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채식주의자> 한영일로 읽다” 강연을 듣고
“왜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
프랑스에 여행 갔을 때 친구의 남편이 내게 물었다. 친구는 한국인이고 남편은 프랑스인이다.
“음... 난 한국어도 벅차. 외국어까지 할 여력이 없어.”
라고 답했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방송작가로 일하는 나에겐 국어도 벅차다.
물론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욕망은 있다. 여행을 하다 외국인들과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질 때, 읽고 싶은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을 때... 나도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작업 중인 다큐멘터리는 파리에서 촬영했고 모든 인터뷰가 영어와 불어로 진행되었다. 당연히 자료도 한국어로 된 것은 거의 없어 불어와 영어 자료를 많이 봐야 한다. 구글링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어 영어 잘하는 유학파 피디가 부러웠다.
인터뷰를 전문번역가에게 맡겨 번역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설명해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명은 제한적이고 그래서 번역은 우리 다큐의 맥락이 반영되지 못해 부자연스러운 것이 많았다.
그렇게 번역된 인터뷰를 고르고 편집하면서, 번역의 오류, 맥락이 반영되지 못해 어색한 번역 때문에 더 적확한 인터뷰를 고르지 못한 것은 아닐까 고민이었다.
편집을 마치고 인터뷰 자막을 다듬으면서
외국어에 충실할 것인가?
우리말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전달할 것인가?
또 고민이 많이 되었다.
그러던 중, 로버트 파우저 교수의 “<채식주의자> 한영일로 읽다” 강연을 접했다.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미국인 언어학 전공자로 한국에서 13년, 일본에서 13년을 살았으며 미국보다 외국의 여러 도시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언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가 한영일 3개 국어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번역에 대하여 강연을 한 것이다.
번역이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란 기본적으로 기호, 상징이며 하나의 언어는 그 안에 문화와 세계관, 독자성을 지니므로 언어의 번역이 정확하기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다.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정확성과 편리성의 충돌”에 대해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했다. 특히 문학 번역에 있어서는 문학성과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는 문제도 수반된다.
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첫 문장을 한영일로 읽었다.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국경”이란 한국어로 나라와 나라의 경계를 의미하지만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막부와 막부, 성과 성의 경계도 국경이라고 한단다.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래서 바로 다음 문장에 “눈의 고장”이라는 잘 안 쓰는 단어를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의 밑바닥”이란 표현은 문학적인 것일까, 번역의 오류일까 하는 논의도 있었다. 아무래도 적확한 번역은 아닌 것 같다.
그다음 그는 <채식주의자>의 두 문장을 한영일로 읽었다.
-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 “여보, 뭘 하고 있어, 지금”
나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내의 무릎에 놓인 환자복을 들어 그녀의 볼품없는 가슴을 가렸다.
영어로 번역한 문장에서는 원작에서 느껴지는 남편의 아내에 대한 하대, 거리감, 몰이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두 번째 문장에서 “여보”를 “Darling”으로 번역한 데 이르자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영어에서 달링은 사랑스러움이 느껴지는 호칭이나 일본에서는 마초적으로 번역되었다 한다. 한국어 원작에서의 느낌은 그냥 평범하고 무덤덤하게 느껴진다. 놀라움의 감탄사 같기도 하다. “볼품없는”을 생략한 영어의 번역은 화자(남편)의 태도를 더욱 알 수 없게 한다.
그에 앞서 호칭에 대해서는 “형이 술을 천천히 마신다.”를 영어로 번역할 때 형을 brother로 번역하면 가족의 의미이므로 “hyung” 고유명사화하는 것이 어떤가를 이야기했었다. 한국 사회 특히 80년대 대학의 운동권들이 말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형”이란 호칭은 남자 선배를 여자들이 부르는 말이었으므로 고유명사로 반복해 사용함으로써 독자가 그 의미를 맥락적으로 파악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비빔밥”을 “mixed rice”가 아니라 “bibimbap”으로 고유명사화하듯이. 나도 이에 동의한다.
결론은 “no”라는 단어에 88가지 의미가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와 함께 번역자의 선택, 번역자의 중요성으로 마무리되었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원작과 원어에 대한 충실성과 독자가 읽기 편리한, 자연스러움이 충돌할 때 번역가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은 오로지 번역자의 선택이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 Deborah Smith는 전문 번역가로 한국에 살았던 경험이 없으며 영국에 잘 소개되지 않았던 한국 소설을 번역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오역에 대한 논쟁에 대해 영어권에서는 크게 비난이 없었으나 한국에서는 오역이라며 작품에 대한 훼손이라며 강한 논쟁이 있었다 한다. (나는 관심이 없어 잘 몰랐다.)
강연을 들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서 특히 인터뷰의 자막은 전달성이 중요하다. 그것이 전달되는 매체가 방송이고 자막으로 읽어야 하는 시청자의 입장을 고려하면 인터뷰의 자막은 원어에 충실하면서도 시청자가 이해하기 편한 자연스러운 문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앞뒤 맥락을 고려해 편한 문장으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방송에서 인터뷰 자막은 내용이 잘 전달되는 것이 목적이지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문장이나 외국어 교육처럼 정확한 문장이 아니므로. 물론 정확한 표현, 아름다운 표현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적확한 전달이라 결론 내렸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기호이며 상징이다.
“푸른 산 푸른 바다 푸른 하늘”이라 쓴 문장을 보고 받아들이는 심상은 한 언어권 내에서도 다를 수 있다. 더군다나 다른 언어권이라면 같은 문장의 번역에 따라 이미지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 더구나 문학의 언어는 일상적 담화와 또 다르다. 문학의 언어에는 텍스트(표면적) 의미와 함께 그 안에 담긴 서브 텍스트가 중시된다. 텍스트에 따라 맥락에 따라 서브 텍스트는 천차만별로 바뀔 수 있고, 이는 전체적인 의미 전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말로 전달되는 의미는 화자의 언어와 톤, 매너, 표정 등이 전달하는 의미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NO”에 88가지 의미가 있다지 않은가!
*그래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받은 데는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의 기여가 충분히 있지 않은가 싶다. 번역되지 않았다면 아예 심사의 대상에 포함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나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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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국문학을 번역할 때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요?
데보라 스미스 : 사람들끼리의 관계에 관한 문장이에요. 특히 존칭을 써야 하는 높임말이나 호칭들이 매우 복잡한 것 같아요. 친언니가 아닌데도 언니라고 부른다거나 선배와 후배의 호칭들, 특히 회사에서 직급을 나타내는 단어들 있잖아요. 사장, 회장, 이사, 팀 장, 과장, 부장, 차장 등. 영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에요. 사실 그런 것들을 번역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한국 사회의 모든 상황을 이해해야만 하는 건데 한 권의 책에서 그 모든 것을 보여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 월간 책의 데보라 스미스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