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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월령 May 12. 2024

예술과 돈의 상관관계


       이제는 지겹기도 한, 떼려야 뗄 수 없는 <예술과 돈 이야기>에 또 한마디 보탠다. 지겨울 정도로 많이 회자된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혹은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 계속해서 사고해 나갈 수밖에 없겠다.




   결국 예술에 관심 없는 자들의 돈을 끌어들이려면 그들에게 예술의 효용성을 증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부 예술인들은 예술은 효용성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항변하곤 한다. 예술은 누군가의 필요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로 숭고하다고.


돈은 벌고 싶고 효용성은 증명할 수 없고 그럼 대체 어떡하면 좋을까? 판매자가 기능을 증명할 수 없는 물건을 판다니 시작부터 참 난제다.


사장이 나서 "내 음식은 맛있다"라고 주장하는 밥집이 있다. 그러나 손님이 맛없다고 하면 그건 맛이 없는 집이다. 아니라고 우긴다면 골목식당나오는 여느 고집불통 진상 사장과 다름없다. 그렇게 본인만의 철학을 계속해서 고수하면 1~2년 내에 파리만 날리다 자연스레 식당 문 닫는 수순을 밟을 게 뻔하다. 그건 철학이 아니라 강아지똥 철학일 확률이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님의 리뷰를 보고 밥집을 찾아가는 이유가 있다. 밥집은 일방적 주장이 아닌 맛으로 증명해야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입맛은 꽤나 냉정하다. 맛있으면 떠들지 않아도 알아서 입소문이 나기 마련이다.


예술도 마찬가지라고 하고 싶다. 내 예술이 숭고하다고 아무리 주장해 봐야 보는 사람들이 별로라고, 안 사겠다고 하면 그만이지 않나. 제공하는 쪽에서 좋다고 해봐야 대중들이 찾아주지 않는다면 지속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내 음악은 좋아요, 내 그림은 멋져요'라고 열심히 이야기하고 다녀도 설득을 못하면 결과적으로 돈을 벌 수 없다. 돈을 못 번다는 것은 제공하고 있는 게 없다고도 볼 수 있겠다. 결국 산다는 사람이 없으면 어쩔 것인가. 또 부자들 돈을 뜯어서 강매할까? 참 의로운 짓이다.


일례로 스포츠는 사람들이 찾기 때문에 돈을 번다. 게다가 상당히 많이 찾는 편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만나면 스포츠 얘기를 나누고 월드컵 시즌이 되면 축구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 축구 얘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 종목이었는진 기억이 안 나지만 팬들에게 소홀한 플레이어에 향한 일침으로 "팬들이 찾지 않으면 그저 비생산적인 공놀이 일뿐"이라는 말도 있었다. 일침에 따르면 스포츠는 행위 자체로는 생산적인 활동과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돈이 된다. 이는 사람들에게 분명 생산성이 아닌 무언가를 제공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고루한 사고를 가진 예술가들이 문제다. 낡은 예술가는 변화해야 한다. 지금 당장 국가 지원이 줄어든다고 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고루하고 수준 낮은 예술가들이 모든 예술가의 이미지까지 망치고 지원 명분을 깎아먹고 있다. 대중에게 대단한 예술이랍시고 돈 달라고 면전에 들이 대본들 호감을 사지 못하면 반감만 살 뿐이다. 그것은 받자마자 길바닥에 버려지는, 일방적이고 쓸모없는 전단지와 다름없다.


예술을 돈과 떼어서 봐야 한다는 사람은 만약 그런 세상이 있다면 거기에 가서 편히 살라고 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해답이다. 이 판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결국 돈 달라고 징징대는 수동적인 예술가가 아닌 100명 중 99명이 포기하는 열악한 시장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날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능동적인 예술가일 것이다.




   나는 이전부터 정부 지자체의 지원이 아닌 돈 잘 버는 예술가가 신인 예술가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 목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엔터테인먼트 사장이기도 하다. 그래야만이 예술이 선순환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당연시 누군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논리가 궁금하기도 하다. 자신이 무언가 숭고하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걸까? 슈카월드에서 2022년 커뮤니티 유행어로 소개된 단어가 떠오른다.


누칼협


누가 칼 들고 예술하라고 협박했나? 물론 세상에 칼 들고 협박해야만 하는 일이 있냐 따지면 99.99%는 아니겠지만 본인이 자처해서 하고 있는 일에 남 탓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게 적어도 자신이 좋아서 하는 예술이라면 말이다.


돈 못 버는 예술가들 불쌍하다고, 알아주자고 하는 위선적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열심히 오래 했는데 돈 좀 벌게 해 주자>는 의견이다. 예술을 10년, 20년이나 했는데 성공을 못했으니 노고를 인정하여 돈을 쥐여줘야 한다고? 그러면 누가 됐건 무조건 10년, 20년 하면 알아줘야 하는가? 단순 시간만 투자한다고 모두가 빛을 볼 수 있다면 누군들 안 하겠나. 그런 게 있다면 당장 나부터 하고 그다음은 내 가족, 내 친구도 시키고 싶다. 한 달을 하든 10년을 하든 100년을 하든 100명 중 99명이 실패하는 것이 이 예술판의 불편한 진실이다. (*여기서 실패란 여러 이유로 예술 활동을 지속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실력 없는 사람은, 혹은 실력이 있어도 수요가 없는 사람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불만이 있으면 본인이 판을 바꿀 수 있는 자리에 서서 판을 바꾸면 된다. 아니면 영향력을 높여 목소리를 키워라.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생각은 않고 환경 탓만 한다면 세상에 불만을 가짐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자연스러운 세상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조던 피터슨 교수님은 항상 이야기한다. 세상 걱정하기 전에 네 방구석부터 정리하라고.




   사실 나도 모든 예술가들이 잘 먹고 잘 살길 바라고 있다. 왜냐면 바로 내가 돈 못 버는 가난한 예술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말이다) 늘어가는 지출에 커지는 마이너스가 항상 압박해 온다.


그러나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존재할까.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평등한 세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평등한 건 돈이 많든 적든 모두 생은 한 번이라는 기회를 가지는 것과 죽은 것뿐이겠다. 나는 작곡가다. 당장엔 잘 안 팔리는 음악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돈을 못 벌던, 돈이 들던, 마이너스가 나던 괘념하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재밌으니까,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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