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스카유 온천(일본 아오모리 여행기 2)
330년 역사의 스카유 온천으로 이동했다. 이 곳 온천물은 강한 유황성 탕으로 국민온천 제1호로 지정될 정도로 치유효과가 있다 했다. 신경통, 류머티즘, 위장병, 부인병, 통풍, 당뇨, 피부병, 빈혈, 변비, 치질... 친절하게 읊어주는 병 이름엔 내가 아는 병은 다 있는 듯했다.
원천수가 그대로 나온다는 탕에 몸을 담갔다. 이 곳에 달걀을 넣으면 노른자부터 익는 신비한 탕이라 한다. 온천수에서 올라온 안개로 실내가 자욱해 맞은편에 있는 이 얼굴을 식별하기도 어려웠다. 일행들과 경박한 표현이나 웃음을 자제하면서 고요히 그 속에 스며들었다. 적막함 속에서 내 몸에 스미는 온천의 열기를 느꼈다.
끝없이 내리고 쌓이는 눈 속에 건물이 있어 눈 터널 속에서 목욕하는 기분이었다. 노천탕은 없었으나 주변 설경을 만끽할 곳은 많았다. 그렇게 눈이 내려도 제설차가 수시로 눈을 치워 자동차가 움직이는 데는 큰 지장이 없는 듯했다. 해발 900미터의 높은 지역이지만 특수 타이어를 쓰는 듯 체인도 장착하지 않은 채 자동차는 움직이고 있었다. 도로 양쪽에 4-5미터의 설벽이 서 있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감탄할 뿐이었다.
일본 제일의 상로식 아치교인 조가쿠라대교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120m 높이의 아치형 다리였다. 아오모리 산수화라 불릴 정도로 눈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산봉우리를 볼 수 있었다. 계곡이 겹쳐 진열된 산들이 흰 눈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내가 화가였다면 바로 붓을 들었으리라.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이 명물 대교 위를 한 줄로 천천히 걸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다리 위 눈길을 발걸음을 내디뎠다. 소복소복 눈 밟는 소리뿐 온전히 자연과 나와의 대화였다. 그리고 회상이었다. 지금까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내온 것들, 별로 한 것도 없이 해 놓은 것도 없이 살아온 허망한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따금 그 조용한 걸음마저 멈추었다. 침묵 속에 마음속 울림에 귀 기울였다. 징 소리는 아스라이 닿을 듯한 생각을 더 가까이 불러주기도 했고, “너 어떻게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았어!” 하는 깨달음의 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눈길을 걷다 보니 부끄럽게 살아온 과거, 나를 위해 고생하며 공부시켜준 형님, 형수 그리고 마흔넷에 나를 낳아 길러주신 해녀 어머니 생각이 밀려왔다. 그저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 이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후회, 민망함과 송구스러움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이 교차되는 엄숙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나를 닮은 나무를 찾아 응시하며 '앞으로 더욱더 잘 살아보자. 즐겁게, 건강하게 살아가자' 다짐했다. 이 아름다운 순간을 먼저 가버린 그녀와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웠다. 그리움이 가슴에 치밀었다. 설중 걷기 명상은 영혼과의 대화였다. 꿈을 꾼 듯 아득한 시간이었다. 다시 차에 올랐고, 정신 차려보니 버스는 눈 속으로 스릴만점의 설중 곡예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