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청희 Oct 04. 2020

흑차를 좋아하세요

흑차를 아시나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찻잎을 후발효한 것이 흑차입니다. 보이차가 흑차의 일종에 속하지요. 흑차 중에서도 중국 운남대엽종 찻잎을 특정 공정으로 가공한 것을 보이차라고 합니다. '차'라고 하면 보이차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지만, 흑차라고 하면 의외로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 것 같아요. 먼 옛날, 중국과 티베트를 오가던 상인들의 보따리에도 들어 있었고 배를 타고 프랑스로 건너가기도 했죠. 벽돌이나 둥근 쟁반 모양이 가장 흔한 형태입니다.
흑차는 영어로 Dark tea라고 합니다. Black tea는 홍차를 말하지요. 이 당황스러운 명명법이라니. 유럽에서는 찻잎을 기준으로 이름을 짓고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찻물을 기준으로 이름을 정했습니다. 둘 다 잎은 검은색, 수색은 흑차가 더 진하지요. 오늘은 이름은 검고 영혼은 붉은, 흑차(黑茶)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차차 티클럽. 서울 창신동

봄에는 녹차, 가을에는 홍차가 있다면 흑차는 겨울의 차라고 생각합니다. 흑차에 손이 가게 되면 겨울이구나, 싶습니다. 산화/발효도가 높은 차일수록 따뜻한 성질을 가지게 되는데, 흑차는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온몸이 따뜻해집니다. 손발이 차가워 겨울나기가 힘든 저로서는 매일매일 마시고 싶을 정도예요.
흑차에도 종류가 있어 생차/숙차로 나뉩니다. 생차는 집에 보관해두고 천천히 발효시켜가며 먹는 것, 숙차는 이미 발효되어서 나온 제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쉽게 말해 생김치와 묵은지인 셈이죠. 갓 나온 생차는 길들여지지 않은 날카로운 맛을 가졌습니다. 사람이 성숙해 가듯이, 차도 세월을 머금으면 부드러워지고 향도 더 그윽해집니다. 어떤 분은 생차를 마시면 속이 안 좋기도 하고 반대로 숙차의 열감이 과하게 다가오는 분도 계십니다. 모든 차가 그렇듯 자신에게 맞는 차가 있을 거예요.

1년 된 흑차와 10년 된 흑차는 아주 다른 차 같습니다. 단단하게 긴압(압축)한 차와 느슨하게 풀어놓은 차도 또 다르지요. 비교해 가며 마시는 재미가 있는 차입니다. 몇백 년씩 묵은 차는 '마실 수 있는 골동품'이라 하여 천만 원, 때론 억 단위를 호가하기도 합니다. 정말 마실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흑차/보이차 하면 자사호가 꼬리표처럼 따라옵니다. 방송에도 많이 나오죠. 저도 자사호 사용을 즐기는 편입니다. 마음이 어수선할수록 꺼내는 다구의 수가 많아지곤 해요. 나무와 흙으로 된 다구들을 천천히 어루만지다 보면 사람이 정갈해지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흑차를 우린다고 해서 꼭 다구를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요즘은 티백으로도 많이 나와서 어디에나 간편하게 우릴 수 있어요. 참 좋은 세상이죠. 무엇보다 자신의 취향과 환경에 맞게 마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차를 마시는 일에 있어 장벽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어떤 차는 시공간을 바꿔 놓기도 합니다. 저는 흑차를 마실 때마다 그런 기분을 느낍니다. 흑차의 대표적인 향은 흔히 말하는 '흙냄새'입니다. 짚단을 잔뜩 쌓아놓은 시골 창고에서 날 법한 향이지요. 흙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비 냄새, 이끼 냄새, 푹 익은 과일향이 나기도 합니다. 차를 입 안에 머금는 순간, 빗소리가 들리고 제가 앉아 있는 공간은 고즈넉한 고택 마루가 됩니다. 21세기 차인은 뭐든지 디지털로 불러올 수 있지만 차만큼은 못한 것 같아요. 제 나이보다 더 오래된 차를 마실 때면 말 없는 스승님이라도 만난 기분이죠. 잊고 있던 감각을 깨우고 온전히 차와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제가 흑차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오늘은 흑차 한 잔, 어떠신가요.

작가의 이전글 차 말고 차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