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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유은영 Jan 05. 2022

낡고 녹슨 공구골목, 힙스터 성지로 부활하다

대구 북성로

북성로는 한때 대구에서 가장 뜨거웠던 거리다. 대구 최초로 건설된 신작로였다. 6.25 전쟁 중에도  바흐의 선율이 흘렀고,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사랑받았다. 70년 대에는 치열한 삶의 현장인 공구골목으로 이름을 날렸다. 80년 대 어디쯤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북성로 골목은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으로 가득하다. 빈티지 감성을 살린 힙한 카페들과 공간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유행보다 자신만의 개성대로 사는 힙스터족의 성지로 변신했다. 힙성로를 걷는 오늘, 내가 바로 힙스터가 된다. 




빈티지골목에 들어선 인스타그램 성지들

북성로는 대구 최초의 신작로다. 1906년 일제가 상권을 차지하려고 대구읍성을 허물었다. 허망하게 성곽이 사라진 자리에 성벽 두께만한 길이 생겼다. 북쪽 성곽을 헐어내고 생긴 길이 북성로다. 대구에서 가장 먼저 도로 포장을 했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미나카이백화점이 들어서면서 대구 가장 번화가로 자리 잡았던 곳이다.

북성로가 힙스터들의 성지가 된 건 기계소리와 빈티지한 매력 때문이다. 비좁은 골목, 낡은 건물, 녹슨 철문 닫힌 가게들. 쓸쓸한 풍경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그 중심에는 공구골목이 있다. 광복 후 미군부대에서 사용하던 폐공구 수집상이 하나둘 모여 들면서 공구골목으로 변신했다. 산업화 시절에는 전국 최대 공구골목으로 이름을 날렸다. ‘골목 한 바퀴 돌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IMF로 상권이 위축되면서 빈 가게들이 늘어가지만 여전히 기계소리 요란한 골목이다. 



북성로에는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가 있다.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릴 때 받침대로 쓰는 ‘모루’에서 이름을 따왔다. 장인의 방은 함석장인이었던 이득영 장인의 작업장을 재연해 놓았다. 옛날 줄자부터 다이얼식 전화기까지 정겹고 신기한 구경거리가 많다. 2층은 전시관이다. 끌, 망치, 톱, 대패 등 장인들의 손때 묻은 공구는 물론 북성로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 공간이다. 1층 작업장에는 폐공구를 활용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간단한 공구를 직접 다뤄보는 시간이다.


북성로를 가장 힙하게 만든 건 뭐니뭐니 해도 카페다. 빈 가게에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둘 들어오면서 골목이 젊어지기 시작했다. 쓰러져 가던 적산가옥은 베이커리와 향긋한 커피를 내리는 카페로 변신했고, 구상시인이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꽃자리다방은 루프탑카페로 새롭게 태어났다. 여인숙을 개조한 카페 ‘대화의장’과 예스런 한옥 카페 %(퍼센트)는 SNS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카페 ‘북성로사람들’은 연탄빵과 가마솥누룽지라떼 등 북성로 이미지를 시그니처 메뉴로 만들어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너트와 스패너 모양의 북성로공구빵도 있다.


전쟁의 폐허에도 바흐의 선율이 흐르던 곳

북성로에서 향촌동을 빼놓을 수 없다. 북성로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향촌동은 6.25전쟁 때 문화예술인들의 거리로 탈바꿈했다. 1951년 문을 연 클래식 감상실 ‘르네상스’는 외신기자들이 “전쟁의 폐허 위에 바흐의 선율이 흐른다”고 타전한 곳이다. 향촌동의 다방과 음악감상실은 전국 각지에서 피난 온 예술가들이 모여 들었고, 예술의 열정을 논하던 아지트였다. 


향촌문화관은 50년대로 가는 타임머신이다. 1층과 2층에는 북성로와 향촌동을 중심으로 한 대구의 50~6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았다. 대구 최초로 시민들의 발이 되었던 부영버스가 가장 먼저 반긴다. ‘오라이’하던 버스안내양이 나타날 것만 같다. 이중섭이 드나들며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던 백록다방도 구상시인이 묵었던 화월여관도 재현해 놓았다. 옛날주전자와 잔, 안주가 놓여있는 막걸리집은 줄서서 그 시절 감성사진을 담아가는 포토존이다. 


3~4층은 대구문학관이다. 이상화를 비롯해 구상, 이육사, 현진건, 백기만 등 당시 향촌동 술집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문인들의 문학작품이 다 모여 있다. 백기만 시인이 1951년에 편찬한 ‘상화와 고월’도 1941년 발간된 ‘현진건 단편선’도 이곳에 오면 만날 수 있다.

향촌문화관 지하로 내려가면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온다.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음악감상실인 녹향이 자리하고 있다. 1946년에 이창수선생이 모아온 레코드판 500여장과 축음기로 시작해 당시 예술가들의 사랑방이 됐다. LP음반이 빼곡한 DJ박스가 보이고, 감상실에는 커다란 스피커와 아날로그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소파가 줄줄이 놓여 있다. 


✔ 주소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 :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16길 92-1 / 053-252-8640

향촌문화관 :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449 / 053-219-4555


✔ 홈페이지

https://www.jung.daegu.kr/new/culture/pages/main/


여행 팁

대구 중구청에서는 전문가와 함께하는 ‘대구문학로드’투어를 운영한다. 대구문학관에서 출발해 꽃자리다방, 백조다방, 모나미다방, 백록다방, 이육사작은문학관, 무영당, 대구근대역사관을 돌아보는 코스다. 향촌동에 남아있는 예술가들의 아지트를 돌아보며, 당시 문학과 북성로 골목의 정취를 느껴보는 투어다. 교류길은 1시간10분이 소요되며, 토,일요일 10시에 진행된다. 예약은 대구문학관 홈페이지(www.modl.or.kr)에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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