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돌아봐도 나는 별 자잘한 것들에 대해 화가 나는 적이 없었다.
출퇴근이 왕복 50여 마일이지만 언제나 트래픽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마음을 내려놓고 가는데 1시간 정도를 예상해서 일찍 나오려 노력한다. 내가 시간이 넉넉하면 트래픽이 밀려도 화낼 일이 없다. 마음을 내려놓고 운전하다 보면 여지없이 도착 장소에 시간에 맞춰 도착해 있다. 물론 가끔은 사고 때문에 길이 막히는 때도 있지만 GPS가 가리키는 데로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 뚫린 길이 있어 살짝 늦어도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그렇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언제나 예상 밖의 일들이 벌어지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미 지난 일을 탓하기보다 이미 엎질러진 일들을 빠르게 해결할 일에 더 초점을 두는 것이 내 건강상에도 도움이 된다. 화를 내지 않고도 모든 일에 다 해결책이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나의 모습에 더 미안해하며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이들을 키우는데도 나는 크게 화를 낸 적이 없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내가 두 번 얘기하기 전에 뭐든 다 척척 해냈다. 딸보다 아들은 좀 성격이 느긋해서 내가 몇 번 기다리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잔소리를 한 적은 있지만 그 외에도 크게 혼내거나 언성을 높이며 나무란 적은 없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던 나였는데 갱년기 증상이 시작한다는 표시인지 어느 날부터 참는 데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다. 운전할 때 앞에서 느릿느릿 가는 차를 따라가다 짜증이 나며 주저 없이 얼른 차선을 바꾼다던가, 신호등에 기다리는데 파란불로 바뀌었는데 앞차가 꿈적하지 않을 때는 바로 클랙슨을 빵빵 눌러댔다.
직장에서도 내 옷을 먼저 만들지 않고 순서를 바꾸어 놓은 것을 알아채면 그 상황을 만든 직원에게 바로 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왜 그랬냐고 따지며 내 것을 먼저 하도록 재 배치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교회 집사님이 무슨 봉사를 하다가 나에게 실수로 뭘 잘못하면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문제에 다시 토를 달며 돼 물었다.
"아까 하신 말씀을 곱씹어 생각해 보니 기분이 안 좋은데요!"
그렇게 해서 상대방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기분이 풀렸다.
예전 같으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었던 상황들이 자꾸 목에 걸린 가시처럼 자꾸 생채기가 나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왜 이럴까? 내 성격이 왜 이리 안달 바가지가 될까? 나이 먹을수록 더 유해져야 할 텐데..
저녁에 누워 하루의 일들을 되새겨 보면 후회되는 게 종종 있었다.
하지만 한번 바른 소리를 시작한 후에는 사이다 발언을 하는 게 더 가슴을 트이게 했다.
시어머니가 종종 내 목을 막히게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바로 말대꾸를 했다.
"어머니, 저는 그거는 싫고 이게 더 좋아요."
또박또박 내 표현을 바로 하니까 꽁하게 마음에 담아두게 되지도 않고 서로 시원해졌다. 물론 어머님은 점점 내 눈치를 보시는 분위기지만 서로 주거니 받거니 소통이 편해졌다.
가끔은 남편이 한마디 할 때 나는 두 마디로 달려들면서 무서운 갱년기 와이프의 표본을 보여 남편이 조금씩 무서워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갱년기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닌 것도 같다.
아니 왜 진작에 이렇게 솔직히 말을 못 했을까 안타깝기도 하다. 하긴 예전에는 그냥 순종하며 참고 그 순간을 지나가면 바로바로 잊혀서 가능한 것이었다.
올해 들어, 내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이제는 미씨(아가씨 같은 기혼녀를 지칭하는 신조어. 결혼했지만 아가씨의 신선한 감각을 잃지 않은 타입의 사람들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를 넘어 진정한 아줌마의 길로 갈아타는 느낌이다. 우리 시어머니는 예전 50세에 큰 딸이 시집을 가서 사위를 보고 51세에 할머니가 됐다고 하신다. 세상에~ 우리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그나마 50대에 어머님처럼 초고속으로 할머니가 되는 일은 없겠지?
세월이 너무 빨라서 당최 내 나이를 인지하지 못하겠다.
마음은 아직도 굴러다니는 낙엽을 보고 깔깔거리고 싶은데.. 가끔 보는 드라마 속에 남자주인공을 보며 설레고 싶은데.. 세월은 그러고 있을 나를 비웃을 것이다. 더 성숙한 아줌마의 표본이 돼야 할 것이다. 더 지혜와 분별력이 넘치는 오십 대 아줌마의 모습으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