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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달 May 24. 2020

마지막 춤은 끝났고 우리는 여기서 헤어질 거야

라스트 댄스를 보고 


주말 동안 라스트 댄스를 다 봤다. NBA 시즌이 중단되어 주말에 NBA 경기 보는 낙이 사라졌다. 나 같은 이들에게 마이클 조던의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는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는 좋은 다큐멘터리였다. 


마이클 조던이 두 번째 쓰리핏을 하던 무렵 난 중학생이었다. NBA 경기를 볼 기회는 없었고 가끔 스포츠 뉴스에서 나오는 해외 스포츠 단신으로 접할 뿐이었다. 확실히 우리나라 농구대잔치 선수에 비해 간지 나는 플레이를 했었지만 10초 정도의 하이라이트로 매력을 느끼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후 농구를 비롯해 스포츠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는데 몇 년 전부터 NBA 중계를 통해 NBA에 푹 빠졌다. 농구라는 게 5명이 하는 데다 한 명의 슈퍼스타가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기에 르브론 제임스란 슈퍼스타를 지지하며 그가 몸담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LA 레이커스를 응원했었다.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로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그의 성실한 플레이를 지켜보며 내가 꿈꾸는 그 무엇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마이클 조던의 라스트 댄스는 마이클 조던을 주인공으로 그가 불스와 이룬 우승 스토리와 어려움 등을 다루고 있다. 엄청난 승부욕 때문에 동료들에게 화를 내거나 윽박지르기도 하는데, 그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조던은 결국 자신이 목표한 것을 이루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물론 결과가 과정을 합리화하는 건 아니다. 다만 목표를 위해 해야만 할 일이었다면, '조금 이상하긴 한데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김정은과 친한 로드맨 이야기도 나온다. 회사 점심시간에 라스트 댄스를 켜니 내 옆에 앉은 선배가 로드맨?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로드맨 또한 몸이 엉킨 카메라맨의 다리를 발로 걷어차는 등 기행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라스트 댄스에서의 로드맨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건 맘대로 하되 경기장 안에서는 최선을 다해 플레이하는 스포츠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사람들 모두 우리가 보고 싶은 부분을 주로 본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누군가는 양아치, 누군가는 성자. 이런 식이다. 그 평가가 맞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쉬운 평가를 내린다. 로드맨은 무척이나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인터뷰하는데 사실 그의 이미지로 혜택 본 것도 있을 테니 그렇게 억울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서극 감독의 더블팀을 보신 분이 있나요. 장 끌로드 반담과 로드맨이 나오는데 로드맨의 괴짜 이미지가 아니었다면 누가 로드맨을 캐스팅했겠냐고.) 


10편이 넘는 라스트 댄스를 보면서 조던과 불스의 위업도 위업이지만 90년대 생각이 많이 났었다. 90년대 중후반이라면 도서관에 한창 다닐 때인데 그때 내게 20년 후엔 넷플릭스 같은 게 있다고 하면 얼마나 놀랐을까. 어릴 때부터 집에 VTR이 없어서 늘 볼 것에 굶주렸다. 이상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난 영상매체를 길게 볼 수 없는 집중력을 갖고 있었는데 없으니까 너무 보고 싶고 그랬었다. 뭐든 없을 때니까 듣고 싶은 CD, 보고 싶은 영화에 대한 끊이지 않는 갈증이 있었고 언젠가는 볼 수 있겠지 하고 기대했다. 


그런데 지금 거의 무엇이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환경이 되니 혼란스럽다. 뭘 골라야 할지도 모르겠고 익숙한 것들, 들었던 음악,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게 편할 때도 많다. 10대 때의 그 허기는 다 어디로 간 걸까. 지금의 난 너무 배가 부르다. 포만감만 가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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