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로움은 어디에서든 온다. 현대인이라면 어떤 환경에서도 마주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인식과 경험의 종말, 아무런 인간다운 능동성과 사유의 자유로움, 존재의 즐거움 따위는 상상할 수 없는 인지적 존재의 종말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인간인 이상 이런 상태의 가능성을 느낄 때 두려움을 느낀다. 생리학적으로 우리가 알츠하이머 같은 병에 대한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도 이와 관련 있다. 자기인식의 결여와 실존하는 공간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불가능한 존재는 거의 죽은 존재와 다름없는 것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나에 대한 기억을 지닌 주변의 사람들에게 큰 정신적인 충격을 준다. 이미 그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그 존재가 아닌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진단이 없는 상태는 정신적인 알츠하이머의 상태에 빠져든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 있든 이러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도시든 시골이든, 그리고 엄청나게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복지국가에서든, 독재국가에서든 말이다. 이 병은 단순히 어딘가로 일탈하고 공간적으로 도망쳐 나온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어느 한적인 공간을 확보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권태로움은 보다 매끄럽고 편안한 옷을 갈아입고 또다시 나를 찾아올 뿐이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전환과 새로운 계기를 찾으려고 한다.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의미부여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의미부여를 여행지에서 방문하는 공간 하나하나에서 느끼려고 애쓴다. 실제로 ‘자기계발적 사고회로’를 가동하여 끊임없이 자기를 보듬어주는 행위로 노동하기 시작한다. 나를 위한 여행, 내가 꿈꾸던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는 시간 같은 개념을 관념적으로 생산하며 말이다.
잘 준비된 공간만 갖춰지면 경험다운 경험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과 노트의 기록의 분량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삶이 한층 더 풍성해졌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온갖 편의적인 수단을 활용하여 자유롭게 공간을 뛰어다닐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고 하자. 그 사람의 경험의 성격과 내용은, 과연 그에게 주어진 공간이 보장할 수 있는 것일까. 그 공간을 제대로 향유할 수 없는 상태에 머물고 있다면, 언제나 그가 경험하는 것들도 제한된 수준에 머물게 되지 않을까.
어떤 공간이든간에,
일상의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만이
‘경험’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을 위해 진지한 사유와 그에 따른 실질적인 행동이 요구된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부단한 노력과 훈련으로 갖춰지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삶 속에서 경험보다 권태를 더 자주 마주하는 것이다.
권태에서 빠져나오는 부단한 자기인식이 결여된 사람에게는, 호텔 방이 그저 해변에 좀 더 많이 가까운 사무실이자 좀 더 정갈한 모래와 안전한 자연 위에 세워진 작전회의실이 된다. 계획은 빡빡한 중요 여행지 방문 일정으로 전개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주체는 옷만 다른 옷으로 입은 김 대리와 박 과장의 모습에 가까울 뿐이다. 언제나 계산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빈틈이 용납되지 않고, 그것은 결국 권태의 상태로 그를 다시 몰아간다.
권태는 빈틈에서 오지 않고 치밀하게 돌아가는, 기름을 잔뜩 먹인 톱니바퀴 공정과 같은 시스템에서 온다. 그것은 언제나 경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저 오늘의 과업이자 일상일 뿐이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 어느 곳에서 잉여가 주는 시간의 축복을 경험해보려고 하는 것일까. 짧은 시간이라도 온전히 사고의 자율성과 행동의 독립이 가능성을 스스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일까.
호텔이라는 브릭이 갖춘 편의성과 독특함의 기본 성질은 모든 투숙객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 얼마만큼 크고 더 편리한 시설을 갖추었는지의 차이는 물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제주도 중문단지에 있는 5성급 호텔에서 투숙할 때와, 오사카 시내의 좌우로 다 틀여막힌 듯한 비좁은 호텔에서 머물 때의 상태가 다르듯이 말이다.
그러나 호텔이라는 공간이 주는 기본적인 정체성 자체를 못 누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언제나 말끔한 곳은, 큰 고민스러움과 불편함을 끼치는 않는 상태로 항상성을 유지하며 투숙객을 맞이한다. 그리고 일상과 일정한 물리적 · 심리적인 독립성을 보장해준다. 그것은 일상에 매몰된 신체와 정신을 일시적으로나마 이탈하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그곳은 의외로 편리한 사찰이자, 성당이 된다. 인간은 생리적인 욕구와 편의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바로 그 불편함으로 인해 집중하려는 대상에 더욱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호텔은 이런 불편함을 제거하고 개인적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상태를 언제나 유지하고 사람을 맞이한다. 그런 점에서 어느 수도원의 독방이나 어느 사찰의 템플스테이 공간에 뒤처지지 않는 사유의 공간, 자기인식의 공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곳에서 일상의 계획은 잠시 접어두자. 권태로움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다시 복귀할 일상에서 얼마든지 간헐적으로 찾아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의 상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일상에서 자신을 완전히 분리시켜 자기가 원하는 일, 반드시 생각해야 할 가치에 대한 사유할 수 있는 연습이 된 사람일수록 호텔은 그에게 가장 최적의 쉼의 공간이 될 것이다. 호텔은 오늘과 내일, 여기에 머무는 동안 나다운 사유와 행위를 할 수 있는 환경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나의 상태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사유적 존재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그에게 호텔과 그 주변 여행지에서의 모든 일은 권태가 아닌 경험으로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