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 극복을 위한 솔루션 1.
Let's go, 또봇!
한동안 이혼을 하고 싶었다.
이혼을 한다고 해서 딱히 대책은 없었다. 이혼을 방불케 할 만큼 벌이가 좋은 것도 아니다 보니 경제적으로 배나 힘들 것 뻔하고, 아이들을 캐어나 가사도 오롯이 내 몫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이혼이 하고 싶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혼을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내가 결혼 속에 갇혀서 감수해야 하는 부당한 굴레들을 죄다 집어던지고 싶었다. 애초부터 나와는 정말 맞지 않는 관습이었다. 한 남자를 만나서 함께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만이 전부라면 그냥저냥 할 만했다. 자연인처럼 산속으로 들어가서 사회적 관계없이 함께 자급자족하면서 산다면 가능했다.
각자의 원가족 내에서의 관계, 사회적 관계, 경제적 관계, 아이의 교육 문제 등으로 얽히고설킨 사회망들과 그 안에서 발생되는 숱한 문제 상황 등을 겪어내면서 난 늘 무언가에 깎여가는 것 같았다. 든든한 보호막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보호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난 늘 최전방에서 총알받이를 해내는 포지션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은 적이 없었고, 모두들 나를 전장으로 보내고 내 뒤에 숨기만 했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약하디 약해질 수밖에 없는 관계 안에서 더욱 정당화되었다.
정말 모르고 했으니 결혼을 했지, 알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결혼이다, 내게는.
난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그래서 결혼 안 하겠다고 버티고 버티다가 어떻게 저떻게 해서 결혼을 했다. 결혼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뿅 갔던 남편은 아니었다. 남편과 연인이 될 때쯤 내 정신세계를 완전히 지배했던 기독교, 즉 모태신앙이었던 내가 탕자가 되었을 때 나를 다시 일으켜준 종교의 가르침에 크게 은혜받아서 결혼을 했던 것이었다.
이런저런 문제들이 많았으나 지금껏 버텼던 것은 내가 나서서 다 무찔렀고, 내가 나서서 죄다 해결했었던 그간의 가정 내 관습 때문이었다. 곱게 자란(?) 남편은 내가 정말 필요할 때 없었다. 늘 말뿐이었다. 크게 소리 내지 않는 사람이고 늘 평화로웠기에 다툼은 없었을지언정, 크고 작은 문제에는 늘 빠져있었다. 내가 해결책을 제시해서 이런저런 지령을 내리면 수동적으로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 어린 시절 보았던 애니메이션 '또봇'이 생각났다.
"하나가 명령하면 또봇이 실행한다."
그렇다. 늘 내가 어떤 지령을 내리면 그것을 실행하는 또봇. 자기주도적 생각이라고는 없는 로봇. 내 명령만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로봇. 내가 힘쓰는 거 못하고 기력이 딸리니 그냥 로봇 하나 데리고 산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그냥저냥 살 만하다.
그렇지만 나는 상의하고 싶을 때도 있고,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싶을 때도 있고, 진심 어린 공감을 받고 싶을 때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쓰러질 때는 나도 누군가의 손에 의지해서 잠시 험난한 시간을 지나고 싶을 때가 있다. 상의, 조언, 공감은 모두 그냥 영혼 없는 것이 그대로 느껴지게끔. 무심하지만, 그 속 내비치면 나한테 괴로운 소리 들을 것 뻔하니까 그냥 듣는 척. 관심 없지만 그냥 들리는 내 소리 참고 있는 것이 역력한 남편의 태도는 늘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쓰러질 때, 내가 힘겨울 때, 집안에 큰 문제가 생겼을 때 나를 대신해서 가정을 이끌어갈 남편은 보이질 않는다. 그냥 쏙 빠져있는 느낌이다. 늘 교회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제발 교회가 나를 바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듯이 그렇게 집안의 큰일들은 다 내게 넘겨버리는 게 일상이 되어있는 로봇.
생각하면 난 늘 어떤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내 포지션이었던 고로 누군가에게 의지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해서 문제 상황에 부대낄 때 그냥 주저앉아서 울고 있었으면 남편이 해결을 했을까? 만일 나도 모르겠다고 남편에게 떠넘겼다면 어땠을까? 나는 지금껏 편했을 수는 있겠으나, 마찬가지로 남편이 아마 이혼을 하자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성격차이라는 흔한 이유는 있을 수 있겠으나, 남편이 딱히 외도를 한 것도 아니고, 경제적인 최소한의 임무를 지키지 않았던 것도 아닌 마당에, 이혼의 '이'자도 모른다는 식으로 있는 남편에게 결혼이 내게 맞지 않은 제도인 듯하니, 이제 그만 이 결혼을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말은 위험요인이 너무 많았다. 잘못하면 아이들의 친권이나 양육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테니까...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상황들에 대해 절대적으로 공감력이 부족한 남편은 다시 지금의 이 문제를 내게 해결하게 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이 부당한 관계를 바로 잡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 혼자만 동동거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이렇게 동동거리며 사력을 다해 자기 욕을 한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하는 남편이 아닌 것도 안다. 남편의 유일한 장기는 '버티는 것'이니까.
그래서 도망가는 것이 아닌 해결하는 것으로 선회해보려 한다. 권태기의 해결을 위한 첫걸음으로 남편에게 과제를 주었다. 또봇 남편이다 보니 문제 해결은 못한다. 단지 내가 미션을 주면 잘 실행을 한다. 그렇다고 떨어지는 문제해결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숙제라고 한다면 부족한 것을 보충할 수 있도록 내어주어야 하니까. 어떻게든 리더십이 부족한 남편에게 '리드'의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내가 낸 숙제의 키워드이다.
종강을 한 다음부터 매주 월요일은 남편이 데이트 계획을 세워와서 나를 이끌고 다녀보라는 미션을 주었다. 대학로 연극이든지, 영화든지, 드라이브든지, 등산이든지 좋으니 이젠 나한테 뭐할까를 물어보지 말고 뭐하자고 나를 이끌어달라고. 알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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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또봇은 이렇게 콕 찍어줘야 알아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