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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Nov 05. 2023

16. 대의성에서 책임성으로의 전환(2)

책임 수행을 통해 구성되는 공동 정체성으로서의 세계시민

앞서 설명한 책임의식에 대해 세계시민으로서의 엄중한 책무성을 강조하는 의견 또한 존재합니다. 피터 싱어(Singer)와 같은 실천윤리학자들은 명확한 기준과 근거를 통해 개개인마다의 배분의 책무를 제시하고 있죠.


그러나 그 책임의 영역이 어느 한 개인에게 전가되어 권력을 누리거나, 동시에 막중한 희생이 부여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난번 언급한 대로 세계시민교육은 실천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이 마땅하나 이러한 실천은 외부의 강요나 요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이고 도 자연스러운 심성 안에서 발현되어야 하는 것이니 더욱 그렇죠.


페팃, 비롤리와 같은 공화주의자들 또한 구성원 안의 내장된 유대감을 강조하기보다는 상호성  ‘비지배로서의 자유 관한 공통의 규제적인 이해에 근거한 더욱 약한 형태의 공동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시민적 책임성은 비지배적 조건을 향유한 개인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발현하는 시민적 덕성에  가깝습니다.


이처럼 공화주의적인 개념으로서 책임성을 이해하면 그 책임의 무게 또한 공동체 전원이 나눠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책임은 무척 가벼운 형태의 책임인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법적이나 직무적 구속과는 상관없는 관계를 기반으로 한 우정, 연대, 공동지향성과 비슷한 속성일 것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우정에 대한 개념을 참고해 볼까요? 고대 그리스의 ‘우정(philia)’은 국가 통합을 위한 전제로써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 의식을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우정은 타자에 대한 책임감 있는 행동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세계시민교육 안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우정’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매개할 수 있는 중요한 윤리적 개념입니다. 우정을 통해서 동료와 공동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그 대화의 상대인 동료 또한 우정을 획득하고 나아가 그것이 확장됩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의 ‘인간애’는 대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세계를 공유하려는 마음가짐 자체를 나타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필리아적인 우정의 실현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선에 관한 공유된 이해와 인정을 추구하는 것으로서, 공동의 삶을 본성으로 하는 인간에게 있어 우정은 필수적인 것이었죠. 이에 다양한 공동체 활동들은 우정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우정은 직접 연결되지 않은 동료 시민들을 서로 인격적으로 좋아하고 선의와 선행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 줍니다.


플라톤도 국가가 가장 훌륭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 내의 구성원들이 고통과 즐거움을 최대한 같이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우정을 강조하였습니다. 플라톤은 국가의 모든 구성원이 친구가 되고 친구들의 것을 공유하는 것이 국가의 ‘최대선’이라고 주장합니다. 플라톤은 그의 책 『국가론 The Republic』에서 “모든 것을 공유하는 수호자들은 동료 수호자들을 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밝혔죠. 또한 그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을 형제나 누이로서, 또는 아버지나 어머니로서, 아들이나 딸로서, 또는 자손이나 손윗사람으로 대하면서 만난다”고도하였습니다. 이러한 관계의 총체가 고대 그리스의 우정인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


이상의 공동체에 대한 섬김을 통해 구성된 책임의식을 개별적 타자로까지 확장한 학자가 바로 레비나스(Levinas)입니다. 레비나스의 윤리적 주체관은 타자를 자아성립의 전제 조건으로 적극 수용할 뿐만 아니라 타자에 대한 책임과 환대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 개인과 동일한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낯선 개인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대칭적 갈등에 주목했습니다.


내가 부자이고 강자일 때 타자가 약하고 가난한 자라면, 사회적 관계는 비상호적이고 비대칭적일 수밖에 없죠. 사실 이러한 비상호성과 비대칭성은 세계시민교육 안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에 레비나스는 자아를 우선하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 타자에 대한 책임을 우선하는 관계적이고 윤리적인 인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하고, 또 그러한 변화를 통해서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철학적 근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타인에 대한 나의 책임은 이미 나와 윤리적으로도 얽혀 있는 일종의 마디입니다. 이를 통해 레비나스는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인식할 수 있으나, 엄밀하게 보면 나와 상관있는 일이며 나와 얼굴 대 얼굴로 마주하게 되는 절대적 의무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타자에 대한 책임이란 개개 인이 서로를 인식이나 향유의 대상으로 환원하지 않고 서로의 고유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상호적 인간관계를 함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에 대한 책임은 ‘자신을 버리고 타자로 다가가는 것’이기에 개인의 책임성을 타자와의 관계 속에 절대화하는 인식 차원의 강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앞서 언급한 공화주의적인 책임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왈저(Walzer)는 ‘관용(toleration)’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제한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공합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


왈저는 책임성을 타자에 대한 윤리적 태도로 전환하여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이상의 관용은 나를 버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타자를 지배하고 소유하는 것도 아닌 타자와의 공존을 모색합니다. 여기서 왈저가 말하는 타자란 나와 다른 사람, 혹은 내가 소속된 집단과 다른 집단으로서 관용의 대상이 되는 지점은 바로 ‘차이’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란 문화, 종교 등 생활방식이나 정체성을 둘러싼 차이로써 함께 지낼 수 없을 정도로 생활방식이나 정체성이 유달리 다른 경우를 말하죠.


이런 점에서 왈저가 말하는 차이에 대한 관용은 자신이 원하지도 않고, 오히려 참기 어려운 생활방식 때문에 함께 있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생활공간을 허용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처럼 왈저는 그의 책 『관용에 대하여 On Toleration』를 통해 관용은 이성이 아니라 상충되는 갈등적 관계의 ‘조정’의 결과라고 말하며 레비나스와 비교해 훨씬 더 실용적인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살펴본 바대로 타자에 대한 책임은 권리를 가진 개인과 심의적인 공화주의 공동체 사이에 연결된 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죠. 그리고 이러한 가교를 통해 구성원은 ‘비지배적 상호성’이라는 정치원칙을 통해 공적 과제의 책임을 공동체에 환원하고, 동시에 ‘비지배적 조건의 공화주의 구축과 유지’라는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는 구성원으로서 책임성을 부여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기적 흐름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를 이해하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더욱 깊이 통합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계시민이란 결국 이러한 책임을 직접적으로 수행함에 있어 구성되는 일종의 공동 정체성인 것이라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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