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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Nov 25. 2023

17. 세계시민교육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세계시민=이상적 삶을 위한 공동체성의 추구

과거 농경사회는 지리적 연관성을 중심으로 촌락 공동체를 구성하여 존속해 왔습니다. 이와 같은 ‘땅’이라는 공간성 안에 사는 이들은 같은 풍경을 공유하고, 같은 노동을 하며, 같은 관습과 전통을 오래도록 지켜왔을 테죠. 그리고 이러한 공통의 감각은 점차 ‘고향’이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삶 속의 고향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시공적(時空的) 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랜 시간 농사를 근간으로 해왔던 한국 사회에서도 땅과 토지를 기반으로 그 안에 뿌리내리고 사는 삶은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였으며, 개인과 공간(고향)은 서로 뗄 수 없는 관련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향이라는 시공적 축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뛰어넘어 일종의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삶의 이상향과도 결부되어 있던 것이죠. 


그러나 일제강점기부터 본격화된 땅과 개인과의 분열은 해방 이후 도시화 과정을 통해 가속화되었고, 더는 현대인들을 공간적 개념으로 묶을 수 없게 되습니다. 또한 교통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물리적 거리의 제한은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이에 한 개인의 실제 거주의 개념은 단순히 동일 지역, 동일 공간으로만 한정할 수 없게 되었죠. 


통신 기술의 발달 중 특히 인터넷의 발전은 기존까지의 공간적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시공의 개념은 거의 무한대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에 자연스럽게 개개인을 하나로 묶어 왔던 ‘땅’이라는 중심축은 때와 상황에 따라 이동하며 동시에 여러 곳에도 존재할 수 있게 되었고, 축을 중심으로 이뤄진 현실 공간 속의 공통의식은 현저히 약화될 수밖에 없었었습니다. 


이상의 축의 이동, 혹은 축의 다각화는 현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논의에도 많은 시사점을 전해 줍니다. 학습자들에게 세계시민성의 습득을 요청함에 있어 이상의 구도는 ‘윤리적 당위성’을 넘어 ‘다층적 정체성 간의 조율’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측면의 논의로 탈바꿈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거주 개념을 중심으로 시민 정체성에 대한 다중적 접근에 대한 연구는 ‘다층적/중층적/다중적 시민성(multilevel/layered/multiple citizenship)’의 개념으로 활발히 이루어져 왔어요. 이미 현대 시민들은 상이한 공간 스케일(예를 들면, 로컬, 지역, 국가, 글로벌 등)에서 작동하는 상이한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원이잖아요. 이것은 또한 시민들이 상이한 사회집단(예를 들면, 젠더, 민족적 정체성 등에 근거한)의 다중적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유연한 시민성(flexible citizenship)’을 형성하고 있음을 반증합니다. 그리고 이상은 곧 로컬에서부터 글로벌에 이르는 공간에 걸쳐 있는 ‘다중 스케일’의 권리와 책임성으로도 이어지죠.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대로 현재 진행되는 세계시민교육 교재 안에서는 세계시민의 역할과 책임이 여전히 고전적인 개발교육 형태의 이분법적 논리가 남아 있습니다. ‘지구촌에는 어려운 나라 혹은 어려운 이들이 존재하고, 그에 비해 우리는 좀 더 나은 위치에 있으며, 과거 우리도 도움을 받았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 옳다’라는 당위적 이치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보이지 않는 대상과 경험하지 않은 과거까지 함께 마주하고 책임지라는 비현실적 요구로 느껴질 수밖에 없어요. 이러한 접근방식은 실질적인 공감을 만들어 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돕는다는 실천적 행위가 개인의 취향이나 취사선택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한계성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현재 세계시민교육에서 접근하는 세계시민성의 획득방식은 다분히 개인의 자선적(charity) 감수성, 혹은 동정의 감수성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사실 비영리조직에서 모금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메시지나 구현 영상 및 이미지에서 윤리적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언급되어 왔습니다. 구호단체들이 피해자 이미지를 모금에 사용함으로써 인본주의 가치에 상당한 긴장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프라이버시, 비밀보장, 존엄성, 법적 보호 침해의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미지를 제공한 사람들과의 이익분배나 소유권 문제도 생길 수 있다는 지적 등이 그것이죠.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구호단체들은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모금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빈곤한 자들의 고통을 단편화한 이미지를 유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에요. 이에 빈곤에 대한 노골적인 전시를 통한 보는 이로 하여금 도덕적 죄책감을 유발함으로써 기부하게 만드는 빈곤 구호광고 이미지의 효과를 ‘빈곤 포르노그래피(poverty pornography)’라고 부정적으로 일컫고 있기도 하죠.


UN SDGs(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는 2030년까지 시행되는 국제사회의 인류 보편적 문제에 관한 17개의 공동목표이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 볼게요.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은 그 안에 담겨있는 ‘시민’이라는 정치공동체적 핵심가치를 살펴보더라도 현실 세계와 멀리 떨어져 있는 상상의 대상과의 연결과정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시공적 축이 다각화된 ‘이방인들의 공동체’ 안에서 잘 모르는 타인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되면 세계시민의 논의 대상은 더 이상 먼 나라의 내가 알 수 없는 이가 아닌, 눈앞에 보이는 이를 보이는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공간을 향유하고 있기에 관용(toleration)과 환대(hospitality)로 수용해야 할 대상으로서 나와 가까이 존재하잖아요. 


이상의 인식을 통해 세계시민의식이란, 고향이라는 영역에서부터 출발한 시공의 축이 한자리에만 정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동시에 세계시민이란 지구라는 공동의 공간 속에 마주하는 다층의 공동체와 함께 고향의 원형적 의미가 구현된 편안하고도 안전한 ‘이상적 삶(eudaimonia)’을 추구하는 이라 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 주변과의 관계 맺기가 중요하고, 타자와의 소통과 합의 과정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는 공공선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써 공화주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이에 현재의 세계시민교육은 도덕적(morality)인 형태를 벗어나 시민 덕성적(virtue)인 형태로 재편되어야만 해요. 


시민 덕성이란, 공동의 현실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Particularity), 따져보고(Beneficiality), 그에 따른 책임을(Responsibility) 실행하는(Practicality) 과정을 통해 생성되는 공통의 실천적 이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선함과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구성원으로서 아주 가볍고 일상적인 관습과도 같은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세계시민교육 커리큘럼 안에 학습자들 간의 만남과 소통의 장이 내용 전달보다 더 큰 비중을 두고 설계되어야 합니다. 또한 교육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여 학습자들에게 공동의 결과가 공유되고 실천까지 다다르는 과정이 그 안에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 교수자는 결과 이미지를 먼저 규정하고 제안하기보다는, 다소 더디더라도 학생들 스스로가 답을 찾을 수 있게끔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해당 과정을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현재의 세계시민교육은 주제 중심의 단위교육으로 분절되어 구성된 경우가 많아 문제 발견과 문제 토론, 실천 계획 및 피드백까지 이어지는 전체 과정으로서의 커리큘럼이 새로 개발될 필요가 있어요. 학습자의 많은 주제 인지가 일상 적용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하나의 기점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이를 통해 단계적으로 일상 실천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세부설계가 필요합니다. 현 세계시민교육이 ‘이해는 가볍게, 실천은 무겁게’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면, 시민 덕성 측면의 세계시민교육은 ‘이해는 무겁게, 실천은 가볍게’라는 접근방식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세계시민교육이 많은 제한적 조건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적 요인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입시 위주의 교과 구성 안에서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 진행은 현실적 제약이 많은 것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현 세계시민교육이 주로 초등학교 혹은 자유학기제를 운영하는 중학교 1학년 대상으로 더 많이 논의되는 이유 또한 이러한 학사일정이나 커리큘럼 적용의 유연성 여부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세계시민성에 대한 학습을 받는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실천의 습관화 측면에서 유의미합니다. 그러나 상호 토론과 이해 과정을 깊이 있게 다루기에는 청소년 시기가 세계시민교육을 학습하기 매우 적합한 때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정작 이러한 유효한 시기에 세계시민교육이 다른 교과에 밀려 간단한 인지 중심의 학습으로 축소 진행되는 현실은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죠.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한계성을 인식한 유네스코 등은 실질적으로 학사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학교장을 중심으로 세계시민교육을 편성하기 위해 관련 진행 사례를 모아 지속적으로 내용을 공유하고 있어 희망적인 부분 또한 없지 않습니다.


이처럼 세계시민교육이 학습자 중심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관할 시도교육청뿐만이 아니라 학교장,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풀어나갈 교사들의 역량과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향후 교과서 제작을 넘어 보다 심도 있는 교사연수를 통해 개별 교사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무엇보다 관련 커리큘럼 운영에 대한 유연성 또한 확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공교육 안에서 그간 금기시되어 왔던 시의적이고도 논쟁적인 이슈 또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처럼 그 안에 수렴되고 용인되어 교사들이 세계시민교육을 진행함에 있어 보다 심리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도록 그 권한을 위임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상의 노력이 한국 교육의 미래상에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로 작용하는 것은, 이것이 단순히 국제적 목표인 SDGs의 수행 여부가 목적이 아니라 점점 더 다각화 ·다구도화 되는 세계 속에 학습자들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타자와 어떻게 같은 공간 안에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느냐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세계시민교육의 역사적 형성 과정과 더불어 실천성, 특수성, 유익성, 책임성이라는 4가지의 범주 기준을 통해 한국 공교육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계시민교육을 살펴보았는데요. 개인적인 아쉬움을 중심으로 내용을 작성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이상의 아쉬움을 모두 수렴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거나 관련 커리큘럼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이와 관련해서는 현장의 많은 사례와 연구자들 및 교육 실무자들의 고민의식이 더 집약되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해당 방식이 세계시민교육의 절대적인 방법론이라고는 당연히 말할 수는 없어요. 사실 세계시민성의 핵심요소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에 있다면 교육방식에 대한 일원화 주장은 일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겠죠. 다만 지금의 세계시민교육 교재를 검토하며 살펴보면 현재의 세계시민교육이 지나치게 도덕적이며 원론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저의 지향은 학습자들이 스스로 실천할 수 있게 하는 현실적인 방법론을 모색하자는 가깝습니다. 


향후 이러한 저의 고민의식과 더불어 공교육 현장 안에서 구체화될 수 있는 균형 잡힌 시각의 세계시민교육론과 세계시민교재들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개발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아마 곧!!)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세계시민의 가치를 전하는 수많은 교사/실무자분들께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보내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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