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 사고..
액땜 : [명] 앞으로 닥쳐올 액을 다른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김.
오늘은 내 생일이다.
지난주 나는 먼저 방학을 했고, 아내는 화요일에, 둘째는 수요일에, 그리고 첫째가 오늘 종업식을 하고 방학에 들어가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 저녁에는 큰 아이 학원 일정이 있기도 하고 해서 어제 저녁에 생일 기념 식사를 먼저 하자고 제안한 아내가 찾은 식당은 양고기를 먹을 수 있는 집으로, 아내 말로는 가격대가 좀 있는 집이라 했다.
다행히 작은 아이 학원이 끝나는 시간 이후 타임에 예약이 가능해서 미리 예약을 해두고,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식당으로 이동을 했다. 오가면서 식당을 보기는 했는데 안에 들어와본 것은 처음. 아내는 한 번 정도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말하는데 와... 안에 들어서니 인테리어도 정말 예쁘고, 모든 좌석이 바 형태로 되어 있다는 점도 특이했는데, 손님 앞에 직접 화로를 두고 거기서 고기와 야채를 구워 바로바로 손님 접시에 놓아주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가게 앞 주차가 가능하다는 안내를 보긴 했는데, 실제로 주차를 하러 가보니 생각보다 라인이 좁은 편이었다. 게다가 양 쪽에 세워진 차들 사이의 간격이 상당히 좁아서 조심스럽게 주차를 해두었었다. 고기를 두어점 맛있게 먹었을 때이니가, 아무래도 밖에 세워둔 차가 신경이 쓰여서 나가보았다. 내 차 왼쪽에 주차되어 있던 차는 빠진 듯 했다. 주차 라인을 왜 이렇게 접게 만들어두었나.. 생각하며 그 빈자리쪽으로 나가보는데.
내 차의 운전석 앞쪽 측면과, 주차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차 한대의 조수석 뒤쪽 우측면이 닿아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닿을 뻔 한 상황이 아니라, 실제로 닿아있는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그렇게는 주차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차는 다시 앞으로 빠져나가는데, 닿아있던 한 대가 빠지니 내 차는 덜컹하고 만다.
잠시동안 나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이 맞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날은 차가웠고 술은 마신 것도 아니고 ㅋㅋ 그 차는 식당 앞에는 주차가 불가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공영주차장쪽으로 향하려는 듯 보였다. 와... 차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뺑소니를? 내가 생각하기에 최대한 정색하는 표정을 하고서는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웠다. 중년의 여성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는데, '아.. 이차량 차주님이세요? 정말 죄송해요. 제가 이 식당에 예약을 해둔 상태라 일단 차를 세우고 와서 말씀 드려도 될까요'라고 말한다. 조수석에는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운전자보단 나이가 많아보이는 여성 한 분이 앉아있었다.
일단 말하는 사람의 인상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 말투가 못배운 사람의 말투가 아니기는 했었다. 옆에서 운전자의 말을 한 마디 거드는 그 나이 들어보이는 분도 '아유~ 죄송해요. 저희가 일단 차 세우고 와서 보험처리 이런 거 다 해드릴게요'라고 이야기를 하기는 했는데... 나는 잠깐 차를 보러 나온 거라 휴대폰도 안 가지고 있는 상태라 상대방 차량을 찍을 수도 없고.. 허허. 식당 예약을 했으니 주차하려 했다는 것 정도는 믿을만 하다 싶어서 일단 그렇게 하시라고 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아내에게 '여보, 방금 어떤 차가 우리차를 긁었어'라고 말하니 깜짝 놀란다. ㅋㅋㅋ 그 차는 지금 어디 갔냐는 말에 여기 예약한 사람이고 주차하고 들어올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내는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차 번호는 찍어뒀냐고 말하는데... ㅎㅎ 그냥 뭐... 식당으로 들어올 것 같아. 그때 이야기하면 되겠지 뭐... 라고 말하면서 그제서야 내가 좀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거라면? 설사 예약했던 손님이라 하더라도 '어유 재수가 없네. 우리 그냥 다른 식당 가자~'라고 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기는 했다. 그러나, 나름대로 거의 절반정도는 관상쟁이로 살아가는 우리 직업의 특성상 '그래보이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주차를 하고서도 돌아올 시간이 좀 지났음에도 식당안으로는 좀 전의 그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허허...
딸랑~ 어서오세요~ 하면서 누군가 들어서는데 노인 두 분이 식당 안으로 걸어들어온다. 아까 운전자는 훨씬 젊은 사람이었는데..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건다.
"(교양있는 말투로) 저.. 아까 주차해두셨던 운전자분 맞으시죠?"
어라? 나는 맞다고 이야기를 하니 다시 할머니는
"아유~ 참 미안해요. 우리 딸애가 운전을 잘 하는 아이인데 그렇게 사고가 났네요. 보험 처리나 이런 부분 조금도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딸애가 들어오면 모두 다 해결할 거에요. 아유~ 좋은 식사 자리에 다시 한 번 미안해요~"
라고 말한다.
거기에 대고 내가 무슨말을 하나. 두 어른은 우리가 앉은 자리 맞은 편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들어보니 그 식구들은 8명이 예약을 했다고 한다. ㅎㅎ 잠시 후 아까 운전자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들어온다. 그는 가족들과 식사하러 오셨는데 죄송하게 되었다며 나와 연락처를 교환한 후에 바로 보험 접수를 해드리겠다고 이야길 한다. 교양 있는 말투다.
그런 사람을 앞에 두고 내가 무슨 안좋은 말을 하겠나. 나도 역시 상대에게,
"네~ 그렇게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여러 가족분들이 예약하고 식사하러 오신 것 같은데 많이 놀라셨겠어요. 마음 편하게 맛있게 드시면 좋겠어요" 라고 말해준다.
우리 가족이 사각형으로 된 바 형태의 좌측하단 모서리에 네 명이 앉았고, 그쪽 가족 8명은(할아버지, 할머니, 운전자(첫째딸), 운전자의 아들, 운전자의 동생네부부와 어린 자녀 둘) 좌측 상단 모서리에 앉았다. 즉, 우리 부부와 그 사고를 낸 운전자와 그 부모가 거리가 좀 있기는 했으나 마주 보고 앉은 상황이 된 것. ㅋㅋㅋ
사람이 다친 일이 아니고 또 차의 손상 정도가 크지는 않았기도 하고... 연초부터 이런 일 생긴다고 큰소리, 안 좋은 소리 내면 뭐가 좋을까 싶어서 우리 부부는 그래도 저쪽 사람들도 못배운 사람들은 아니라 다행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식사 분위기를 이어갔다.
남편과 보험사이야기를 하기 위해 우리 뒤를 스쳐지나가면서 통화를 하던 운전자는 잠시 후에 다시 우리 자리를 지나 자신의 자리로 가려는 듯 보였다. 그런데 나에게 와서 "보험 접수는 방금 다 마쳤구요. 이건 제가 100% 잘못한 거라서 다른 말씀 드릴 것도 없네요. 다시 한 번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거의 허리까지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접촉 사고 이야기에 많이 놀랐던 아내는 그전까지 대화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 장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아유~ 아니에요~ 괜찮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야 말았다. ㅎㅎ
이 무슨 기이한 상황이란 말인가.
생일 기념으로 처음으로 간 나름 근사한 식당 주차장에서,
그냥 차를 한 번 보러 나간 그 타이밍에 접촉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또 그 가족이 앉은 자리가 식사하는 내내 우리와 마주 보는 자리에다가,
박은 사람이 죄송하다 말하는 게 당연하기는 하지만 매우매우 정중하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피해자인 우리 입장에서도 이 사고로 인해 저 가족들의 식사 분위기가 망치는 건 아닌가를 우려하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 흥미로워지고야 말았다. ㅋㅋㅋ
잠시 후에 확인한 카톡으로 상대방 보험사의 사건 접수 번호를 확인했고,
남은 시간 우리는 편안하게 고기맛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식사가 거의 끝나고 나가려는데 나가는 길에 상대측에게 '좋은 시간 보내고 가시라'는 이야기를 할까말까 고민이 살짝 되는 거였다. 이럴 땐 아내에게 물어봐야지. 아내는 '아유~ 그럴 것까진 없을 것 같아. ㅎㅎ 그냥 우리 일어날 때 저쪽이 우리를 보면서 의식하고 있으면 살짝 목례 정도 하면 될 것 같아'라는 아주 현명한 이야기를 해준다. 흔쾌히 그러겠노라며 대답을 하고는 자리를 정리했다.
주변을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맞은 편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백발이 성성한 그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고개를 숙이며 "아~ 죄송하게 됐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아... 이거 진짜 현실인가? "네~ 식사 맛있게들 하고 들어가세요~" 라고 말씀 드리고는 식당을 나섰다.
40대 중반을 넘어 이제 두 자녀의 나이도 중학생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우리 부부도 나이가 들었을 때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오는 길 차안에서 아내와 나누었다. 운전자도, 운전자의 부모도 모두 교양이 있었고 자신이 한 잘못에 대해서 명확하고 정중하게 사과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고 심지어는 흐뭇하기까지 했다. (새차인 내 차에 흠집이 생긴 걸 고쳐야한다는 건 당연히 속쓰렸지만 말이다)
여담이지만 매우 중요한 포인트는 사실...
그 운전자 아주머니가 몰고 왔던 차가 아주 고가의 포르쉐 승용차였다는 점이다.
사실 '나이가 들었을 때 저런 모습'에 포함되는 것은 교양은 당연한 거고, 저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포함을.. ㅋㅋㅋ
아유!!! 암튼, 새해 액땜 한 번 자~~~~~~~알 했다!
선한 마음 가지고 사는 세상 사람들 모두 흥했으면 좋겠다!!
친절한 태도로 손님을 기분 좋게 응대해주었고, 정말 맛있는 음식 잘 만들어준 식당 주인 아저씨도 흥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