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지금 권태기 5.

도깨비와의 황홀한 도피에 관한 희망과 절망

by 집밖 백선생

부부 사이에 권태롭다는 의미는 매우 상대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단순히 지겨운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내 경우 그전까지는 포용되던 남편의 단점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도저히 못 견디겠는 태세로의 선회,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돼서 더 이상 결혼 유지가 어렵다는 극단화된 감정의 칼끝에 서있는 모습이다. 그대로 결혼 유지란 칼끝에 나를 두는 꼴이요, 어떻게든 빠져나오고자 용쓰는 건 미친 듯이 칼을 휘둘러 누가 다칠지도 모르는 칼부림을 하는 꼴이다. 광기 어린 칼부림에 베는 건 아이들의 마음이란 걸 깨달았을 때야 비로소 정신 차리고 그만둘 수 있었으나, 칼끝에 서서 나를 찌르는 고통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몫이다.

예민해서 이런 거라 탓할 수는 있으련만, 나 이런 줄 알고 감당했던 남편은 아직까지는 인내할 여력이 있는 것인지 크게 문제 삼지는 않는다. 그에게도 더 이상 못 버티고 못 견디는 순간이 온다면 그땐 그가 미쳐버리겠지. 버티는 걸로는 조선 최고인 남자이기에 어찌 보면 이 이에겐 권태도 잘 버틸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러나 참을성 제로인 나는 문제가 된다.

참을성 제로라면서 남편의 단점을 어떻게 참고 살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건 참고 사는 게 아니라 잊고 사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서 받는 사랑, 정서적 안정감, 지지, 응원, 눈빛 등 결정장애라는 것 빼고는 나름 부어주는 행복이 컸기에 결정장애라는 단점이 크게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다. 단호하게 무언가를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은 내가 잘하기 때문에 내가 하면 될 일을 갖고 굳이 남편을 잡을 필요는 없다.


정신노동이 주된 영역인 내게 집에서의 포지션도 정신노동이 컸다. 늘 머리를 써야 하고, 머리가 복잡하고, 이걸 정리하는 게 주된 일인데 지속적으로 뭔가를 결정하는 걸 내게 푸시하는 남편에게 서서히 짜증이 나면서 언제부턴가 나는 짜증 부리고 있고 남편은 그걸 받아주면서도 설설 기는 모양새가 익숙해졌다. 특히 인터넷 쇼핑을 할 때가 제일 싫었다. 늘상 논문 읽기, 쓰기, 수업 준비 등으로 컴퓨터 화면 앞에서 혹사당하는 내가 인터넷으로 물건 고르겠다고 한동안 화면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이것처럼 피곤한 게 따로 없었다. 인터넷 쇼핑은 주로 남편에게 떠넘겼는데 그 와중에 옵션까지 고르라고 하면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머리를 말릴 때 뜨거운 바람을 싫어해서 찬바람이 나오는 헤어드라이어가 필요하다고 치자. 공간 절약을 위해 손잡이 부분이 접힐 수 있는 걸로 주문해달라고 남편에게 얘기를 한다. 내가 원한 두 가지 요건 즉, 찬바람이 나오고 손잡이 접히는 헤어드라이어. 그 외에는 어떤 옵션이든 알아서 할 일이다.

남편은 계속 전화가 온다. 바람이 3단, 4단이 있는데 어떤 걸로 할까, 색깔은 화이트, 블랙 어떤 걸로 할까, 브랜드는 어떤 걸로 할까... 이게 한두 물건이 아니면 짜증 폭발이다. 내가 어떤 물건을 주문을 했다면 그 물건에 대해서도 기능이 어떻느니 저떻느니. 서큘레이터이면 실내공기를 시원하게 잘 섞어주면 된다. 크기가 어떻느니, 기능이 어떻느니, 버튼이 불편하게 돼있다느니... 서큘레이터든 남편이든 둘 중 하나는 갖다 버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저걸 주문하려고 없는 시간 쪼개서 눈 아프게 조그만 화면 쳐다보고 있던 나에게 도대체 왜 그랬냐고 되묻는다. 애시당초 이럴 줄 알았으면서도 주문을 감행했던 나를 갖다 버리는 게 낫다.

부동산을 매매할 때도 난 지역적 가치와 상승 대비 현재 저평가 우량 매물인지를 따져서 괜찮다 싶으면 결정을 한다. 옆에서 김 빼는 건 언제나 남편이다. 어디가 수리가 덜 됐느니. 계단이 가파르다느니, 뒷베란다가 통기가 잘 안 되느니. 그건 내게 사지 말자는 뜻이다. 김 빠져서 안 사게끔 만드는 데 도가 텄다. 궁극적으로 내가 찍은 데는 다 올랐다. 덜 된 수리비를 감수하고, 계단 바꾸는 거 감수하고, 통기 안 되는 곳에 공기청정기 다는 거 다 합쳐도 이천이면 수리하고도 남는 물건인데, 지방인데도 이억 이상이 올랐다. 늘 이런 식이다.

내 투자 실력을 어느 정도 아는 남편이다 보니 이제는 내가 그런 걸 할 때 뒷말을 안 하려고는 하지만, 이제는 큰돈이 오가는 일에는 나 몰라라 한다. 큰돈 오갈 때 아무리 배짱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손이 덜덜 떨리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난 배짱이 좋은 것도 아니고, 곁에 믿고 맡길 사람이 없으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책임을 내게 떠넘기는 사람들만 득실거리니, 어쩔 수 없이 담도 약하고 간탱이가 손톱만 하지만 내가 하는 것이다. 그럼 관심이라도 가져야 할진대 나 몰라라 한다. 목사니까 재물에 관심 없는 것은 어찌 보면 잘 된 일이다. 목사가 재물로 시험 드는 것처럼 주 앞에 죄짓는 게 또 어디 있을까 싶어, 목사님은 이런 쪽 쳐다도 보지 말라고 내가 보호한 것도 컸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신의 여자인데, 나도 어떤 면은 보호받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 나는 남편의 엄마가 아니라 남편의 여자이다. 남편의 엄마는 남편의 원가정에서 너무 여자 노릇만 했었다 보니, 못 받은 모정을 내게 받으려는 듯한 느낌? 나도 내 원가정에서 부모에게 자식으로서 보호를 받았다기보다는 자식인데도 부모를 보호해야 했던 자식이었다. 보호를 받는 자식들은 따로 있었고 장녀라는 이유로 늘 내겐 하소연하고 이해하라 하고 내 감정 내 느낌은 오롯이 묵살당했다. 내 안에는 성장기에 보호받지 못한 아이가 올바로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로 갇혀 있으면서 가끔 나를 우울하게 만들 듯, 결혼 후에 보호받지 못한 여자가 제대로 된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갇혀서 외로워하고 있다.



의지처가 없다는 것은 정말 외롭다. 중년 여성들이 드라마 주인공에 꽂혀서 현실을 잊어버리는 게 이런 나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 드라마 속 도깨비가 가진 무한한 능력이나 여주인공만 쳐다봐주는 설정은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꿈을 꾸고는 싶은 것이다. 꿈에서만이라도 황홀하고 싶어서. 나 역시 꿈에서라도 그런 도깨비와 만날 수 있다면 그래서 이런 현실이 주는 팍팍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면 난 매일 수면제 먹고 잠만 잘 것 같다. 이 현타로부터 최대한 황홀하게 도피할 수 있도록.

그러나 도깨비와의 짜릿한 황홀을 맛보고픈 경쟁자는 너무나 많고, 도깨비는 나보다도 훨씬 어리고 이쁜 김고은만 좋다고 하는 현타에 다시금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이중적 절망은 예상된 비극이니 수면제 처방은 그다지 효험은 없다. 어떻게든 이 현실에서 살아내야 한다.

지금 내 지친 심신에 필요한 건 의지처. 내 현실은 내가 엄마 노릇을 하고 책임져야 할 아이 셋과 내게 엄마 노릇을 요구하며 책임져달라는 무늬만 남편인 성인 하나. 가끔씩 니쪽내쪽 가족에게서 들려오는 시끄런 책무들. 즉 책임감이다.

내 글을 읽는 많은 중년의 여자들이 말한다. 자신의 상황들과 비슷하다고. 오빠 한 번 믿어보래서 결혼했더니, 자신을 엄마노릇 시키면서 아들 노릇 한다고. 목사님이라도 다르지 않다니 많은 위안받는다고.


위안받고 싶어 휘갈겨 쓴 글로 누군가들을 위안하다니 아이러니이다. 결혼하면 고착화되는 인간관계의 생태인가 보다. 그래서 중년들이 외도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연애할 때의 남녀는 적어도 아들과 엄마는 아니니까. 남자와 여자로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멋도 부리고 말도 조심하고 눈치도 보며 설레니까. 스페인이던가? 부부가 중년이 되면 서로의 애인을 인정하며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고 한다.

"여보, 오늘 저녁에 스테파니 만나서 데이트하느라 늦어. 스테파니 알지? 얼마 전 소개팅으로 만난 여자 친구. 저녁 먹고 영화 보고 들어갈게. 먼저 저녁 먹어~"

"응. 알았어. 나도 오늘 산티아고랑 약속 있었는데 잘 됐네. 우린 3박 4일 여행 다녀와서 목요일쯤 집에 올 거 같아. 욕실에 샴푸 떨어졌으니까 새 걸로 채워 넣고~"

"오케이~ 잘 조심해서 다녀와~"

이때의 부부는 서로의 부모 같은 보호자 역할로만 기능하는 것이겠지?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혐오스러웠다. 내가 중년이 돼서, 서로에게 부모 역할하느라 외로워보니 왜 저런 얘기가 나오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그들의 문화를 동경 내지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지금 시점에서 이해만 된다는 의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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