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의미와 성격에 대하여
세계시민에 대한 언급에 앞서 선행개념인 ‘시민(市民, Citizen)’의 의미와 성격을 먼저 확인해 볼까요?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시민이라는 명명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고대 근대 현대로 이어지면서 그 의미가 지속적으로 바뀌어 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시민은 단지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역사적인 개념인 것인 것이지요.
시민이라는 명칭의 의미를 한국적 상황 안에서 되짚어 보면 경술국치 이전까지 일반적인 시민이란 시전상인이라는 의미와 동일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같이 협소하게 정의된 이유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과거 한반도 내 존재한 왕조시대 동안 왕권이 미치지 않는 독립된 도시 공동체가 발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 같아요. 이후 일제강점기 기간 중 일본의 도시화 추진과정 속에서 시민은 도시 거주민으로 점차 그 의미가 확대되어 갔습니다. 오늘날에도 시민이라는 말은 행정구역상 도시에 거주하는 주민이라는 뜻으로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죠.
이처럼 시민이라는 명칭의 개념은 도시에서 출발합니다. 시민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폴리테스(polites)’나 라틴어 ‘키비스(civis)’ 모두 고대 그리스의 행정 단위인 도시 또는 (도시)국가를 뜻하는 ‘폴리스(polis)’, ‘키비타스(civitas)’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 안에서도 국소적으로 통용되던 이러한 시민의 개념은 광복 이후 산업화 과정과 함께 일어난 다양한 시민운동 및 민주화운동과 맞물려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었으며, 이후 점차 지금과 같은 주체적인 시민의 의미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시민에 대한 정의는 서구적 민주주의 발달과정에서 확립된 개념이며 따라서 시민 개념은 민주주의의 등장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시선을 저 멀리 그리스로 돌려보죠. 잘 알려진 것처럼 현대의 시민에 대한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 민주정 체제가 등장하며 가장 먼저 형성되었습니다. 도시 국가 폴리스는 ‘데모스(demos)’라고 불리는 시민들에 의해 공공의 사안이 함께 논의되고 결정되는 정치적 공동체였죠. 이때의 데모스는 성년 자유민으로 단순히 도시 거주자가 아닌 시민으로서의 위치와 자격을 가진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들은 아고라(agora)와 같은 공론장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교류하며 그 결정에 있어서도 권력이 배후에 작동하지 않도록 자신들만의 선거제도와 별도의 배심원 선정 도구(kleroteria)를 개발하는 등 국가를 시민들의 참여에 의해 공동 운영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민들 또한 이러한 국가운영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이자 책무로 여겼다죠.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시민이란 현대의 시민의 구성과는 달리 여자나 노예, 외국인들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상의 한계가 있음에도 권력이 집약되는 군주정이나 소수의 귀족들이 국가를 운영해 나가는 과두정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폴리스의 운명을 결정하는 공화적 측면에서 아테네의 민주정은 주체적 시민 개념의 탄생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에요.
이후 고대 로마에도 이러한 공화주의적 시민 관념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시민들은 로마법을 통해 선거권 및 재판권 · 재산권 등을 보장 및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아직 이탈리아 반도의 패권국가로 주변국가들과 전쟁을 이어가던 기원전 1세기 초반 이전까지만 해도 로마의 시민권은 로마시민권, 라틴시민권, 이탈리아 동맹국시민권으로 나뉘며 그 권리에도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전쟁과 복속 등을 통해 점차 영토를 확장하여 대제국으로 발전해 갔고, 점령 영토 내에 많은 이민족을 지배하게 됨으로써 차츰 이들에게 적용되는 새로운 법이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만민법(ius gentium)’이라고 일컬었는데, 이상과도 같은 만민법은 널리 로마제국 내의 이민족에게 적용되는 것이었으므로 결과적으로 제국 어느 곳에서나 두루 적용될 수 있는 합리적이고도 보편적인 원리를 형성하게 되었죠. 이와 같은 로마의 만민법 제정이 현대 시민의 개념 형성에 중요한 의미로 작용한 것은 하나의 법체계의 준수 여부를 통해 공통적 시민의 정체성이 다수에게 동일한 형태로 부여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중세 시기에 들어와서는 왕과 봉건 영주가 지역의 정치와 경제영역을 장악해 공화적 의미로써 시민들의 주체적인 사회참여가 어려워졌습니다. 더불어 종교적 권위가 강하게 지배했기에 정치적인 시민의 관념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이러한 중세의 질서가 서서히 붕괴하고 르네상스 시기를 맞이하던 14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베네치아, 피렌체 등을 중심으로 도시 공화국들이 하나둘 생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공화국 안의 시민들은 독립적이고도 자유로우며, 그 어떠한 권력의 지배도 허락하지 않고, 동시에 그 어떠한 특정 개인의 출중한 능력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은 그들만의 방식과 힘으로 끊임없이 권력의 분산과 견제를 이어갔으며 이를 통해 시민 개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려 했다죠. 이후 이탈리아의 공화주의는 파벌문제 등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그 사상과 가치는 영국, 프랑스 등 주변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정치의 틀을 형성하는 촉매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주목할 만한 변화는 도시를 중심으로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신흥 유산계급인 부르주아 층이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부르주아 계층은 점차 집단화되고 자신들의 부를 바탕으로 경제활동 및 재산 소유의 자유, 평등, 봉건적 특권의 폐지와 정치 · 사회적 개혁 등을 요구할 정도로 그 세력이 커져갔습니다. 이러한 사제 및 귀족과 같은 특권층과 신흥 부르주아의 갈등 심화 속에 발발한 것이 바로 프랑스혁명이었죠. 이러한 시민혁명을 통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 시민의 개념이 파생되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이 내걸었던 가치는 당시에 작성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De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으로 집약되어 있습니다. 이 선언을 통해 모든 개인은 시민으로서 법적 · 정치적으로 평등함이 선포됨으로써 전통 사회에서 전승되어온 영주와 종교인들의 모든 특권이 폐지됨과 동시에 부르주아와 노동자, 농민들의 권리가 그들과 동등하게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의 변화가 시민계급의 보편화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큰 진전이 있었음에도 실질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투표권이나 참정권 같은 경우 여성이나 노동자, 농민 등과 같은 빈민층에게는 여전히 제한적이었기에 해당 시민혁명의 한계 또한 존재했습니다.
이후의 근대화 과정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재산, 지위, 학력, 성별 등의 차별 없이 국가 구성원 모두에게 인정되는 시민의 권리를 획득하고자 기존 전통과의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을 통해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고 평등하게 부여되는 현대의 시민의 개념이 정립되었죠.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시민이라는 개념의 역사적 의미는 신분과 정치적 억압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움직임 안에서 비로소 탄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