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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Vada Sep 19. 2024

언두

Undo: 돌아가기

나는 똑같은 것을 오래도록 놔두지 못하는 편이다.

특히나 머리 스타일을 몇 달 동안 가만 놔두지를 못한다. 예전에 머릿결이 좋을 때는 파마도 자주 했었는데, 염색과 파마를 같이 했더니 돈도 많이 들고 머릿결도 많이 상해서 언제부터는 염색만 주로 하는 편이다.

워낙에 내 머리 색깔은 아주 까만색이어서 헤어 컬러가 살짝 연해 보이면 조금은 세련돼 보일까 하고 한두 번 시작하다 보니 어느덧 중독처럼 염색을 끊을 수 없게 되었다.

남들은 흰머리, 새치를 가리려고 한다는데 나는 그도 저도 아닌 미용을 목적으로 미용실에 돈을 수타 갖다 바쳤다.

습관처럼 미용실 드다 들기를 하다가 작년 코비드-19이 발병한 후 행정명령으로 인해 미용실도 닫혀서 하는 수없이 집에서 염색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염색하는 시간을 잘 못 맞춰서 색깔이 제대로 안 됐었는데 점차 사용서에서 쓰여 있는 시간대로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고 기다렸더니 어느덧 원하는 색깔로 염색이 되었다. 집에서 염색을 하니 가격도 미용실의 반의반의 반.

코로나 덕분에 터득하게 된 홈케어 염색 방법으로 이제는 집에서 종종 하게 되었는데, 그나마 싫증이 나던 차에 미용실이 다시 오픈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나는 또 변신하고 픈 욕구가 되살아났다.

이번에는 굳이 염색을 하기보다는 새로운 헤어스타일에 도전하고 싶었다. 구글에 단발웨이브 머리를 찾아서는 몇 가지 사진을 저장해 보았다.

드디어 미용실을 예약하고 부푼 마음으로 찾아갔다.

오랫동안 길게 자란 머리들을 다듬고 탱글탱글한 파마가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어머나 세상에! 머리카락 끝이 흑인 머리처럼 다 곱슬곱슬 꼬부라져 있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도통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머리카락을 다 잘 드라이하면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여전히 그 부스스하게 탄 머리카락이 변하지 않았다.  파마약이 너무 쌨던지, 미용사의 관리 부실로 그만 다 타버린 것이다.

나는 하루종일 컴퓨터를 이용하며 작업을 하는데 실수로 잘못 기입하면 습관적으로 undo 표시(화살표가 거꾸로 돼 있는)를 클릭하여 제까닥 원위치로 돌아가게 만든다.  컴퓨터의 기능이 우리 삶에 적용된다는 것을 상상하며 나는 지금의 머리 스타일을 그렇게 되돌리고 싶었다. 30분 전 아담하게 다듬어진 머리로.


왜 파마를 하겠다고 굳이 욕심을 부렸을까?부터 시작해서 이 미용실을 소개해준 친구까지 원망이 됐다. 하지만 모든 결과의 잘못은 나부터인 것이다. 원가의 염색약으로 집에서 케어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상한 내 머리카락을 벌벌 떨면서 드라이하고 있는 이 미용사 아줌마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미안하다고 계속 어쩔 줄 몰라고 하며 다시 기회를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도저히 그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냥 빨리 그곳을 나오고 싶었다. 가방에 있는 머리 끈으로 어서 질끈 묶어버리고 싶었다. 머리끝은 자글자글하지만 길이는 단발머리라서 묶고 다니면 그나마 남들이 모를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그렇게 간절하게 되돌리고 싶은 적이 또 있을까? 어떤 친구들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또 어떤 친구는 지금의 코로나 생활이 시작되기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에 비해 나는 내 상황이 다 만족스러웠다. 다시 일터에 나가서 일하게 된 것도, 앞으로 맞을 백신을 기다리며 희망을 품고 있는 오늘날도, 그 어느 것 하나 Undo 버튼을 누르고 싶은 적이 없었는데. 이제 하나 생긴 것이다. 아주 긍정적인 내 성격도 이럴 때는 숨겨졌던 A형의 전형적인 소심함이 나온다.

월요일 출근길에 다시 한번 거울에 머리를 비춰보니 도저히 머리를 풀고 출근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다시 머리끈으로 칭칭 동여맸다. 그나마 아직은 묶는 머리 스타일이 어울려 보인다. 더 나이 먹으면 좀 추할 텐데.. 다시금 긍정의 나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 미용실 아주머니는 주말 동안 잠을 잘 못 주무셨으리라. 내가 구글이나 미시 USA 사이트에 그 미용실에 대해 나쁜 리뷰를 적었으랴 싶어서. 그렇다고 굳이 친절하게 그 미용실에 전화해서 저는 이제 괜찮으니 마음 놓으세요,라고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오늘로써 그분을 용서하겠다.

그리고 싼 것은 모두 비지떡이고  낮은 가격으로 좋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을 한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지. 앞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누구를 흉보거나 탓하지 말고 살아야겠다. 머리카락은 다행히 하루하루 자라게 되어있고 나는 머리카락이 자라는 데로 이 일을 잊혀가겠지. 되돌리지 못할 일은 얼른 말끔히 잊고 스트레스로 만들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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