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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민주주의를 향해

경희대 김상준 교수의 책 <미지의 민주주의>를 다시 읽으며

by 물꿈

종종 낯선 자리에 가게 될 때 다른 이들로부터 ‘어떠한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한다. 초면에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머쓱해 그냥 ‘회사원’이라고 말한 적이 퍽 많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스스로 비영리단체에 근무하고 있다거나 NGO활동가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상의 소갯말에는 두 가지 뜻이 함의되어 있다. 첫째는 이제 우리 사회가 NGO/NPO에 대한 이해도가 제법 높아져 해당 표현을 써도 무방할 정도로 시민사회 영역이 커졌다는 것이고, 둘째는 나 스스로 NGO/NPO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용어에 대한 깊은 분석적인 배경이 없었기에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질문을 할 때면 다소 막연했던 것도 사실이다.


용어를 단순화해 정리하자면,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비정부조직)는 정부와는 다른 단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며, 감시 및 견제와 같은 활동을 하는 애드보카시(advocacy) 단체를 주로 지칭한다. 비슷한 의미로 통용되기는 하지만 NPO( Non-Profit Organization/비영리조직)는 시장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과는 다르다는 의미로 복지 제공이나 봉사활동 등과 같은 공공서비스 제공을 하는 단체를 주로 일컫는다. 그리고 이상의 전체를 아울러 CSO( Civil Society Organization/시민사회단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실 앞서 말한 대로 NGO/NPO는 일상적으로 크게 이질감 없이 통용되고 있다.


이를 알건 모르건 시민사회 영역은 국가와 시장의 대안으로 떠올라 '제3섹터'의 위치로까지 격상하였다. 그리 생각하면 머릿속에 한 가지 그림이 떠오른다. 교집합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제갈량의 세솥의 다리와도 같은 각자의 '섹터'를 견고히 지키고 있는...


그런 와중에 문득 경희대학교 김상준 교수의 책 <미지의 민주주의>를 다시 읽으면서 그 개념적으로 해체(혹은 용해)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9788957332023.jpg <미지의 민주주의 - 신자유주의 이후의 사회를 구상하다 (아카넷 · 2011)>


무엇보다 우리가 기존에 배워왔던 일반적인 도식, 즉 <국가-시장-시민사회> 이상의 분할적 개념과 도표적 이해를 해체하고 그것을 공공성(publicness)이라는 공동 매체(common token)를 통해서 상호연관된 ‘시민적 사회’로 확장된 개념의 소개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이것들이 서로서로가 침범할 수 없는 일정한 울타리나 영역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 시민주도의 공공성 원리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계된 사회상을 함께 그려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시장-시민사회>는 각자의 공간을 고집스레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담을 과감히 해체하고 열고 보완해야 하는 것이다. ‘Not in my backyard’는 더 이상 통용되어서는 안 되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타적 시민사회론을 경계한다’는 선언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시민사회가 국가와 시장 간의 배타적 영역을 구축하며 갈등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와 동시에 NGO/NPO 내부에서도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 구성상의 의미로서도 NGO는 진보적인 사회운동적 시민단체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해 버리고, 반대로 NPO는 탈정치적인 사회 서비스단체로 한정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된 모습을 바라볼 수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사회운동과 정치, 조직 미션에 부합하는 사회서비스가 서로 분리될 수 있는가? 사회 문제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부정적인 결과물이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 속의 정치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어느 한쪽만의 정체성을 오롯이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시민사회에 있으면서 가장 피해야 할 부분도 이와 같은 내부 갈등 영역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몇 차례 경험해 아쉬웠던 기억은 외부 사회문화운동을 해야 할 NGO/NPO들이 내부갈등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투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조직 에너지 총량 중 너무 많은 영역을 내부에 쓰이기에 정작 외부활동은 에너지를 잃고 무색무취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조직의 존재의미에 부합하는 것일까? 영역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문을 활짝 열어 그 안에 대상을 적극적으로 들이고 합의를 통해 공공의 영역을 구축해 ‘시민적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미션을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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