진중하기 그지없는 종류별 비교 글을 보다가, 마트가 붐비기 시작하는 오후 4시, 통로에서 걸리적거리지 않으려고 에라 모르겠다며 가장 익숙한 이름의 제품을 잡아 집으로 왔다. 그 일은 처음이었지만 성공적이었다. 이걸 할 수 있는 거구나, 부담이 없어서였을까.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 가게는 없어졌고, 그 사이 텃밭을 오가며 채소들과 함께 매일매일 자라난 우리의 요리는 꾀 근사해졌고 이제 지금, 양파를 볶아서 짬뽕을 만들 때가 온 것이다. 이걸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짬뽕이라는 것이, 웃기지도 않는다. 배추를 알고 양파를 맛보고 오징어와 새우를 다듬고 올리브오일과 고춧가루, 간장, 소금이 두루두루 익숙해지고 나니, '아니, 이것들을 다 볶아서 국물을 내 볼까?' 하면 짬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짬뽕을 만들기까지 1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 된다. 그전에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고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필요가 생기기도 했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기술과 도구를 장착한 것과 필요한 재료들이 자연스레 생활궤도에 들어온 것이다. 모든 것들이 만난, 나는 때에 따라 고기나 오징어, 양파, 배추를 볶고 간장도 섞고, 올리브오일, 고춧가루를 휘리릭 감싸서 물을 붓고는 붉은 국물을 우려 한 그릇 담아서 식탁에 올리는 것이다. PVC 복층유리 이중창과 창과 창, 그 사이 보강한 폼보드까지 가뿐히 통과하는 한 여름의 열기도 막을 수 없다. 부엌 쪽 이중창은 바깥은 투명유리 안쪽은 반투명 유리로 되어 있고 그 사이 A1 크기 폼보드를 가로로 붙이고, 세로로 세워놓았기 때문에 단조로운 창에 수평, 수직으로 지워진 그늘이 있지만 소용없다. 안 밖에서 끓어오르는 지금, 아랑곳하지 말고 창을 열자. 이쪽, 저 안쪽 창을 열고 열기를 마시면, 모든 것들이 짬뽕되는 어떤, 탁, 트이는 순간 '아, 시원하다.'
뒤섞인 모든 것들이 끓어오른다.
그전에, 내가 만드는 것이 볶음인지 탕인지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물을 붓는 순간을 알아채려면, 볶는 것에 열중하다 보면 이대로 계속 볶는 것은 어떤가 이걸 접시에 담아 내놓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때 물을 붓지 않으면 기름과 고춧가루의 신선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짬뽕이라지만 막무가내로 집어넣다가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양파는 양파대로, 배추는 배추대로, 올리브오일과 고춧가루는 되도록 신선함이 유지되도록,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제각각의 타이밍이 중요하다. 물론 이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드는 일은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짬뽕이라는 말은, 음식은 일본어에서 왔다고 한다, 일본 음식 짬뽕은 중국 유학생이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짬뽕이라는 음식의 역사도 그렇게 길지는 않다. 짬뽕은 고춧가루와 함께 여기서 맺어졌다. 여러 작가님들이 소개해주시는 맛깔스러운 식당의 그것들은 반질하며 기름기 도는 오렌지붉은빛 사이, 탱탱하게 익은 해산물과 그슬린 채소들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다.
그러면 그 음식과 함께 짬뽕이라는 의미도 함께 온 것일까? 우리 조상님들은 '짬뽕'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짬뽕이라는 의미의 말보다 이것저것이 조금씩 섞인 '얼치기'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아니, 사실은 그렇게 어설프게 이도저도 아니게 섞지 말고, 각각의 특성이 잘 드러나게 만들어야 하는 난도 높은 잡채가 있는 것일까, 어려움 그 잡채다. 어렵군, 모든 것을 살리면서 탕으로 풀어내는 잡탕? 짬뽕의 순화어는 중국 음식에서 온 '초마면'이라고 한다. 그럼 짬뽕의 순화어는 융합일까? 혼합일까. 혼합인 것 같지만 더위 속에서도 펄펄 끓여내는 것이 융합에 가까울 것 같은데. '웃기는 짬뽕이네'를 대체할 단어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있다. 뭘 말해도 어감이 살지 않는다. 순화하지 말고 씨게 말해야겠다. 사실 쓸 일은 거의 없다.
"밥 먹자!"
"웅, 맛있어!"
"재료가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없는 게 있어? 말만 해 내가 모든 재료를 공급해 줄게."
근황,
수시로 짬뽕 만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