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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ckMatter May 27. 2024

'증명'에 대한 코즈믹 호러

죄와 벌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리뷰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1866












Review by BlackMatter

★★★★ 5/5


자신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 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혹자에게는 그것이 거미나 주삿바늘 같은 사소한 존재일 수도, 죽음의 필연성 같은 무거운 개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증명'이었다.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고, 무능하지 않다는 증명.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두려웠고, 어린 시절부터 받아왔던 기대는 어느 순간부터 자존감과 원동력의 불씨가 아닌  아틀라스의 천구와 같아졌다. 아마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그간 나에 대한 평가는 이 '증명'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한 행동들이 만들어낸 나의 표상일 것이다.  이 두려움이 몇 년간 잠재의식 속에서 커지고 커져, 지금 이 순간 나의 가장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한 증명에 두려움이 멈추지 않고, 더 방대한 맥락에서 나를 옥죄어왔다. 만약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떡하지? 결국 나는 이 사회에 무수히 존재하고 또 양산되는 사소한 톱니바퀴 하나의 가지조차 지니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 두려움이 결코 나의 자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많은 10대, 혹은 모든 세대를 아울러 퍼져있을  이 정신적 공포는 19세기 중반 러시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역작 <죄와 벌>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또한 이 '증명'이다. 나는 나와 비슷한 종자만을 양산해 내는 범부인가, 아니면 나폴레옹과 같은 길을 걸을 비범인 인가.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이에 대한 고뇌와 '증명'의 두려움으로 인해 피폐해진 인간상을 대표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웠기에 가치 증명에 대한 자신의 이론에 근거하여 살인을 저지른다. 한 번의 계획된 살인과 곧바로 이어진 또 한 번의 우발적 살인 이후 라스콜니코프를 옥죄어온 것은 생명을 앗아감에 뒤따르는 죄책감이 아니었다. 살인을 통해 얻은 깨달음, 즉 '증명'에 실패하였다는 좌절감,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 자아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무가치함에 대한 혐오. 거대 괴수와의 조우에서 오는 불가항력성에 대한 공포와 자아의 하찮음이 만들어낸 코즈믹 호러에 가까운 두려움이 라스콜니코프를 질식시켜간 것이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을 집필한 이유는 단지 자아 실현의 실패에서 오늘 공포감과 좌절감을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본작은 소냐와 같은 인물상에서 발견되는 사랑과 신앙심의 힘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에 대한 찬가에 가까울 것이다. 19세기 중반 혼란스러운 러시아에서 도스토옙스키가 소냐를 통하여 제안한 돌파구는 사랑과 신앙이었다. 21세기의 현대인, 특히 끊임없이 라스콜니코프의 공황 상태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의 10대와 일명 Doomer 세대에게는 무엇이 구원의 동아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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