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캣을 한창 재밌게 읽던 시절이 있었다. 전역 후 복학해 한창 바쁘게 학교 다닐 때 많이 읽었다. 확신을 가지고 복학하여 인기 없는 복학생일 뿐이라는 서글픈 자기 인식 후 스노우캣을 통해 위로 비슷한 걸 받았다.
편안한 전개에 따뜻한 여백은 가끔 먹는 식빵처럼 담백했다. 굳이 뭘 하려고 하지 않는 담담함을 보며 열띤 마음을 가라앉혔다. 또 킥킥대며 깨끗해지는 걸 느꼈다.
몇 년 전 작은 책방에서 오랜만에 스노우캣의 책을 봤다. 이상하게 그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더 이상 감수성 충만하고 들뜬 복학생이 아니라서 그랬을까. 분명히 스노우캣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1년 전쯤 벅스뮤직에서 스노우캣의 만화를 봤다.
'음악이냥'
내가 좋아했던 스노우캣을 다시 만난 것 같았다. 예전엔 스노우캣의 만화만 봤다면 이제는 스노우캣이 음악과 얽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난 OST를 들으며 그 영화의 원작을 읽는 걸 좋아했었다. 가령 트레인스 포팅의 ost를 들으며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어빈 웰쉬의 소설을 읽었다. 그 느낌이 너무나 강렬해 실제 영화를 봤을 때 실망했다. 그만큼 난 음악을 들으며 그에 관련된 글을 읽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 음악을 들으며 스노우캣의 만화를 보고 있으면 그저 행복할 뿐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만화가 짧아 한 곡을 다 듣기도 전에 만화를 다 본다는 것. 그래서 스노우캣이 선곡한 노래를 들으면 만화를 떠올리거나 그에 관련된 나의 추억을 생각하곤 한다.
가령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본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공연을 그린 만화를 보고 스노우캣이 선곡한 웨인라이트의 음악을 죽 들었다. 스노우캣이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공연을 직접 본 추억을 이야기했다면 난 혼자서 학교 DVD실에서 처음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공연 실황을 봤던 때가 생각났었다. 존 레넌 추모 공연에서 션 레논, 모비, 루퍼스 웨인라이트가 함께 나와 across the universe를 불렀다. 그렇게 감동적인 across the universe는 처음이었다. 극장 가는 값도 아까워 DVD 실에서 영화나 공연 실황을 보던 시절인데 내 초라한 처지와는 별개로 음악이 줄 수 있는 감동의 최대치를 느낀 순간이었다.
벅스에서 연재했던 스노우캣의 음악이냥을 보며 책으로 나오면 꼭 사야지 마음먹었는데 정말 책이 나왔다. 종이로 읽는 스노우캣이 확실히 더 익숙하다.
장단점은 명확하다. 벅스로 들을 때보다 책으로 읽는 만화가 더 생생하게 들어오지만 음악을 들으려면 결국 벅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음악이 없는 음악이냥은 반? 아니 1/3밖에 즐기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옛날 핫뮤직 부록처럼 CD를 선물로 줬다면, 좀 촌스럽긴 해도 더 기억에 남았을 것 같다. (음악이냥에도 나오지만 이제 CD는 가장 어정쩡한 매체가 되었다. 요새 난 스트리밍> 테이프> CD 순으로 음악을 듣지만 스트리밍이 없다면 그냥 CD로 들을 것 같다. 형은 여전히 CD를 듣는다. 왜냐하면 우리 형은 스트리밍은 못 듣겠다고 하니까. 가장 친근하게 느끼지고 편리하기까지 하다. 물론 더 푸근하고 더 편리한 것들이 나와서 문제이지만)
오늘 퇴근하는 길에 스노우캣의 음악이냥을 모두 읽었다. 이미 벅스에서 다 읽었지만 다시 읽으니 또 맛이 색다르다. 한동안 이명 때문에 이어폰을 끼지 못했다. 이제 이명은 사라졌지만 겁이 나서 이어폰을 끼지 못한다. 좋은 헤드폰을 산다면 이명 걱정에서 좀 자유로울 텐데. 예쁘고 성능 좋은 헤드폰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음악 이야기를 몇십 개 썼다. 처음의 열정과 달리 쥐어짜는 단계에 들어서니 확실히 재미가 없다. 부담을 줄이고 재미는 챙기며 쉬엄쉬엄 써야지.
음악이냥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지금에 충실하다는 것, 나는 지금의 재미에 충실하자는 걸로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