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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로 가기에 좋은 날

#240526 | 포르투갈 오비도스(Óbidos)

by 윶 uj

생각이라는 것이 자는 중에도 살아 있어서, 나는 이제 막 자다 깬 것인데 머릿속에서는 지난 어떤 장면이 상영되며 누군지는 몰라도 자기들끼리 한참 신나게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 한가운데에 나는 이방인으로 혼자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다. 내 뜻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심장처럼 머리 속도 늘 제멋대로다.


작년에 갔었던 포르투갈 '오비도스'가 문득 떠올랐다. 여기도 성 입구 문을 지나 들어가니, 갑자기 모르는 세상 한가운데에 갑자기 툭 떨어진 기분이었다.


뭐든 좋게 보는 쪽이라 그런지 나는 대체로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행을 할 때도 생각지 못한 운 좋은 일이 가끔 생기는데 이 때도 정말 좋았던 날 중 하나이다. 프랑스 여행 중 버스를 놓쳐 아무 차나 타고 엑상프로방스에 갔더니 어쩐지 무서웠던 현지인 분이 나를 거기에 데려다 놓으셨던, 세잔의 그림에 수없이 나오는 그 산을 그린 장소에 갔을 때처럼.


이번에는 마냥 흘러가지는 않았고, 일정에 오비도스라는 도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여행책과 구글 지도를 살펴보며 신중하게 고른 장소이다. 그런데 오기에 쉬운 곳이 아니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도 또 우버를 탔다. 예약한 숙소까지도 못 찾아서 고생을 좀 했다. 지도에는 있는데 갈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정확히 어디인지 봐도 잘 몰랐다, 우버 기사님도 나도 같이 갔던 친구도. 게다가 마을 주민이 나와서 더는 갈 수 없게 길을 막았다. 알고 보니 이 마을에는 주민이거나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만 차가 들어올 수 있었다. 걸어서 오르막을 오르고 계단을 오르고 앞에 가려있던 거대한 성벽 사이를 통과하는 작은 문을 지나고서야, 그 안 쪽에 자리한 숙소로 갈 수 있었다.

숙소 안에서 보이는, 성벽을 걷는 사람들


성곽 안에는 성당, 기념품 가게들, 주거용 건물들이 있었다. 좁은 골목 사이로 오래된 건물들을 보며 중세 시대란 어떤 모습인 걸까 하며 분위기를 느끼며 걷고 있었다. 길을 따라가니 자연스레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성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문 안으로 들어간 순간 현생의 착장이 아닌 사람들이 여기저기 무리 지어 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주위가 진짜 중세가 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중세 시대 옷을 갖춰 입고 무기를 들고 무리 지어 다닐 수가 있나? 어리둥절하며 둘러보며 다니고 있는데 어떤 곳은 들어가지 못하게 막기도 하고, 여럿이 모여있는 곳을 보면 짚 더미나 돼지 모형 등에 활을 쏘고 있었다.


구석에 붙여진 종이를 보니 '전통 활쏘기 대회'를 하는 것 같았다. 이틀 동안만 하는데 우연히 우리가 그날 중에 있게 된 것이었다. 옛날 분위기에 대한 상상만 하던 나를 성 안으로 불러와 실제로 보고 경험하게 해주는 기분이었다. 역시 중세 콘셉트에 맞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판매하는 맥주도 마시며 신기하고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중세 시장 축제

매년 열리는 중세 시장 축제가 있는데 다음 달에 한다고 한다. 식사도 하고 중세 옷도 빌려준다 하니 갈 수 있다면 분명 즐거울 듯하다.

https://obidos.pt/mercado-medieval-de-obidos-2025-entre-o-mito-o-amor-e-a-tragedia/



+ 작년 말부터 전국 방방곡곡 각종 공연장들의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고 예매를 시도한 끝에, 해외에 가지 않고도 조성진 님의 공연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올해 단 하나였던 계획은 이 하나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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