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민교육에 관한 새로운 담론 제안
혹시 여러분은 언제 자신을 ‘세계시민’이라 느끼나요?
세계시민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 범주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지구촌에서 개별 국가의 국민으로서가 아니라 상호의존성이 높아가는 지구촌 전체체계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세계적 시각으로 지구촌의 문제를 인식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구정화,2011)’을 뜻하죠.
물론 한국 사회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시민에 대한 인식보다는 한 국가 안에서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역량에 대해 오랜 담론이 이어져 왔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와 같은 시간적·경험적 축적 아래서 민주시민교육도 공교육 안으로 점차 스며들어 갔고요.
시민교육이 어느 정도 안착된 2010년도 무렵부터 시민에 대한 인식 개념이 더욱 확장되면서 ‘세계시민’에 대한 의제가 한국 사회 안에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생활영역이 지정학적 간격을 넘어 글로벌하게 뻗어 나감에 그 배경이 있을 것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지금 바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 엔진을 켜보면, 그 안의 다양한 정보와 지식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이어져 있는 것을 느낍니다(월드 와이드 웹을 개발한 팀 버너스 리의 작명센스에 다시금 박수를). 인식하건 못하건 우리는 이미 상호의존적인 세계시민으로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관련해서 2019년도에는 퍽 유의미한 결과물도 나왔습니다. 무려 ‘세계시민’ 검인정 교과서까지 몇몇 교육청의 힘으로 출간하게 된 것이죠. 오랜 기간 동안 국제개발 NGO들이 주축으로 해오던 세계시민교육이 시민교육과 마찬가지로 공교육 안으로까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물론 그때로부터 시간이 흘러 요즘에는 환경교육이 더욱 각광받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저도 비영리단체의 관련 부서에 있으면서 해당 교재뿐만이 아니라 다른 정부 단체나 NGO들의 교육 커리큘럼을 많이 살펴보았습니다. 저도 그것들을 열심히 학습하고 숙달해 강연 시 학생들에게 오롯이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현장에서 커리큘럼을 따라 하려 하면 할수록 뭔가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완벽한 교육교재란 존재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내용이 이렇게 바뀌면 어떨까?’ 질문이 생기는 영역들이 하나 둘 생겨 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이어질 제 글들이 바로 그러한 질문들을 되짚어나가는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이후 좀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해당 교재들이 학생들의 내용 이해 중심의 ‘도덕성’ 교육이 아닌, 실천 중심의 ‘시민덕성’ 교육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꽤 길게 시민의 역사적 기원 및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찰해 보고, 나아가 이를 공간적 · 의미적으로 확장한 개념으로서 세계시민을 정의해야 할 것입니다(쉽지 않은 여정이 예상되긴 하네요...).
이상의 개념 설명을 위해 저는 모리치오 비롤리(Maurizio Viroli)와 같은 신로마 공화주의자들의 이론을 참고하였어요. 그들이 말하는 ‘비지배의 자유’로부터 발생하는 시민 덕성의 실천적 연결과정에 특별히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시민 덕성’이란 자유를 만끽하는 삶에서 나오는 평안을 사랑하며, 계속해서 그러한 평안함을 누리기 위해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법령에 복종하며, 자신들의 자유로운 생활방식을 파괴하려는 것들에 맞서 저항하는 시민들 사이에 공유되는 공동의 실천가치를 말합니다.
제가 보기에 시민 덕성은 좀 더 가볍고, 쉬우며 그래서 실현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동일한 의미로 세계시민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고려사항은 실제 교육의 목적인 ‘실생활에서 적용’이 가능하게끔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일반적인 세계시민교육과는 뭔가 다른 교육 접근방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미리 이상의 범주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1)세계시민의 기준은 인지능력보다는 ‘실천성’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이상의 실천을 위해서는 모든 상황을 보편화할 수 없으며 일상적인 상황일지라도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특수한 상황이라는 ‘특수성’에 대한 인식이 요구됩니다. 3) 이러한 이해관계와 갈등의 해결 과정을 통해 사적이며 동시에 공적인 ‘유익성’을 체감하며, 4) 이와 같은 공공선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책임성’의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해당 4가지 범주 기준으로 대표적인 정부 영역 교재 몇몇을 대응해 보니 세계 시민성에 대한 정의와 해석, 접근방식이 다소 모호하게 설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이는 세계시민이라는 개념 자체가 복합성을 띠고 있는 이유도 있겠으나 해당 개념의 모호성은 결국 구체적 실천의 모호성을 초래하는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이에 향후의 세계시민교육은 이론을 벗어나 다양한 현실 문제를 다루는 상황적 요소가 더 적극적으로 노출되어야 하며 학습자가 그 문제에 직접 참여하고, 정의하고, 실행하는 전체 과정으로 재구성되어야 할 것 같아요. 또 모르죠. 제 바람대로 보완된 세계시민교과서가 새롭게 발간될지도...
기대의 마음으로 앞으로의 긴 글을 이어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