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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Vada Sep 19. 2024

모든 색깔에는 다 이름이 있다.

아트 배우면서

두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니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무엇을 하면서 취미 생활을 키워볼까 생각 중에 뜻하지 않게 친구가 같이 미술학원에 다니자고 권유를 해왔다. 친구 따라 강남도 간다는데, 동네에 있는 미술학원 가는 게 뭐 어려우랴 싶어서 말나온김에 바로 같이 등록을 했다.

첫 시간에 선생님과 같이 준비물들을 구입하러 아트 샵에 갔는데 생각보다 가격들이 싸지 않았다. 망설이는 우리들을 보시고 선생님은 우선 4가지 색만 구입하라고 권하였고 우리는 빨강, 노랑, 파랑, 흰색 그렇게 기본적인 색깔만 구입했다.

4가지색 물감이랑 붓을 사들고 첫 시간에 정물화를 시작하였는데 꽃병에 꽃인 다양한 꽃들을 그리려니, 이런저런 빨갛고, 노랗고, 혹은 보랏빛의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어우러져 있었다.

기본 3가지 색을 가지고 여러 색을 색깔대비로 다양하게 만드는 것을 배워서 우선 빨강과 흰색을 섞어서 분홍색을 만들어 보았다. 흰색과 섞인 빨간색은 금방 핑크핑크한 색으로 바뀌었다. 오호~ 색깔 만들기 쉽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겨서 이번에는 빨강색과 파란색을 섞어 보라색을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내가 원하는 강렬한 보랏빛이 나오지 않았다. 파랑을 더 섞어보고, 빨강을 더 섞어봤지만 색깔은 계속 원하는 색은 안보이고 탁하고 음침한 시들은 색으로 변해서 보라색 접시꽃을 그리기엔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다급하게 선생님에게 왜 보라색이 예쁘게 안 나오냐 고 물어보니 아트 샵에서 구입한 파란색이 코발트블루가 아닌 울트라 블루라고 하였다. 아, 파랑색은 그냥 한가지가 아니었나? 친구의 파란색 물감을 찾아보니 이름이 다 틀렸다. 아마도 그 아트 샵에서 우리가 어리 버리 해보이니까 안 팔리는 파란색을 판매한 것 같다. 그렇게 첫날 수업에는 보라색도 제대로 못 만들고 초록색도 만들지 못해서 이도 저도 아닌 색으로 끝마치게 됐다.

씩씩대며 집에 돌아와서 나는 Google에 “Oil paint Blue” 색깔을 찾아보았다. 이왕 시작한 거 예쁨 색으로 꽃병을 마무리하고 싶어 졌다. 검색창에 나타난 물감 색상에는 엄청난 종류의 블루색깔들이 보였다.

우리가 흔하게 알고있던 하늘색, 군청색, 곤색, 남색 등등 파란색 종류에는 20여가지 다양한 색깔들이 펼쳐졌다. 선생님이 말해준 코발트 블루를 쇼핑백에 담고 이번에는 초록색을 따로 구입하고 싶어서 그린을 찾아보니 그 색깔도 여려가지였다.

색상을 하나하나 찾아 읽어보니 각각 에메랄드색, 올리브그린, 코발트그린, 임페리얼 그린, 카드뮴 그린 색 등 색깔의 이름들과 다양한 표현에 너무 신기해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가끔 차를 타고 지나면 창밖에 보이는 나무들의 색깔들이 다 틀리고 낙엽의 그 빛 바랜 색깔도 은근 차이가 나는 것을 바라보며 만약 그림을 다시 배운다면 그 낙엽들을 꼭 색칠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다양한 색상들을 어떻게 만들어서 색칠할 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우선 당장 구글에 나타난 모든 물감색을 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꾸 그리다 보면 초록색에 흰색을 섞거나 노란색 아니면 갈색을 섞어서 그 다양한 색상을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 색깔들이 갖고 있는 이름 하나하나를 불러주고 싶어 졌다. 너는 딥 레드 색이구나, 너의 잎사귀는 인디아 레드 색이구나, 또 너의 꽃잎은 어스 레드 구나. 그렇게 색깔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다 불러주고 싶어 졌다. 내 입으로 그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내 기억속에 색깔과 이름을 매치해서 간직하고 싶아졌다.


다양한 물감의 색을 다 둘러보니 이제는 다음주에 무엇을 그려볼까 하고 풍경들을 구글에서 찾아보았다. 우선 제일 유명한 맨하튼 다리도 그려보고 싶고, 아름다운 석양의 모습도 그림에 담아보고 싶고 또 파도치는 바닷가, 라벤더 가 피어 있는 들판 등 여러가지 이미지들을 내컴퓨터에 저장해 보았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급 해졌다. 단 하루의 레슨을 받고 온건데 그려보고 싶은 풍경들은 내 폴더에 가득 나란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친구 따라 시작한 이 취미생활이지만 나에게 큰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모든 만물들은 다 이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 로 와서 뚜렷한 색깔로 기억에 남았다는 것 또 어느 풍경이나 다 이름있는 색깔로 이루어졌고 그것을 내마음에 담아 놓으면 살아 숨쉬는 작품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

1년후를 상상해본다. 내 서재에 완성된 풍경화를 걸어 두고 그 색깔들을 하나하나 채워 입혔을 때의 행복감을 누리고 싶다.

흰 캔버스위에 몇 백가지의 색깔들이 어우러져 내가 그리고자 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영원히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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