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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May 29. 2020

코로나가 대신 꾸어 준 노자의 꿈

속도위반 사회의 안전거리 회복

도덕경 80장에는 노자가 상상했던 이상적 사회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지만,
사람들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습니다.


소강 국면으로 보였던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서울, 인천을 중심으로 다시금 늘어남에 따라 5월 13일부터는 서울 지하철 이용 시에는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물리적 거리두기 지침도 다시금 강화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돌아보았을 때 다소 지나치게 느껴졌던 노자의 주장도 나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간 우리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확장성'일 것이다. 시장의 확장은 공간과 인원의 증대가 핵심이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밀도를 집약적으로 높여야만 했다. 당연하겠지만 높은 밀도는 높은 텐션을 가져온다. 우주 안의 항성이 폭발하여 초신성이 되는 것 또한 결국 그 밀도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도시화의 병리와 피로의 일정 부분은 바로 그 밀도와 긴장감에서 유발한다.

코로나19 사태는 평소 눈에 띄지 않던 사회적 갈등을 드러나게 한 계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높아져 갔던 우리네 일상의 밀도와 속도를 조금은 느슨하게 해주는 역할 또한 하고 있다. 물론 고속도로를 달리던 이가 갑작스레 국도로 이동하게 된다면 처음에는 그 속도감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고속 때문에 인식할 수 없었던 근거리의 풍경이 그의 눈에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요즘 우리의 삶이 이와 비슷하지는 않을까? 멀리 나가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 머물면서 가족이나 가까운 주민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지자체의 긴급생활지원금이나 지역화폐 사용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에 기여한다. 이처럼 뜻하지 않게도 우리는 개개인이 뿌리내리고 있는 영역과 공간을 다시금 되짚어가고 있다. 닭이 울고, 개가 짖어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그의 저서 『 세계사의 구조 』에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돌아보며 복종과 보호의 교환양식, 상품교환양식을 넘어 친족 공동체 이전의 인간 사회에서 존재했던 호혜적 교환양식의 고차원적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대안으로 사회적경제가 많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그의 주장을 허투루 들을 것은 아니다.


이를 통해 '미래에 대한 실마리가 과거에 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또한 이와 같은 상황이 길어진다면 개인적∙사회적 피해는 감당하기 어려운 단계로 치달을 것이다. 그러나 앞만 보며 달렸던 우리 일상의 밀도와 속도계를 다시금 살펴보며 안전속도를 회복하는 일은 이후 새로 구성될 우리 사회의 건강성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노자가 꾸었던 오랜 꿈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이제 막 눈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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