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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Vada Sep 21. 2024

최언니

한국회사에서 만났던..

우리 회사는 나보다 나이가 1살이 많건 30살이 많건 다 언니들이다.  80여명의 직원들 중 절반 이상이 나에게는 김언니, 이언니, 최언니, 박언니등으로 불렸다.

심지어 연세가 우리 시어머니랑 동갑인데도 다 언니로 통했다. 하긴 샘플 만들어 주시는 분들에게 아줌마, 아주머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또 어색하게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서로 민망했기에 언니라는 칭호가 딱 좋았다.

그렇게 부르다 보니 매일 마주 보고 일하는 최언니는 나를 막내딸처럼 대하면서 별별 얘기를 다해 주셨다. 나도 친정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 같은 그분과의 대화가 참 즐거웠다.

언니 연세가 낼모레 70인 같은데 남편 분하고 사이가 아주 좋으시단다. 진작에 은퇴하시고 집에서 쉬시는 아저씨는(언니의 남편들은 그냥 아저씨라 칭했다) 언니가 퇴근하고 돌아올때 쯤이면 어디 숨으셨다가 짠~ 하고 나타나 놀라게 하는 재미가 쏠쏠 하시단다. 나름 2살 차이 나는 연상연하 커플이셔서 그럴까?


언니의 하루 일과를 듣다 보면 참 재미있었다.

자녀분들은 이미 예전에 시집 장가 다 가고 두 분만 알콩달콩 사시는데 아직도 와이프를 그렇게  위하시고 와이프 기다리는 재미로 산다는 최언니네 아저씨.

정말 연상연하 커플은 나이를 먹을수록 장점이 부각되어 부럽기도 하다. 아저씨는 언니에 비해 건강이 짱짱하셔서 주말이면 차를 타고 두분이 하이킹에, 드라이브에 안 돌아다니는데가 없을 정도다. 그 옆에서 일하는 같은 또래의 강언니는 아저씨가 언니보다 8살이 많다보니 벌써 칠십이 훌쩍 넘으셔서 당뇨 합병증에 여기저기 아프시다고 언니가 틈만 나면 병간호하느라 고생이 많으시다.

나도 남편이 5살이 많은지라 지래 걱정이 된다. 나이 먹어서도 둘이 서로 건강해야 할 텐데..


최언니에게 삶의 지혜와 살림살이의 팁 등도 많이 배웠다.

언니가 매실 엑기스를 담는 시즌이라면서 매실반 설탕반을 같은 비율로 섞으면 된다는 말에 나도 마켓에 달려가서 파운드에 7불씩하는 매실을 한 박스 사다가 설탕 비율을 잘 못 마춰서 그만 매실주로 만든 적이 있다.

그외에도 찬밥이 많이 남으면 빠삭하게 누룽지로 만들어 놓고 두고두고 먹는 방법, 화분에 물 주는 주기가 제각기 틀린 실내식물들 관리법, 순댓국에 넣어먹는 정구지란것이 표준어로 부추였다는 것, 김치 담글때 무슨 액젓을 넣으면 김치가 시원한 맛이 나는지 등등 셀 수 없다.


그러던  최언니가 69세가 되는 날 결국 퇴사를 결정 하셨다.

언니는 조금 더 일을 다니고 싶어 했지만 집에서 심심해 하는 아저씨가 하도 성화를 해서 우리 회사에 들어오신지 딱 10년 되는날을 D-day로 잡고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에게 작은 선물도 나눠주시며 슬슬 은퇴준비를 하고 계셨다.


언니의 라스트데이는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언니랑 아저씨가 손수 싼 김밥을 직원 전체에게 나눠 주느라 그전날밤을 꼬박 세우셨단다. 언니의 김밥이 참 맛있어서 또 부탁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날 따라 은박지에 곱게 싼 김밥 한줄을 손에 건네 받고 이게 마지막 김밥이 아닐까 싶었지만 오히려 언니가 더 기쁘게 회사를 은퇴하려는 모습이 멋져 보여서 박수를 쳐드렸다. 김밥은 언제든지 먹고 싶으면 또 해 다 주겠다고 다짐을 해주셨다.

요즘도 은퇴하신 언니랑 종종 연락을 한다. 이런저런 얘기하다 언니에게 "아저씨랑 아직도 뽀뽀하세요?"라고 물어봤다가 호통을 당한 적도 있었다. 늙었다고 무시하냐면서 언니가 발끈하시는 거였다. 나는 정말 순수한 궁금증에 의해 물어본 거 였는데..언짢아 하는 언니에게 바로 죄송하다고 사과한 적이 있다. 그러고는 언니가 대뜸 나에게 그 멘트를 날리면서 나이 먹었다고 젊은 사람하고 사는게 다르다 생각지 말라 하셨다.

그런가 보다, 나이가 후반기로 달려갈 때면 나는 이제 만사가 다 귀찮다~가 아닌 아직 늦지 않았어! 라는 마음가짐으로 도전하시는지도..


가끔 안부를 묻기 위해 언니의 카톡창을 보면 볼 때마다 사진들이 매번 바뀌어 있다. 레드우드의 기차사진이 있다가 또는모뉴멘트 벨리의 돌들 사진으로 바뀌었다가 또 최근에는 에로 해드 호수랑 헌팅턴 비치등등 차타고 가는 곳은 어디든 종횡무진 하시는 듯하다.

앞으로도 어디 가보지 않은 곳을 그렇게 서치하고 계획하며 여행하실 것 같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최언니 부부처럼 나이먹기를 바랄뿐이다.

아저씨가 언니를 사랑하는 만큼 건강하고 즐겁게 남은 70대, 80대..90대를 맞이하시길 소망한다.언니네는 아직도 뽀뽀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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