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통 만두 가게 아들이 싱크대 앞에서 배운 것
내 유년의 세계는 거대한 ‘시장’이라는 행성 안에 있었다. 그곳은 세상의 모든 냄새와 소리가 뒤섞여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우리 만두 가게 바로 옆집은 정육점이었다. 아침이면 붉은 등을 켠 정육점 아저씨가 커다란 대야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선지를 삶아냈다. 비릿하면서도 묵직한 피 냄새가 새벽 공기를 가르면, 우리 가게의 찜통에서도 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와 그 붉은 냄새와 섞였다. 식초와 간장이 섞인 시큼하고 짭짤한 만두 냄새는 우리 집 벽지마냥 내 살결에 배어 있었다.
국민학교 3학년 무렵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학예회를 앞두고 교실은 행사 때 공연할 연극 연습으로 뜨거웠다. 창밖에는 아침부터 추적추적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물 섞인 흙냄새와 아이들의 땀 냄새가 뒤섞인 교실 공기가 아직도 코끝에 선하다.
그날 나는 유독 어깨가 으쓱했다. 어머니가 큰맘 먹고 사주신 ‘해피아이’ 브랜드의 회색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 옷은 꽤나 비싸고 세련된, 소위 ‘있는 집’ 아이들이 입는 옷이었다. 시장 만두 가게 아들이었지만, 부모님은 내 행색만큼은 부잣집 도련님 못지않게 입히고 싶어 하셨다. 나는 그 옷이 나의 ‘출신’을 가려주는 근사한 갑옷이라도 되는 양, 쉬는 시간마다 복도 거울을 힐끔거리며 깃을 세우곤 했다.
거기다가 나는 이번 연극의 주인공이기까지 했었다. 열심히 외웠던 대사를 까먹지 않으려 애쓰면서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드르륵-”
교실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뒤로 쏠렸다. 그리고 그곳에, 나의 아버지가 서 계셨다.
아버지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짙은 회색의 우비를 아래 위로 입었고, 다른 한 손에는 이리저리 구겨진 흔적이 가득한, 만두를 배달할 때 사용하는 철가방을 들고 계셨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으므로 교실 뒷편은 그리 밝지 않았는데, 검은 실루엣과도 같은 모습의 아버지는 비를 막는 모자를 뒤집어 쓴채로 교실 안에 있는 나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순간 시장의 축축한 공기, 그리고 아이들이 나를 놀릴 때 쓰던 그 ‘만두 냄새’가 빗물을 타고 교실 안으로 훅 끼쳐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내 심장은 발 밑으로 쿵 떨어졌다. 반가움보다 수치심이 뇌를 지배했다.
‘제발, 나를 부르지 마. 제발 아는 척하지 마.’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앞 책상 뒤로 숨었다. 뽀얀 얼굴에 멋진 회색 바바리코트를 입은 ‘귀공자’가, 저 젖은 점퍼를 입은 만두 배달부와 부자(父子) 관계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책상 밑 어둠 속에 웅크린 채 숨을 죽였다. 아버지가 나를 찾지 못하기를, 그저 만두만 놓고 빨리 사라져 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아버지와 눈이 마추치기 전에 혹은 아버지의 시선이 나를 찾기 전에 몸은 던져 숨었다고 생각은 했지만 교실 안으로 걸어들어와 나를 찾아낼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잠시 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드르륵, 탁.”
짧은 정적 후 다시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그제야 나는 책상 뒤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는 없었다. 그 빗물 떨어지는 비옷을 입고, 배달철가방을 손에 든 배달원이 내 아버지를 사실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으니 기분이 좋을 법도 했지만 무언가 죄를 지은 것만 같아 하교할 때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모르겠다.
연습이 끝난 후 신발을 갈아신고, 교문쪽으로 걸어가는데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아버지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자전거에 엔진만 달아 개조한 자전거-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상태로, 앞으로 다가간 나에게 조용히
"타라"
하고 말씀하셨다.
익숙하게 뒷자리에 앉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던 그때 아버지는 다시 말씀하셨다.
"부끄럽더냐?"
자전거가 채 30m도 움직이지 않았을 때였다.
비록 남들처럼 양복입고 출근하는 것은 아니고, 몸을 써서 힘들게 돈을 벌고 있지만 세상 누가 버는 돈보다 더 떳떳한 돈이며, 만두 가게를 하는 부모님은 스스로도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셨다. 비록 어리지만 너도 같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 하시면서 슬쩍 뒤쪽을 돌아보는 아버지의 눈가에 눈물인지 빗물인지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내가 교사가 되어 비 오는 날의 교실을 지키다 보면 문득 그때가 떠오른다.
그날의 회색 바바리코트는 내 부모님의 자존심이자 헌신이었다. 당신들은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흙탕물을 밟을지언정, 자식만큼은 비 한 방울 맞지 않게 키우고 싶었던 그 눈물겨운 욕심. 나는 그 거대한 사랑을 고작 ‘쪽팔림’이라는 얄팍한 감정으로 갚아버렸다.
오늘도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한다. 창밖에 비가 내린다. ‘타닥타닥’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그날 3학년 교실 창가의 빗소리처럼 들린다. 그럴 때면 30년 전 교실 뒷문에 서 계시던 아버지의 젖은 어깨가 사무치게 그립다.
이제라도 따뜻한 물을 받아 그날 아버지의 언 손을, 흙탕물 튀긴 바짓단을 닦아드리고 싶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대신 나는 내 아이가 흙투성이가 되어 들어와도 환하게 웃으며 맞아준다. 그리고 아이가 벗어놓은 꼬질꼬질한 옷을 애벌빨래하며 생각한다.
부모의 사랑이란, 자신은 젖으면서 자식에게는 우산을 씌워주는 일. 그리고 자식이 그 우산 속에서 부모를 모른 척하더라도, 기꺼이 모른 척해 주는 일이란 것을. 나의 회색 바바리코트는, 아버지의 젖은 점퍼가 만들어준 지붕 아래서만 비로소 빛날 수 있었다는 것을.
흐르는 물에 그릇을 헹군다. 내 부끄러움도 함께 씻겨 내려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