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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유은영 Feb 14. 2022

시리도록 푸른 바다에 눈이 베여도 좋다

호미반도해안둘레길 1코스, 2코스

바다에서 시작해 바다에서 끝나는 길, 걸음마다 파도소리와 탄성이 이어졌다. 영일만을 끼고 동쪽으로 쭉 뻗어나간 ‘호미곶’은 한반도 동쪽 땅끝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푸른 바다가 곁에 있었고, 파도가 빚어놓은 바위 군상들이 신비로운 얼굴로 맞아주었다. 걸음을 멈추어도 여전히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해국이며, 갈매기며, 어촌의 평화로운 풍경들이 따라왔다.


호미곶은 일명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며,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를 맞이하는 뜻깊는 장소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가 발품을 아끼지 않고 심혈을 기울였던 이며, 시인 이육사가 광복을 꿈꾸며 ‘청포도’를 지은 창작의 무대이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호미곶의 해안선 25km를 이어 만들었다. 1코스 연오랑 세오녀길 (6.1㎞), 2코스 선바위 길(6.5km), 3코스 구룡소길(6.5㎞), 4코스 호미길(5.3㎞)로 나뉜다. 오늘은 1코스와 2코스를 걸었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의 시작은 청림운동장이다. 운동장 옆으로 이어진 길을 몇 걸음 걸으면 곧장 바다다. 눈앞이 환해지고 가슴까지 시원하다. 동해의 매력이 그러하겠지만, 호미곶의 바다는 유독 탁 트인 기분이다. 가을 하늘은 높디높고, 바다는 그 만큼 더 넓고 푸르다. 길은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를 끼고 편안하게 이어진다. 중간 중간 만나는 쉼터는 바다를 맘껏 보고가라는 배려가 느껴졌다. 하염없이 걷고 싶은 마음과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은 마음 중간에 놓인 안성맞춤 쉼터인 샘이다. 걸어온 길 뒤로 포스코가 아스라하다.


포항은 해병대1사단이 주둔해 있다. 해병대상륙훈련장을 지나며 귀신 잡는 해병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든다. 해병대상륙훈련장을 지나면 도구해수욕장이다. 고운 모레의 해변과 잔잔히 부셔지는 하얀 파도가 그림에서나 보던 장면이다. 포스코가 들어서기 전만해도 금모래로 이름난 해수욕장으로, 십리나 되는 백사장과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송림은 포항의 자랑거리였다. 사람들로 가득했을 여름과는 달리 텅 빈 해변에는 갈매기들이 평화로이 졸고 있다.



도구해수욕장 해변을 지나면 길은 바다 곁으로 더 바짝 다가간다. 파도소리도 귓가에서 철썩이는 듯 가깝다. 임곡항에는 작은 어선들이 가을 햇살을 즐기며 한가로이 쉬고 있다. 마을 골목에는 연오랑세오녀의 벽화가 가득하다. 이곳 임곡리는 연오랑과 세오녀가 바위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었다는 전설의 마을이다. 마을에서 올려다 보이는 언덕에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이 자리하는 이유다.


마을을 벗어나 오르막길을 오르면 연오랑과세오녀테마공원이다. 1코스의 종점이다. 오를 때는 힘들지 않아 그리 높은 줄 몰랐는데, 막상 공원광장에 서자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정원으로 가진 공원이 또 있을까. 언덕 끝자락에 자리 잡은 일월대에 오르자 바다가 눈에 가득 찬다. 공원에는 연오댁, 세오댁이라는 현판이 걸린 초가집과 돌담길로 꾸민 신라마을과 일본뜰, 한국뜰, 전시관 등 볼거리가 많다.


특히 연오랑과 세오녀를 일본으로 데려다주었다는 쌍거북바위가 눈에 띈다. 삼국유사에 전해오는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는 이렇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간 뒤 이 땅에 해와 달이 사라졌고, 세오녀가 짜 보낸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자 해와 달이 다시 나타났다. 제사를 지낸 들판은 도기야이고, 그 비단을 국보처럼 모신 건물이 귀비고였다. 해가 뜨고 달이 뜨는 바다를 정원을 가진 연오랑세오녀테마파크에서 1코스를 마치고, 다시 2코스에 오른다.


연오랑세오녀테마파크를 벗어나면 호젓한 산길이다. 산길 절벽 아래로 바다가 출렁이며 따라온다. 숲길을 벗어나면 다시 광활한 바다와 만나고, 언덕을 내려서면 또 하나의 어촌 풍경이 기다린다. 입암리다. 갓 잡은 멸치를 말리는 사람들 틈에 갈매기들이 분주하다. 메인 배들은 다시 출항할 예정이 없는 듯 한가롭다.


마을을 지나면 데크길이 시작된다. 선바우에서 먹바우까지 이어지는 데크길은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최고의 하이라이트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4코스 중에 가장 인기가 많아서, 사실 이곳만 걷고 가는 사람도 많다. 경관을 헤치지 않고 데크를 조성하느라 개통이 가장 늦은 코스이기도 하다. 바다를 가로지른 데크는 걷는 재미가 쏠쏠한데다 각양각색의 기암들이 줄을 잇는다. 선바우, 힌디기, 비문바위, 먹바우, 미인바위까지 마치 기암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호미반도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지형이다. 화산성분 중에 백토로 이루어진 흰 바위 언덕을 이르는 힌디기, 연오랑세오녀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먹바우, 영락없이 물개를 닮은 물개바위 등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재미있고 신비한 기암들이 발길을 붙든다. 사람의 옆모습과 닮은 미인바위는 눈이 번쩍 뜨인다. 대만 예류지질공원의 여왕바위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자연이 오랜 세월 공들여 빚은 위대한 예술작품들은 감동 그 자체다.

남녀노소가 다 모여 있는 것 같은 군상바위도 있고, 돌하르방을 떠올리게 하는 신랑각시바위도 있다. 바위절벽 위에 움푹 패인 구멍에는 납작한 돌멩이가 소복 쌓여 있다. 동전 대신 동멩이로 소원을 비는 재미있는 소원바위다.


파도와 세월이 빚은 작품들만큼이나 이 길을 빛내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해국이다. 기암절벽을 따라 해국이 가득 피어 연보라빛 수를 놓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절벽에 바닷바람이 키운 해국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금껏 접근이 어려워 고이고이 자란 해국들이 데크가 놓이며 우리 곁으로 왔다. 기암과 해국들이 앞으로도 안전하게 데크를 절벽에서 거리를 두고 만든 마음이 감사했다.


하선대를 지나자 작은 몽돌해변이 나타났다. 파도가 밀려들 때마다 촤르륵촤르륵 몽돌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도와 몽돌의 합주는 가을햇살처럼 감미롭고 황홀하다. 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소리 앞에 두 다리 쭉 뻗고 그대로 몽돌해변에 앉아버렸다.


기암과 해국에 취해 걷다보니 어느새 2코스 종점인 흥환해수욕장이다. 반달처럼 휘어진 해변이 매력이다. 한적한 해변에는 낚시꾼들이 보인다. 그 곁에 앉아 강태공이 되어도 좋겠다. 고기 한 마리 못 잡더라도 바다는 원 없이 보겠지.

2코스 선바위길이 끝나는 흥환해수욕장에서 오늘 여정을 마치지만, 3코스와 4코스를 다 걸어 상생의 손앞에 서는 상상을 하며, 남은 길을 기약해본다.  


●걷는 거리: 약 12.6㎞

●걷는 시간: 3시간

●난이도: 쉬움

●걷는 순서: 1코스 청림운동장~도구해수욕장~청룡회관~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 2코스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입암리 선바우~하선대~ 흥환해수욕장 혹은 역순도 가능 / 비환형

●화장실: 청림운동장, 도구해수욕장,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흥환해수욕장

●식사: 입암리에 분위기 있는 카페가 있다. 식사는 흥환해수욕장이 있는 흥환리에 식당이 많다. 중간에 물을 살 수 있는 슈퍼가 없으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

●교통편

자가이용: 네비게이션‘청림운동장’ (포항시 남구 일월동 713) / 흥환해수욕장에서 청림운동장으로 갈 경우 택시이용(해맞이콜 054-283-8282) 미터요금적용(1만원~1만2000원)

대중교통: KTX포항역→210번→해군항공역사관 하차(횡단보도 건너서 왼쪽 4차선 도로로 5분 정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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