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 주문

by 고양이삼거리

오늘은 피자집 1 + 1 할인 행사가 있는 날. 비가 오지만 멀리 떨어진 매장에서 주문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r이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서 돌아오려면, 지금은 한 시간 전이고 내 계산에 따라 ( 비 오니까 피자는 주문이 조금 없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주문하고 늦어도 20분 정도면 가져갈 수 있겠지. ) 조금 이르게 출발한 것 같으니까 걸어가기로 한다. 올 때는 버스를 탈 것이다. 오랜만에 비 오는 길을 걷는 것은 기분 좋다.


어서 오세요.


흠., 매장에 이미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비옷 입은 배달 기사님도 두 분이나 계시고 어르신들도 계신다. 모두들 스마트 기기를 보고 있다. 바쁜 주방 사람들을 주시하며 카운터에 바짝 서서 나에게 말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매장의 스테인리스 집기들은 뽀얗게 새것의 자태를 유지하고 있고 세로로 잘 정리된 납작한 포장박스가 이곳이 피잣집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잘 된 배기설비 탓에 고소하고 진득한 냄새가 풍기는 것도 아니고 요리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다, 건조한 주방과 다르게 비 오는 오늘, 기다리는 사람들은 축축하다. 어서 맞춤 비닐에 쌓인 납작하고 모서리 패인 상자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가 뚜껑 열기를 바란다. 간혹 울리는 주문 접수 소리, 전화번호 뒷자리를 묻고 답하는 것으로 대신되는 확인절차가 마무리되면 하나 둘 매장을 빠저나 간다.


주문하셨나요?

아니요,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뭘로 드릴까요?


나는 주문과 결제를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계속 지켜보아도 매장에서 주문하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나보다 나중에 온 사람들도 먼저 번호를 확인하고는 유유히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나만 빼고 남녀노소 모두 선 주문, 시간예약을 하고 때맞춰 찾으러 온 것이다, ㅎ ㅏ. 이렇게 사람들이 나만 빼놓고 온라인을 잘 이용하고 있었다니. 위기의식을 느끼며 잊었던 아이디를 확인해서 회원인증을 해놓았다. 다음에는 온라인닷! 나는 매장에 아무도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 내게 번호를 묻고는 직원이 말했다.


손님, 죄송합니다. 피자가 잘못 만들어져서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

맛있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렇군요.


기다리면서 r에게 문자를 해보았다. 어디냐고 물었는데 이제 막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고 했다. 그 버스를 같이 타려면 내가 지금 매장에서 나가야 하는데 시간을 맞추기는 어렵겠다.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 나의 피자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매장에서 지켜본 바, 카운터와 포장을 담당하는 재빠르고 정확한 젊은 남녀 직원들과 친절하지만 다소 실수가 있는 (사장님 일 것으로 추측되는) 중년의 직원 간 위계가 확실하여 잘못 나간 제품에 대해 사과하는 일까지 카운터 직원이 담당하였고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하였다. 내 주문을 받았던 사장님은 쪼금 의기소침해 보인다, 뭐 별일 아닙니다.


r이 탄 버스가 창밖으로 지나가는 것이 보일 때, 제품이 나왔고 얼른 집에 갈 생각에 빗길을 걷는 걸음이 가볍다. 식탁에서 뚜껑을 열자 여전하게 따뜻한 피자의 온기가 퍼졌다.


식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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