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때문에 삶이 꺾여 들어갈 때면 습관처럼 전화기를 붙잡고 등록된 연락처들을 살핀다. 사람으로 생겨난 공명인데 또 사람을 찾으려고 그토록 치대고 만다. 바짝 쪼그라든 마음 때문일까, 화면에 보이는 친근했던 이름들은 돌연 새로 받은 명함의 글자처럼 낯설고 딱딱하다. 오늘도 혼자 괜찮을 수 있다. 아니, 괜찮아야만 한다. '통화' 버튼 위에 닿아있던 엄지 손가락을 거두며, 소란은 전하지 않기로 한다. 자리에 묵혀두기로 한다. 혹여나 더 큰 파문이 이를지 모를 훗날의 한 번을 위해서 오늘의 요동은 잔병이라 치부하며 혼자 앓겠다고 다짐한다.
당신마냥 나도 똑같다. 몹쓸 시간이 닥쳐와도 연약한 뼈대 위에 아닌 척, 괜찮은 척, 태연함을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혼자서도 괜찮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안간힘을 쓰며 센 척을 해댄다. 그럼에도 사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는, 사람이 그립다는 사실을. 이럴 땐 어린아이처럼 누군가의 품에 안겨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겨울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사연은 대개 겨울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던 이야기
대학 시절 은사로 모셨던 시인들께선 사람을 겨울처럼 여기고 바라보라 가르쳤다. 애써 혼자가 되려는 사람들 또한, 한때는 사람을 사랑했었다 그리 된 사람들이니 그들까지 다시 덥힐 수 있는 언어를 전하라고 했었다.
빙벽을 치고 사람들에게 돌아섰던 시절, 사람 풍경으로 다시 나를 이끈 것은 역시 사람이었다. 무심했음이 무색하게, 내 등짝이 자신의 슬픔이었다는 말을 전한 한 사람. 내어준 것 하나 없었는데, 돌연 체온을 전하며 나를 감싸주니 초라한 눈물을 짜내 빚은 온기로라도 그 마음을 갚고 싶어졌었다. 그 겨울, 그이는 내게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었다.
그쯤부터였을 것이다. 나를 안아주는 사람들을 사귀었고, 그들을 여즉 기억한다. 때때로 그들 때문에 다시 축축해지기도 했었지만, 그럼에도 상처를 주는 쪽과 받는 쪽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열에 아홉 쯤 후자를 골랐었다. 따스했던 어느 날의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내게,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며 염려를 전해온 적이 있었다. 그 선배는 내가 간절히 믿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이의 말을 따를 수가 없었고, 믿기에 거스르고만 싶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남은 마지막 한 장의 대기권일지도 모르니, 나중을 염려하지 않고 내가 믿는 사람들을 계속 믿으며 지내겠다고 답을 했었다.
인간은 본디 외로운 존재.
당신이 나를 마음에 두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당신에게 내어줄 방이 아직 충분하니 말이다. 인간은 본디 외로운 존재라고 하니, 나는 그저 내가 겨울이 아닐 적에 잠시 들어와 몸을 녹여도 괜찮다고 먼저 말하는 것일 뿐이다. 혼자가 아니어도 될 일을 혼자서 버티고자 안간힘을 쓰는 이에게 솔직해도 괜찮다는 말을 건네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주었던 볕의 따스함을 전하고 전하며 그것이 내가 겪은 계절처럼 위안이 되길 바라기 때문에, 그 덕에 나 또한 당신이 머금은 체온 맛을 좀 보고 싶기 때문에. 고작 사람이 뿜는 한기가 결코 사람의 온기를 덮을 수는 없으니, 지금 혹시 몹쓸 시절에 머물고 있다면 사람에게 힘껏 넘어져보기를 바란다. 지금 혹시 몹쓸 시절에 머무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엉덩이 조금 옆으로 옮겨 빈 자리를 내어주기를 바란다. 인간은 본디 외로운 존재니까 우린 혼자보다 함께를 더욱 바라게 되는 것이다.
삶이 가시덤불처럼 느껴져도 그 덤불을 엮은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 외의 것들이리라. 사람 중 하나는 박힌 가시를 더욱 깊숙하게 밀어 넣기도 하겠으나, 사람 중 하나는 어제의 생채기들을 어지간히 감싸주기도 할 것이라 믿는다. 사람을 두고 이해타산을 셈하다 돌아서기엔 그들이 펼쳐진 곳에 여전히 볕이 많고, 돌아설 자리는 퍽 쓸쓸하다. 그러니 사람 틈으로 끊임없이 비집고 들어가기를 바란다. 태생이 외롭다고 여생까지 춥게 보낼 필요는 없으니까. 인간이 본디 외로운 존재라면, 서로 부대끼며 체온을 유지하는 것 또한 숙명일지도 모를 일이다.
외롭고 추우니까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이다.
우리 모두 한편으론 외롭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앓겠다.
[사진 : 로마, 이태리 /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 비엔나, 오스트리아 / 뉴욕,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