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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ckMatter Sep 19. 2024

당신과 나 우리 모두!

ANTIHERO - 안다영 리뷰


ANTIHERO

안다영

2020. 11. 20

Best Tracks 램프의 요정, 원래 그런 사람, 지문, 7,3,2,1, 깊고 맑게!, 파노라마






Review by BlackMatter

★★★★★ 5/5


임상심리학자 제임스 마샤는 사춘기 청소년의 정체감 형성 유형을 네 가지로 정의한다. 정체감 위기를 겪어내 뚜렷한 목적성을 찾아낸 ‘성취’, 정체감 위기 속 목적성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유예', 정체감 위기의 과정 없이 세상에게 목적성을 주입받은 '압류', 그리고 정체감 위기와 목적성 발견을 위한 노력이 전무한 '혼미'. 마샤의 이론에 입각한다면, 아마 우리 모두는 평생 사춘기 속에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절대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청소년 시절에는 '성취' 과정에 머물러 있던 사람이 20대에는 꿈과 희망을 잃어 '압류' 과정에 빠져들 수 있고, '혼미' 과정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학생이 필연적 우연에 의하여 '성취' 과정에 빠져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절대로 절대적인 상태에 머무를 수 없다.


'Anti-hero'. 한국어로는 '반-영웅'에 해당하는 이 단어는 직접적으로 상대성을 나타낸다. 영웅에 해당되지만 전통적인 영웅 상이 결핍된 인물, 모든 면에서 모순적이고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그리고 안티-히어로의 가장 유명한, 그렇지만 흔히 알아채지 못하는 유의어는 '인간'이다.  정의될 수 없고 행동에 모순점을 가지며 선도, 악도 아니면서 동시에 둘 다 될 수 있는 존재. 그렇기에, 안다영의 정규 1집 ANTIHERO는 모든 인간을 담아내면서도 안다영 한 사람만을 담아낼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용 자서전이다.


램프의 요정에서 너는 전부라며 사랑의 소원을 빌던 그녀는 책임이 없는 사랑의 뒤엔에서 사랑 때문에 망할 것임을 예언한다. 원래 그런 사람에서 거짓된 가벼운 말들뿐인 너는 병신 같다고 하던 그녀는, 지문에서 너와 함께하는 오늘이 끝나지 않기를, 지문을 만져 너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빈다. ANTIHERO는 모순 덩어리다. 그러나 곧 이 모순이 인간을 동물과 차별화시키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인간에 대해 내린 수많은 정의 중 하나는 인간이 '과잉'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식욕, 수면욕, 번식욕의 가장 기본적인 3대 욕구를 넘어 우리는 항상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이 과잉된 욕구로 인해 모순적 행동을 취하며 과거의 나를 버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로 거듭난다. ANTIHERO의 화자는 언제나 사랑을 바란다. 사랑을 원했기에 램프의 요정에게 소원을 빌었고, 이 사랑에 대한 집착 때문에 망할 거라고 말한다.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너를 병신 같다고 느꼈고, 사랑을 원했기에 지문을 통해 너를 알고 싶었다. 이 사랑은, 절대적일 수 없는 인간이 가진 가장 절대적인 특성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의식적으로 사랑받기를 갈구하고, 또 사랑을 주기를 원한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고, 또 언젠가 다시 멀어질 것임을 예상하며 그에 한탄하는 관계의 팽창과 수축 속, 안다영이 바라본 가장 중요한 오브제는 '손'이다. 욕구의 과잉과 마찬가지로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요소로 바라봐지고는 했던 손은, 소통과 표현, 체감의 창구다. '0522안다영'에서 '안다영',  '다영'에서 '♥︎'까지, 관계의 깊이에 따라 호칭이 변화할 때 이를 연락처 속 저장하는 것은 손이다. 이별 후 흘러간 시간을 체감하게 만드는 것은 어느새 길어져 버린 손톱이다. 너를 이해하기 위해 만지는 것은 너만의 지문이고, 안부 인사도 하기 전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건 엄지손가락이다. 손길을 거쳐 우리는 인간이 된다.


이것들이 ANTIHERO가 공용 자서전이라고 언급한 이유이다. 하나의 서사를 가지고 진행되지만, 사랑, 모순, 손, 이 개념과 오브제들은 작품과 작가에 구속받지 않는 보편적 테마이기에 그 안에 담긴 입체적인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는 앨범을 만든 아티스트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ANTIHERO의 서사는 그 순서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누군의 삶 속에는 7,3,2,1이 원래 그런 사람보다 먼저 올 수 있는 것이고, 안다영의 ANTIHERO처럼 Intro가 아웃트로에 올 수도 있다. 또 이 과정은 다양한 형태와 시점에서 끝나지 않을 듯 윤회한다. 마치 절대로 하나의 목적성에 도달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못하여 '성취', '유예', '압류', '혼미'의 사이클을 맴도는 인간의 100년 남짓 한 시간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ANTIHERO는 하나의 타임라인을 가진 강경한 작가주의 작품이 아니다. 동시에, 개인이 받아들이고 만들어나가는 서사가 모두 상이하기에,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하다. 개인적이면서, 또 가장 보편적인 작품. 평면적인 프로타고니스트가 아닌 입체적인 안티-히어로, 즉 인간이다.



Poclanos 다영 님이 생각하는 'ANTIHERO'란 무엇인가요?



안다영 당신과 나 우리 모두!



+) 리뷰를 쓰기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앨범 같아요. 처음 들은 이후 몇 달간 몇 번을 반복해서 듣고, 인터뷰를 찾아보고, 또 의미를 해석하기까지. 그런데 리뷰 자체는 불과 몇 시간도 안 되어서 금방 다 써졌어요. 그만큼 이 감상과 해석 또한 일시적인 거라는 말이겠죠. '본인의 뮤직비디오도 쉽사리 해석을 단정 내리지 않는 다영 님인데 제가 감히 리뷰를 써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럼에도, 이렇게 리뷰를 올려봅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또 다른 안티-히어로가 된 내가 바라보는 지금의 안티-히어로가 쓴 리뷰는 어떨까, 나는 그때 입체적인 우리의 어느 면에 도달해 있을까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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