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착취하지 않고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소란하고 복잡다단한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탁월한 성취와 물질적 풍요를 갖춘 사람은 많아도 마음의 평온을 가진 자를 찾기는 꽤 어려운 일이다. 나 또한 평온하고 관대한 마음을 겨우 만들어낸대도 사사로운 일로 마음이 흐려지기 일쑤이며, 적응하지 않으면 튕겨나갈 것 같은 빠른 현대 사회에서 가만 명상하기보다는 빠르게 신발끈을 고쳐 매고 달려 나가기 십상이다.
짧은 스물 두 해를 회고하건대 그럼에도 내가 조금 더 갈구하는 것은 명예나 부귀보다도 평화다. 마음이 약한 성향 탓인지, 목표를 달성했대도 그 과정에서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했거나, 소중한 것을 잃고 나면 두고두고 후회했고, 후회 속에서는 성취나 인정 같은 것들은 하등 쓸모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부귀영화의 무용함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의 부족은 마음의 가난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니까.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기에는 꿈도 정도 많거니와 그만한 용기도 없다. 다만 본디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배움 그 자체를 즐거워하는 나 자신이 좋고, 인맥이나 성공보다도 마음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소한 낙을 쌓는 기쁨을 우선으로 둔다는 뜻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맞이하는 목표 달성과 성공은 그 잔향이 오래도록 향긋하기도 하고.
나의 삶의 궁극으로 두는 '밸런싱'. 즉 다방면의 여유를 담보하기 위한 물질 - 마음, 성공 - 행복, 안정-자유의 밸런싱의 방법을 고민하는 스물셋에 문득 뇌리를 스치는 전제의 모순을 목격했다. 이분법을 경계하고 회색에 머무르겠다는 나는 누구보다 검정과 흰색을 구분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 하는 모순 말이다.
예컨대, 권력과 평화는 반대되는 개념일까?
권력 지향 : 완벽주의, 목표를 향해 달려드는 독기, 목표를 잃기 위하여 물불 가리지 않는 태도, 그리고 평화 지향 : 휴머니즘, 관용과 인내, 조화와 상호 존중 중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왜 둘 중 하나를 정해서 공고히 하려고 했을까? 마음 속의 미안함을 애써 지우며 '어차피 다시 안 볼 거니까'라고 한다거나, 마음 한 켠 두려움을 애써 지우며 '내가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아'라고 생각하며 했던 선택들은 결국 찝찝함만을 남기지 않았던가?
물론 모든 것이 나 자신이고, 당시에는 최선이었음을 알지만 조금 더 유연하고 만족스러운 선택의 특징을 이제는 조금씩 알겠다.
예컨대 나는 아주 통제적이고 긴박한 상황을 극도로 힘들어하는데, 매일 숫자가 오르내리는 금융권에 취업하거나 군대에 자진 입대하여 '저를 통제하지 마세요'라고 한다면 그만큼 황당한 일도 없을 것이다. 바쁜 사회 탓, 직장 탓을 하며 나의 초라함을 합리화한다면 그건 누구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를 잘 알고, 환경을 잘 안다면 만족스럽고도 평온한 선택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간과하는 점은, 기회비용을 따지는 시간조차 기회비용이 있다는 것이다. 살까 말까 고민하며 1년을 보낸다면 그 1년은 누가 보상해 주나? 그러므로 어느 시점에서는 손익계산을 관두고 과감하게 효용을 높이는 마음이 필요하다. 후회하고 비교하는 데에 투자를 관두고 현재에서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관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주식을 할 때도 과감한 손절은 생명이다. 도저히 맞지 않는 직장 혹은 대학,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환경이나 사람들을 벗어나는 게 가장 시급하고 깔끔한 대안일 수 있다. 어디를 가든 어느 정도 고여 있고, 하다못해 이 지구마저 나는 하나의 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조금 더 멀리 보고, 침착한 마음으로 단호한 결정을 내리는 것도 필요하다.
사실 4번이 나의 가치관에 가장 가까우며, 빠르고 확실한 효과를 발휘했다. 독자 중에서는 1-3의 글을 읽고 사소하게는 퇴사, 비약적으로는 그럼 세상을 뜨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선택들을 종용할 생각은 없음을 밝힌다. 세상과 사람의 사정은 아주 복잡하고, 그를 고려하지 못하는 내 주장은 절대율이 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믿을 구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좋아하는 인터넷 밈 중에서 직장에서 '통장에 천억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기'라는 짤이 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지켜줄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면 회사에서의 갈등과 위협들을 버틸 수 있다는 뜻이다.
꼭 천억이어야 할까? 천억의 가치를 띠는 것들이 충분히 많다. 게다가 천억을 벌기보다도 나의 믿을 구석은 무엇인가? 나를 지켜줄 대상들을 나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현실적이고 확실하다.
나는 거시적 흐름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나머지 하나를 완전히 포기한 채 Do or Die를 할 성향은 못 된다. 시험 준비할 때 노는 것을 완전 포기할 수는 있지만, 전재산을 탕진하는 도박이나 도전은 잘 하지 않는다. 불안도가 높고 배포가 크지 못한 탓이다. 다만 이를 장점으로 돌리면 꽤나 신중한 편이고, plan b, c를 마련함으로써, 실패는 하되 나락으로 가지는 않는 편이다.
예를 들어 전문직 공부를 하더라도, 스스로 금전적인 주체성을 이룰 만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이다. 예술과 창작을 준비하면서도 번듯한 대학에서 괜찮은 성적을 유지하는 편이다. 올인하지 않고 분산해서 제반사항을 마련하면서도, 꿈을 위한 과감한 투자와 몰입은 반드시 담보한다. 이런 마지노선들은 삶을 테트리스처럼 파괴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폭력 혹은 나 자신의 착취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안전띠 역할을 한다. 안전하고 튼튼한 제반사항이 마련되고, 그 속에서 원대한 꿈을 품는다면 삶은 반드시 잘 풀릴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모두 각자의 삶 속에 내가 감히 상상하지 못할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삶이 잘못되었다, 그러니 개선하라고 닦달하고 싶지 않다. 참 대단하다고, 살아내주어 고맙다고 따스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필요하다면 나의 생각들을 당신들만의 방법으로 일부 적용하는 정도가 좋겠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불안과 좌절이 가득한 세상 속에, 당신을 지켜줄 작은 안전띠라도 매어주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하늘은 맑고,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으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기회와 행복들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마지노선 카테고라이징 : 내가 스물셋에 1) 건강 2) 재력 3) 명예 4) 문화 면에서 인생 계획을 세우고,
나의 삶을 지켜 줄 제반사항들을 준비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