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 새 학기가 시작할 때 즈음
그림 작가 온수와 교육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물꿈이 함께하는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입니다.
'엄마'와 '아빠'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가 만나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나눕니다. 멀고 깊은 이야기도, 가깝고 가벼운 이야기도 담습니다.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는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에 공유됩니다.
나만 그런 것일까? 실제적으로 새해는 1월부터 시작되지만 심정적으로는 이후에도 두 번 더 찾아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장 먼저는 1월 1일에 세워놓은 계획이 무산될 즈음 패자부활전처럼 다가오는 구정 새해. 이 구정은 '맞아. 지금부터가 진짜 새해지'라며 그간 후회의 기억이 말소되는 놀라운 효능을 보이며, 많은 이들로 하여금 불현듯 지혜로운 조상님들의 가치를 따르는 전통주의자로 탈바꿈시킨다. 그러다가 '진~~~짜! 마지막!' 느낌으로 다가오는 새해는 바로 3월, 새 학기가 시작할 때 즈음이다. 물론 회사를 다니는 입장에서 3월은 이미 1/4분기를 결산해야 할 때이지만 오랜 학교 생활을 통해 습득된 정서로는 이제야 슬슬 뭔가를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 이 공교육의 위대함이여...
올해는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학부모라면 다들 비슷하겠지만 덩달아 나도 떨린다.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과는 달리 담담한 둘째 아이의 모습을 보며 문득 상반된 나의 입학식 날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이제는 꽤나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이상하리만큼 그날의 감정과 풍경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른다.
가장 먼저 다가오는 감정은 바로 '당혹감'일 것이다. 익숙한 것과 결별한다는 사실, 안전한 집과 부모의 품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입학식이라는 행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던 것이다. 또 그 풍경은 또 어떠한가. 교문 안의 분주함과 웅성거림(그 당시는 학생이 넘쳐 오전/오후 반을 나눠 운영하던 시기이니 당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좁은 운동장에 모여있었던가 상상해 보라, 혹은 기억을 떠올려 보라), 잔칫집(주로 부모들)과 초상집(주로 아동들)의 소음들이 교묘히 매시업 된 공간은 뭐라 장르를 규정하기 조차 어려웠다. 그리고 그것을 프로듀싱하는 교사들의 모습은 천사인지 저승사자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 당시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입학식 독사진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 뾰로통한 얼굴이란. 그때 나는 이미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이지. 아! 이 공교육의 지난함이여...
역시나 쉽지 않았던 학창 시절을 보내고 지금처럼 역으로 부모의 입장이 되니 이러한 입학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부모는 육아에서 해방되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지금 아이 곁에서 헉헉대는 아내를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이뿐만이 아니라 부모에게도 초등학교 입학은 아이와의 (공식적인)첫 결별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전까지 완벽히 곁에서 바라보고 통제하던 아이의 시간을 이제는 더 이상 부모가 공유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의 '사적시간'은 점차 늘어갈 것이며 당연하게도 아이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입학식은 부모에게도 '떨어져 있는 시간'에 대한 마음을 다잡는 행사가 아닐까 싶다.
아이가 홀로 탄 우주선이 솟아올라 궤도를 벗어나면 지구의 중력은 점차 약해지고 이윽고 또 다른 행성의 중력에 이끌린다. 어느 순간 부모가 아무리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고 싶어도 그에게 더 가까운 또 다른 별이 당기는 힘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같은 물리적 환경이 적용되는 공통의 세계에서 아이는 벗어나 내가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중력의 법칙 속에 살아갈 것이다. 때문에 지금 아이들과 부대끼는 시간이 고되지만, 아이의 우주여행이 길어질수록 지금의 시간이 나중에는 무척 그리울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런 불평마저 사치가 아닐까 싶다.
아이의 입학, 아니 아이의 첫 우주여행.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아이의 출발 앞에 부모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 그러자 어린 시절 뉴스를 통해 보았던 미항공우주국의 로켓 발사 모습이 떠올랐다. 우주비행선의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과 이어지는 카운트다운에 가슴 설레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있으랴.
10...9...8...7...
그 시절, 입학식 때 나는 그 우주비행선 안에 타고 있었지만 지금은 부모가 되어 그 곁에서 함께 카운트를 외치고 있다.
...2...1...0!!
추진 로켓에서부터 거대한 불꽃과 연기와 튀어 오르고 우주비행선은 서서히 비상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어느덧 가속도가 붙어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바라건대 나는 그 추진 로켓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 그의 여행을 응원하며 그를 끌어주고 밀어주는, 그리고 그것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그러다가 어느덧 그 역할이 종료되어야 할 시점이 다가오면 미련 없이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는 바로 그런 추진 로켓. 그렇게 멋지고도 아름다운 낙하의 포물선을 그리고 싶다.
내 입장에서 아이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지만
사실 아이는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온수'의 다음 이야기는 3월 20일에 공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