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내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반드시 내 소유물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래서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다녔고 적절한 공간을 발견하게 되면 그곳에서 마음껏 놀았다. 어떤 때에는 갖지 못하는 대상을 장난감 블록을 가지고 표현하면서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공간의 구체적인 형상이 만들어지면, 주변에서 내 아지트를 찾았다.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게 되면서 공간이 주는 의미에 대한 사유에 조금씩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공간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것. 내가 영위할 삶을 보다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고 싶은 생각 때문에 시작한 일이다. 나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간’이라는 물성을 지닌 대상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지금까지 경험했던 공간들과 가상의 공간과의 비교를 통해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해보았다. 나는 이것을 상징적으로 ‘브릭’을 쌓는 일로 표현했다.
나에게 브릭을 쌓는 일은 이상적인 공간을 갖고 싶은 나의 바람을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순간들에 투영시키는 행위이다. 그 행동은 권태로운 일상에서 우리가 얼마간 벗어나는 것, 그래서 생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자립하여 나다운 모습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시공간을 갖추는 것이기도 하다. 단지 어떤 공간을 상상으로 그려보고 무언가를 채워 넣고 살아보는 시뮬레이션만으로도, 일상에서 나를 짓누르는 권태에서 얼마간 이탈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기존 일상이라는 것은 그만큼 무언가 결여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었던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빠져나오라고 애써 강요하거나, 그러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난을 하지 않는다. 일상은 생계유지를 위해 중요하다. 때때로 우리가 이러한 일상의 항상성에 대해 권태를 느끼는 생각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이 보다 각박해질수록, 전 세계적으로 풍파가 몰아치고 있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이런 때일수록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의 권태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자신을 보다 자신답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발전시킨 건강한 자아와 육체로 주변을 돌아보며 사회와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보다 고차원적인 실존의 담론을 만들어가기 위해. 일상의 권태는 결국 사회의 정체停滯이다. 일상의 권태는 나와 타인을 돌아볼 수 있는 실낱같은 의식을 보다 깊은 심연의 공간으로 밀어 넣고 가장 기계적이며 지루하고 외형적으로 그저 멋들어져 보이는 형식적 행위만 반복하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권태로움을 타인에게도 그대로 전염시킬 것이다. 삶에 대한 비관,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것에 대한 무관심, 순간순간의 조우들에서 느껴야 할 놀라움의 부재가 체세포 분열하듯이 늘어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브릭을 쌓아야 한다. 그 브릭은 사람이라면 결국에는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 발생시켜야 하는 담론인 것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
이것은 단순한 공간의 넓이와 편의성의 정도에 대한 질문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내가 사는 공간이 어떤 정체성,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사유적 대상으로서 접근해야 함을 역설하는 질문이다. 내가 사유하는 방식이 공간의 개념과 형태를 결정해줄 것이고, 또 그 공간만의 기능성이 내게 또 다른 실존적 사유의 장을 마련해 줄 것이다.
가상의 브릭을 쌓는 작업으로 나는 실존의 문제를 한껏 들고 와 특정 사유의 방식으로 해체하고 이리저리 씨름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실제로도 내가 브릭에서 논했던 공간들에서 더욱 깊고 밀도 있게 경험하는 행위를 지속하고, 내 사유私有의 공간으로 실제로도 조금씩 만들어가고 싶다. 그것은 자기인식에 결코 싫증을 낼 수 없는 주체적인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그러니, 이제 나만의 브릭을 가지고 나의 공간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