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속 깊은 술친구

대서, 민어탕

우리의 행복은 우주처럼 한이 없었다.

우리는 그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큰 소리로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누구에게 알리지?

우리 친구들 가운데 그 행복의 깊이를 헤아릴 줄 알고

그것의 찬양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 장 자끄 상뻬, 속 깊은 이성친구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시절음식이 발달한 것은 농경사회의 민간신앙, 귀신을 물리친다는 의미와 풍류, 보양, 계절적 생산성과 보존의 한계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봄을 상징하던 딸기가 한 겨울에 제철이라 하고 어선에서 급속 냉동한 생선들이 생물보다 더 신선한 요즘, 시절음식을 찾아 먹는 것은 풍류의 의미만 남았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복날의 음식은 챙겨먹는다. 지구온난화로 여름과 겨울 그리고 환절기만 남은 것 같은 요즘, 복달임 음식으로 보양과 풍류라도 즐기지 않으면 더워도 너무 더운 이 여름을 견디기 힘든 것이다.


보통 삼계탕을 많이 먹는다. 직장인이 밀집한 광화문이나 여의도, 강남 등지에서 복날 삼계탕 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과연 더위를 이기기 위한 것인가, 더위를 먹기 위한 것인가 분간이 가지 않지만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민어탕도 인기다. 조선시대 평민은 삼계탕, 사대부는 민어탕을 먹었다는 말도 하고, 민어는 조선시대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자주 오르던, 양반들의 보양식이라는 말도 한다.


그런데, <자산어보>에는 “면과 민은 소리가 서로 가깝다.”고 설명하면서 민어를 ‘면어(鮸魚)’라고 했다. 민어란 말하자면 국민생선이다. 국민여동생, 국민첫사랑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임금님 수라상’, ‘양반들의 보양식’이라는 마케팅에 값만 천정부지 올랐다.


옛날 민어는 인천 앞바다에서 잡혔다. 여름이면 인천 앞바다에 민어파시가 형성됐다고 한다. 여름 제철 생선이라야 갈치, 민어 정도고 대부분 가을 겨울에 많이 잡히니 여름철 민어가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겠나 싶기는 하다.


전통 음식 가운데 어만두는 도미나 민어, 숭어 등 흰살 생선이면 아무것이나 되는데 여름엔 민어밖에 없으니 여름날 어만두는 민어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만두는 흰살 생선을 얇게 포떠 밀가루 대신 만두피로 사용한다. 소고기, 숙주, 오이, 석이버섯 등을 볶아 소를 만든 다음 생선포로 감싸 쪄내는데 포를 만두피처럼 얇게 떠내는 것도 힘들고, 쪄냈을 때 살이 부스러지지 않아야 하므로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그러니 어만두는 양반집의 음식이지 평민의 음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십년도 훨씬 전에 궁중음식하는 모 장인의 어만두를 한 번 먹어보았을 뿐인데 그 맛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어쨌든 요즘은 민어가 인천 앞바다에서 사라지고 신안쪽에서 좀 잡힐 뿐이다. 신안에서도 민어는 비싸다. 살집이 올라 제법 큰 놈은 경매장에서도 수십만원이 훌쩍 넘는다. 민어 열 마리 잡고 그날이 최고의 수입이라 말하는 어부도 있을 정도다.


“민어가 언제부터 양반놈들 보양식이었어”

“괜히 방송나부랑이가 값만 올려놓았지”


민어 값이 올라 재미를 보던 어부들도 이제는 너무 올라버린 가격에 욕을 한다. 가격은 오르고 씨가 말라 제대로 잡히질 않으니 속이 탄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후가 바뀌고 수온이 올라가면서 바다인심이 많이 야박해지고 있는데 말이다.


예전에는 방송 촬영을 간다하면 어촌계장님이 반기며 배를 척척 내주셨는데 언제부턴가는 기름값을 내라는 둥, 한 집만 찍으면 안 되고 이집 저집 골고루 찍어야 한다는 둥 그것도 귀찮으니 오지 말았으면 좋다는 둥 한다. 방송‘빨’이 먹히지 않게 된 것은 그 동안 수많은 방송에서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었고, 검증되지 않은 방송도 많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그에 기여했으니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역시 더위가 찾아오고 복날에 삼계탕이니 민어니 복달임 음식이 방송에 나오기 시작하면 나는 신안 지도(智島)에 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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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한때 J가 살았다. 자유로운 영혼의 J는 술집에서 처음 만났는데, 키가 작고 목소리는 크다. 입만 열면 인도, 몽골, 태국이나 태평양의 어디 바다 속을 이야기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신안 지도에 둥지를 틀었고 지금은 제주도에 산다. J는 처음부터 애인이나 남자친구라기보다는 속 깊은 술친구다.


특히, 술자리에서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리고 세상에 가장 맛있는 술과 안주와 그것을 먹을 때의 행복과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과 깊은 공감을 온 몸으로 마음으로 표현할 줄 안다. 민어의 맛도 그가 알려주었다.


전라도는 어디를 가나 기본은 하지만 신안 지도(智島)는 어디를 가든 최고의 맛집들이다. 지도는 다리로 이어져 섬 아닌 육지로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넓은 들판에 쌀이 자라고 산에는 온갖 나물과 과일이 철철이 나온다. 무엇보다 세계 5대 갯벌에 속하는 갯벌이 바로 신안에 있다. 천일염의 중요한 산지고, 뻘낙지와 조개 등 어종이 풍부해 한국 최고의 맛고장이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4시간 반 걸리고, 그것도 하루에 두 대뿐이지만 예로부터 지도를 거쳐 가는 뱃길은 나주평야에서 나온 세곡을 실어 한양으로 나르던 세곡선과 고대 중국으로 가는 국제선의 경로였다고 한다. 지도의 어판장은 여수나 목포보다 생선값을 잘 쳐준다 하여 경매 규모가 제법 크다.


여름에 가면 J는 민어탕집부터 앞장서 걸었다. 회보다 탕을 좋아하는 나는 횟집에 가서 회와 탕을 같이 시킨다. 회는 몇 점 애피타이저로 즐기고 주로 탕을 먹는데, 민어탕은 내가 그렇게 시키지 않아도 회와 탕이 동시에 나온다. 사실 탕은 끓일수록 맛이 깊어지니 처음부터 시켜서 보글보글 끓여 진국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회를 먹으며 긴 시간 보내고, 마지막에 탕을 시켜 후르륵 한 번 끓여서 먹고 마는 것이 안타깝다.


민어는 우선 부레를 생으로 먹는 게 시작이다. 민어가 천냥이면 부레는 구백냥이라고 하는데 부드럽게 녹는 첫맛에 쫄깃하게 씹히는 끝까지 요물이 이런 요물이 없다. 민어의 길이가 1미터가 훨씬 넘기에 부레도 제법 크다. 민어부레는 찜으로 순대로 만들어먹기도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병풍이나 표구에 사용되는 풀로 사용됐다고 한다. 현지에서는 그냥 유자가 살짝 섞인 간장에 찍어 회로 먹는다.


민어껍질은 살짝 데쳐 나오는데 꼬득꼬득한 식감이 재미있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숭어껍질도 술안주로 좋지만 민어껍질은 식감이 더 좋다. 그리고 뱃살을 몇 점 집어 신안의 자랑 토판염에 찍어 먹는다. 토판염은 전통방법으로 생산한 소금이다. 염전 바닥에 비닐장판을 깔아 증발이 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갯벌 흙바닥을 다진 위에서 소금을 생산하기에 색이 하얗지 않고 진하나 흙맛이 섞인 듯한 소금의 맛이 달다. 과연 이 소금 하나만 있으면 고기도 회도 다른 양념장이 필요 없다. 오직 소금 몇 알갱이만으로 온갖 맛이 다 살아난다.


참, 술은 황옻술이 최고다. J는 옻을 못 먹는데 나는 옻도 잘 먹고 담금주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황옻술은 잘 마신다. 그래서 J는 요즘도 황옻으로 술을 담가준다. 처음 신안에 갔다가 술을 먹고 단번에 탈이 났다. 뱃사람, 염전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으니 아무리 천천히 마셨어도 나의 주량을 훨씬 넘어섰다. 요령껏 빼고 하는 걸 잘 못하는 나로서는 그 다음날 여행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하고 밤늦게까지 방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황옻술은 내가 제일 센 것이 아닌가. 신기하게도 모두들 황옻술을 마시면 자신들의 주량을 반도 못 채워 술이 취하는데 나는 주량을 넘기고도 다음날 말짱히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안에 가면 나는 술만큼은 황옻술을 고집했다.


민어는 한 마리에서 스무 가지 맛을 낸다지만 이제 하이라이트 지리를 먹을 차례다. 민어탕은 끓기 시작하면 바로 뽀오얀 국물이 우러나오고 24시간 우린 사골곰탕 같은 색이 된다. 무와 청양고추 몇 조각만으로 시원한 맛을 더해 지리로 먹는 것이 좋다.


그만 배가 부르다 해도 민어탕엔 꼭 밥을 말아먹어야 한다. J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라도 밥을 한 술 말아 술밥을 먹는다. 그러고 있노라면 오장육부가 꽉꽉 차서 더 이상 무엇도 안 들어갈 판인데, 마지막으로 노란 계란옷 뒤집어쓴 민어전이 나온다. 그래서 신안에 가면 살이 2킬로그램쯤은 쪄서 온다. 요즘은 민어 오마카세(주방장 특선 정식)라 하여 민어회, 초밥, 전, 탕 등을 코스로 내는 집들이 많아졌다. 부레와 껍질도 함께 준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이면 속 깊은 술친구 J와 더불어 민어를 먹으며 세상에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오래도록 이야기해야 “오장육부의 기운을 돋우고 뼈를 튼튼하게(동의보감)” 해주는 민어가 내 몸과 마음에 오롯이 살로 남아 일 년을 무탈하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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