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달리기, 다른 생활 방식의 선언.
I wanted to own my own bicycle. When I got the bike I must have been the happiest boy in Liverpool, maybe the world. I lived for that bike. Most kids left their bike in the backyard at night. Not me. I insisted on taking mine indoors and the first night I even kept it in my bed.
- John Lennon
최근 자전거를 구매하였습니다. 여러 온라인 사이트를 검색한 후 결정한 바구니가 달린 고전적 느낌의 미색 자전거인데요, 참고 이미지를 살펴보며 아내와 아이들 모두가 사용하기에 적절한 크기와 용도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재미있는 경험을 하였던 것이 자전거를 구매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며칠간 스스로 묘한 흥분에 빠진 나 자신을 발견한 점입니다. 기억 속 연상되는 장면이 있다 싶었는데, 초등학교 4학년 처음 이웃집 자전거를 빌려 타는 법을 배우고는 아버지를 졸라 겨우 자전거 구매를 허락받았던 그날의 저 자신이 기어코 떠올랐습니다. 아마 부모님과 자전거를 사러 가기 전날 밤에는 그 기대감에 잠도 설쳤던 것 같습니다.
모두 같은 경험이 있지 않나요? 두 바퀴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는 다들 어떻게 넘어지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타는지 도무지 믿기지 않지만, 딱 한 번 그 기술과 방법을 몸에 익히면 다시는 자전거를 타지 못했던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요. 그 육체의 감각은 세월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굉장히 저렴한 대가에 대한 비용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구매를 확정하고 며칠 후, 핸드폰으로 자전거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집 앞으로 나가 직접 실물을 마주하니 저의 흥분은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서두에 적어두었던 자전거를 얻고서는 리버풀에서 가장 행복한 소년이 된 것 같다던 존 레논의 고백처럼, 그 순간 저도 서울에서 가장 행복한 중년 아저씨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차가 없는 저로서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첫 차를 산다고 한들 이와 같은 만족도를 또 느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왜냐하면 자전거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고, 주유를 하지 않아도 되며, 게다가 보험금이나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되고, 정체현상 없이 달릴 수 있다는 점은 물건을 꼼꼼하게 다루지 못하고 일정 관리에 다소 느슨한 저에게는 그야말로 적격이었으니까요.
갑작스럽게 행동반경이 늘어났던, 말 그대로 신세계를 경험했던 소년 시절의 경험이 생생해서 그랬을까요. 예쁜 자전거를 마주한 저는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아파트에 늘어서 있는 자동차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많은 자동차가 필요할까 싶은 생각마저 들더군요.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어진 지 퍽 오래된, 지하 주차장도 없어 만성적인 주차난에 시달리고 있는 단지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라도 자동차는 관리적 측면과 더불어 환경적이나 경제적으로 매우 부담되는 교통수단임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또 바로 이러한 고민 의식과 더불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지점은 자동차가 빚어내는 사회적인 ‘가치 인식’에 대한 것입니다.
자전거를 구매한 김에 이리저리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다 한 흥미로운 웹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일명 ‘자전거 선생’이라고 불리는 암스테르담 대학의 마르코 테 브뢰멜스트로트(Marco te Brömmelstroet)교수의 인터뷰였는데요, 그는 현대의 시간 효율성 추구가 사회의 가장 취약한 것보다 가장 빠른 것을 우선시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로 인한 여러 가지의 반사회적 트래픽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에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1968년 암스테르담 힐튼 호텔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시위를 벌였을 때 침대 위에 자전거를 놓은 이유도 그 유년의 기억장치로만이 아닌 자전거가 다른 생활 방식에 대한 하나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잔인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상징물로서 대중들에게 그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이죠.
마르코 교수가 보기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항상 최단 경로를 택하지 않고 공기역학적으로 앉기보다는 똑바로 앉아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한다고 하는데,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더군요. 저도 몸을 펴고 앉아 적정한 속도를 스스로 통제하며 주변을 느슨하게 바라볼 수 있는 점 때문에 자전거를 더욱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자연의 풍경과 스치는 사람들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는 상호소통 가능성은 느린 속도로 가는 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상호소통 영역은 많은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개개인의 시민으로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요즈음 같은 때는 더욱 그렇고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되돌아보았을 때 자동차와 자전거 중 어느 쪽의 속도와 생활 패턴에 더 맞춰져 있나요? 혹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잠시 멈춰 있었던 우리네 삶의 속도는 어느덧 그 기억을 잊은 채 다시 가속도가 붙어가고 있지는 않나요? 아니면 프랑스 파리시가 내세웠던 ‘15분 도시’ 계획처럼 삶의 동선을 비약적으로 줄이는 사회적 전환의 가능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나요? 몇몇 사람들은 후자와 같은 상상력이 때로는 사회 전복적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이동성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이해를 바탕으로 강력하게 장악해 온 교통 공학의 100년 전통을 무너뜨릴 수 있는 실험에 가까우니까요.
하지만 마르코 교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은 오늘날 모빌리티 계획의 기본이 되는 효율성과 개인주의가 반사회적 도시를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모두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개개인을 파편화하며 인간의 가치를 효율성으로만 바라보게 된다면, 어느덧 사회적 보살핌의 영역은 사라지고 소수 공간을 제외한 도시 거주지의 대부분은 점차 슬럼화될 테니 말이죠. 우리는 이제껏 속도와 효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선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어야 할 시점입니다.
이와 같은 관련 기사를 읽고 나니 매일 출퇴근길 마주하던 그 빼곡한 승용차들로 가득한 도로의 풍경이 새삼 다르게 보이더군요. 사람 살기도 비좁다고 하는 도시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공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체 구간에 들어선 승용차 대부분은 1인 승차 차량이더군요. 그 순간 상상력을 동원해 차의 골조를 제거하고 바라보면 도로 위에는 빽빽하기는커녕 아주 띄엄띄엄 사람이 들어서 있는 것이었어요. 이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많은 여유 공간이 생겨나는지 무척 놀라웠어요. 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을 낭비하고 있으니, 차량정체가 일어날 수밖에요. 효율성을 쫓아 차량 이동을 선택했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의 공간 안으로 다가가지 못한 채 그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죠. 게다가 서로가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당연히 상호소통 가능성 또한 줄어들 수밖에요. 만약 이 도로 위에 자동차 대신 자전거가 놓여있었다면 그 풍경은 또 어찌 달라졌을까요?
물론 자동차가 가져다주는 속도의 중요성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어요. 저 역시 매일 그 속도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걸요. 또한 생계를 위해서라도 차량이 꼭 필요한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공간을 과도하게 점유하고 있는 자동차를 우리 삶의 풍경 속에서 조금씩 지워나가야 한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가 독점하고 있는 도로 및 주차 공간을 다시 사람에게 내어주고, 개인이 아닌 공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더 많은 공간이 더 많은 시민에게 부여될 때 비로소 우리는 공적 소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꼭 승용차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마르코 교수나 저와 같은 사람들처럼 자전거를 먼저 활용하거나 ‘따릉이’와 같은 공공자전거를 이용해 보면 어떨까요? 아마도 자전거는 당신에게 마음대로 멈출 수 있는 ‘속도의 통제에 관한 권한과 자유’를 선사해 줄 것입니다. 가끔 멈춰 자연을 음미할 수 있는 것처럼, 독서의 아름다움이 가끔 읽기를 멈추고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점에 있는 것처럼 말이죠.
저 역시 당분간은 자전거로 멈추듯 달리는 것이 큰 취미가 될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n.kr/295c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