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한 책임 있는 위치의 설정
‘책임성’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이번에도 ‘책임’이라는 단어를 한 번 정리해 보고 갈게요.
책임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 'Responsibility'와 'Accountability'를 거의 동일하게 사용하고는 하죠. 때때로 이러한 의미적 혼동을 줄이고자 이를 분할하여 전자를 ‘책임’, 후자를 ‘책무’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중 어떠한 것이 상위의 개념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일반적으로 책임성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보편 책임과 의무로서의 일반적인 반응(response)이라는 의미에서 다른 하위개념들을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책무성이 ‘법적이고 사회적으로 부여한 의무(obligation),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려는 책임(responsibility), 직무 또는 본분(duty), 자격·권한부여(entitlement), 보고(report)․ 설명(explanation)․ 해명(justification) 등이 결합된 것’이라고 몇몇 학자들은 해석하기도 하죠. 이에 저는 세계시민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권한이나 법적으로 규정된 당위를 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책임성을 Responsibility로 해석해 이야기를 끌어갈까 합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책임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요.
시민의식을 공공성의 차원에서 볼 때 중요한 점은 시민의 권리는 그 자체만으로 주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권리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구조가 기반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공적 책무성이 필연적으로 따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협력하는 시민이 구성하는 공동체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존재하며 그 역할에 맞는 책임 또한 부여되죠.
여기서 ‘책임 있는 시민’이란 시대의 가치가 담긴 덕을 존중하면서, 자기 판단의 근거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스스로 행위를 결정하여 행동하며,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는 시민이란 뜻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가 점차 다각화되고 그 구조가 복잡성을 띠게 됨에 따라 이러한 시민적 책임의 영역은 점차 대의(代議)적 성격으로 바뀌어 갔죠. 또한 그 결과를 통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그 권한과 책임을 다른 대상에게 위임하며 해결해 왔습니다. 근대 국가가 형성되고 영토 안의 인구가 늘자 정치는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해졌기에 전문적으로 정치 활동을 수행할 대표를 뽑는 방식의 대의민주주의 형태로 전환되었고, 교육은 가정과 고을을 넘어 학교라는 전문교육 기관 안에서 교사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시작했죠.
물론 이와 같은 체계는 흡사 분업 형태처럼 효율적이고도 전문적으로 직무가 수행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직접적인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이상의 해결을 누군가에게 위임하거나 위탁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즉 공동의 문제로 끌어안지 못하고 외부자의 개입에 의존할 문제로 인식될 수 있는 위험성 또한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이처럼 공동의 문제의식이 사라지면 공익의 영역일지라도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관이 없으면 지극히 무관심하거나, 혹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될 것 같으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님비(NIMBY) 현상으로 분할되어 극심한 의견대립과 계급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죠.
현재의 세계시민교육 또한 이상의 문제의식을 수렴하여 다양한 지구적 문제를 누군가에게 위탁하거나 위임하는 방식이 아닌, 스스로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당사자로서 위치를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 또한 ‘지구’라는 공동의 공간 안에 속해 있는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진정한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해당 문제를 누군가에게 위탁이나 위임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로 인식해야 할 것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고유성을 인정받은 것이 아닌, 즉 구성원의 역할을 부여받지 못함으로써 그 존엄에 상처를 입기 때문입니다.
이에 세계시민으로서의 바람직한 태도는 발생한 문제를 상위자나 상위 체계에 의존하거나 대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한 책임 또한 다른 이들과 고르게 나눠 짊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이상의 논의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시민교육의 영역 안에서 비추어 보면 관련 내용을 교수자가 나열하여 설명하고, 먼저 본인이 정의한 내용을 학습자에게 제안하며, 서둘러 하나의 의견 도출로 제시하는 방식은 올바른 세계시민교육이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세계시민으로서의 권한이 폄하되는 것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해요.
세계시민교육의 핵심은 문제의 봉합이 아니라 개별의 의사소통과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의 고른 분배에 있습니다. 이에 현재의 세계시민교육은 단순히 국제구호 단체나 관련 기관에 기부나 기증을 하는 방식으로 국한되는 대의성(Representativeness)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성(Responsibility)을 강화하는 형태로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계시민교육은 전 지구적 문제해결을 위한 모금 독려 교육 형태로 실제의 문제와 한 발짝 떨어져 진행되어서는 곤란합니다. ‘한 달에 얼마’로 세계시민으로서의 권한이나 역할이 충족될 수는 없는 것이죠. 진정한 세계시민이라면 초국적인 문제 앞에 세계시민으로서의 당위성을 가지고 그 내용에 오롯한 책임의식을 지니며, 단순히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이해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닌, 책임의식의 발현 과정으로 실천영역과 함께 확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책임을 진 이는 마땅히 세계를 대상으로 변화를 요청을 하고 그 화답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시민적인 화합과 울림(feedback)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