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전역 후 맞는 첫 생일날 선물로 소니 휴대용 MP3 플레이어를 받았다. 전까지 CD로 오디오 앞에서, 혹은 벅스로 컴퓨터를 이용해 음악을 들었다. MP3 플레이어가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산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내게 걸으며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MP3 플레이어의 포장을 벗기고 컴퓨터에 연결해 어떤 음악을 넣을까 고심했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앨범은 무척 많지만 산책하며 듣기 좋은 앨범이 뭘까 고민했었다. 위저와 같은 신나는 노래를 넣을까, 요라 탱고처럼 익숙한 노래를 넣을까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다 넣은 기억이 난다. 그때 새로 나온 앨범도 몇 장 집어넣었다. 몇 달 후 어떤 앨범은 좀 질렸고 어떤 앨범은 더 좋아졌다.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으며 처음 플레이리스트의 존재를 의식했다. 전에는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들었다. 랜덤 재생을 한다고 해도 앨범 내에서 돌아갈 뿐이었다. 그러나 MP3는 앨범을 듣다가 다른 앨범으로 넘어가는 게 용이했다. 좀 질리면 다른 앨범으로 넘어가고 또 넘어갔다. 적극적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든 적 없지만 트랙을 바꾸는 순간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플레이리스트가 생겼다. (가령 나루에서 이지형, 이지형에서 언니네 이발관. 이런 식으로.)
2008년의 봄과 여름을 생각하면 혼자서 열심히 학교 주변을 산책하던 내가 떠오른다. 함께 점심을 먹고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의 시간이 재미없었다. 군대에서 가장 절실히 바랐던 건 혼자 음악을 듣고 혼자 걷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공강 시간에 혼자 학교 주변을 걸으며 음악을 듣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충만한 순간이었다. 산책 중에 친구들을 만날 때도 있었다. 혼자 생각에 잠겨 목적 없이 걷는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그때 어디를 가고 있었느냐고 질문도 했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할 말이 없었다. 그냥 걷고 싶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렇게 몇 달 혼자 보내고 나니 마음이 깨끗해졌다. 군대에서 생긴 때가 그때서야 다 사라진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 개월 동안 내 친구는 MP3 플레이어에서 나온 노래였다. 사실 그게 없어도 하고 싶은 건 했겠지만 음악이 있어서 외로움 없이 걸으며 혼자를 즐길 수 있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은 나루 1집,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이지형의 백구였다. 두 노래를 들으면 10년 전 학교 정경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