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없어지는 일상

by moment books

Brick 6. 호텔



경험이 없어지는 일상


우리는 ‘경험’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낯선 곳을 가 호텔에 묵는다.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감으로써 느끼는 권태를 벗어내는 것이 곧 경험을 위한 행위이다. 우리 모두는 일상의 반복적인 삶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하고 항상 새로운 것들을 좇는 것만이 삶을 풍성한 경험으로 채우는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경험이 없어지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주 긴 삶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삶에서 얻은 자연스러운 교훈 하나가 있다. 이 세상에서 존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놀랍고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시도와 체험, 그런 의미만으로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벅차오르고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 있다. 이 소중한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권태가 찾아온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매 순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사치 중 하나이며 몇몇 특정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큰 행운과 같은 일이다. 경험이란 것은 완전히 새로운 일들을 계속해서 찾아내고 발견했을 때 얻은 일의 단순 총합인 것은 아니다. 경험은 중첩된 일들 가운데서 취사선택하여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작업이다. 어떤 경험은 비슷한 또 다른 형태의 경험을 대체한다. 어떤 경험은 그것을 반드시 직접 한 것이 아니더라도 다른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매 순간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할 이유도 없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떤 경험은 평생을 괴롭히는 고통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용적으로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물과 사건에 대해 인지하고 그것을 통해 배우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경험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놓칠 뻔한 배움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경험을 통한 지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가 여타 존재들과 다른 존재임을 스스로 자각하며 그것에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기계와 비교하길 좋아한다. 우리는 그것과 다른 경험과 감정이 있는 존재라는 우위적 상태로 규정하길 좋아한다. 기계와 관련된 관용어구를 쓸 때에도 ‘기계적인 것’이 통상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염두에 두고 사용하곤 한다. “기계 같이 일한다”,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우리가 삶 속에서 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존재임을 잠시간 잊어버리고 무비판적이고 자동반사적인 권태와 매너리즘적 상태에 빠졌을 때 하는 표현이다. 하나의 주어진 사건에 대해서 언제나 의미를 발견하고 새로운 생각과 반응을 할 수 있는 것. 그 행위에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발견한다.






우리가 ‘산다는 것’의 매력을 잃어가는 시점은 바로 이러한 인간다움의 특성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게 되는 시점이다. 일상의 반복과 삶의 무미건조함에 함몰되어 살아가는 시점, 즉 경험이 아닌 단순히 ‘살아내기’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시점이다. 바로 그 시점에서는 경험의 사전적 의미인 ‘주체가 능동적인 행위를 통해서 무언가 획득한다’의 바로 그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행동이 결여된 상태가 돼 버린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일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만 남는다는 것이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은 오늘의 업무이고 과제이다. 그것은 해결을 해줘야 하는 일인 것이지, 그것 이외의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 위치해 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단순히 도시냐 시골이냐, 혹은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느냐 하는 점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도 아니다. 온갖 종류의 콘텐츠로 가득한 도시에서의 삶은,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의 가짓수 자체는 시골에 비할 바 못할 만큼 엄청날 것이다.


그럼에도 도시의 삶이 아주 ‘경험적이다’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경쟁이 심하고 복잡한 큰 도시에서의 삶은 똑같은 일상의 반복과 권태로운 일과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 큰 도시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은, 한 명의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또 다른 권력적 존재가 된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일상과 직업, 심지어 취미와 기호마저 결정지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이 되어 통제적 삶을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 단조롭고 몰개성한 삶은 당연한 것이 돼 버린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그것을 거부하지 못한다. 그만큼 도시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꾸준히 공급해서 시민들이 자신의 자율성을 반납하게끔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험이 없어지는 일상이란, 단순히 현재 환경의 반복되는 일상 자체가 아닌, 인간다움에 대한 지각을 잃어버리고 특정 시스템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생활 양식에 종속된 일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알게모르게 우리는 일상에서 애쓰는 모든 행위들이 인간다움과 자연스러운 삶에서 벗어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되도록이면 일상을 연상하는 요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험에 종종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의 일상에서 벗어나 비행기에 오르고, 기존의 ‘일상적인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항상 말끔하게 잘 준비된 호텔을 예약하는 일에 막연한 설렘을 갖는 이유이다.



브릭 6. 호텔.jpg <원본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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