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고양이는 클릭하지 않는 손가락

나는 다르다고 믿었으나, 결국 나도 '북어'였다

by 로벤

작년 가족들과 함께 떠났던 유럽 여행에서 꽤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다.

사람들이 산책할 때 데리고 다니는 개들의 크기가 상당히 컸던 것.

우리나라 산책로에서 흔히 마주치는, 주머니에 쏙 들어갈 것 같은 작고 앙증맞은 개들과는 달랐다.

유럽에서는 그런 인형 같은 작은 개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크기만 큰 게 아니었다. 품종도, 무늬도 제각각이었다.

다시 우리나라의 개들을 떠올려보았다. 작고, 하얗고, 다들 비슷하게 생긴 몇몇 품종에 몰려있지 않던가.


태어난 대로, 품종 개량 같은 거 잘 하지 않고, 크면 큰 대로 키우는 유럽 사람들의 성향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물론 그들도 휴가철이면 유기를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적어도 자연스러운 상태의 다양한 반려동물들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유기동물보호센터에서도 가장 빠르게 입양되는 아이들은 작고, 귀엽고, 털 무늬에 흠집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반려동물을 ‘가족’이라 말하면서도, 정작 그 가족의 얼굴과 털의 윤기를 따져가며 선택한다는 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딸아이들이 하루하루 커가면서 우리 부부의 손이 조금 덜 필요해진 시기가 왔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반려동물을 원했고, 우리도 이제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사흘 전 마트에 가던 차 안에서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여보, 어떤 사람이 세상이 알려주지 않아서 가장 배신감 느낀 게 두 가지래. 하나는 애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는 거. 다른 하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건 줄 아무도 안 알려줬다는 거라네."


그 말에 우리는 홀린 듯 입을 모았다. "그래, 우리 일단 '임보'부터 시작해 보자." 펫숍에서 사는 거 말고, 버림받은 소중한 생명에게 사랑을 쏟아주는 가치 있는 일을 해보자고.


거짓말처럼, 그날 나는 장을 보고 돌아온 주차장에서 겁에 질린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마주쳤다.

'와... 이거 운명인가.'

간식이 없어 놓치고 말았지만, 그 만남은 우리 가족에게 신호탄이 되었다. 나는 그날 밤부터 아내와 함께, 때로는 혼자서 임보할 수 있는 고양이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틀 정도를 열심히, 다양한 사연의 유기묘들을 찾아보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어리고 예쁘게 생긴 아이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입양된다는 것. 반면 코에 점이라도 하나 있고, 생김새가 덜 예쁜 아이들은 오래도록 보호소에 머물러 있다는 것.


그리고 다시 깨닫게 된 뼈아픈 사실 하나.

나 역시도 사고로 장애를 가진 아이, 안구가 적출되어 앞을 못 보는 아이, 나이가 많은 아이, 그리고 얼굴이 덜 예쁘다고 생각되는 아이는 임보의 대상으로도 생각하지 않고 넘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내와 대화하면서 나는 꽤 거창하게 말했었다.

'나는 반려동물을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달라. 나는 생명 그 자체를 존중해. 상처받은 아이의 아픔을 달래줄 거야.'

그렇게 젠체했던 내가, 모니터 앞에서는 철저하게 '외모'를 따지고 있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캄캄한 방 안에서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문득 최승호 시인의 시 <북어>의 마지막 구절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전략...)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란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나는 내가 싱싱하게 살아있는 물고기인 줄 알았다.

아니 나는, 싱싱하게 살아있는 물고기인줄 알았다.

남들과는 다른, 깨어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뻣뻣하게 굳은 편견으로 생명을 고르고 있는 나 역시, 좌판 위에 누운 말라비틀어진 '북어'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다른가?

나는 다르지!!

아... 나도 다르지 않구나..

착각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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