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아픈 후회(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생각하면 서운할 것도 섭섭할 것도 없었을 수도 있다. 내가 덜 좋아했다면. 지나고 나면 서운했던 것도 섭섭했던 것도 다 내 감정의 과용이었던 것이다.
대체로 연애를 할 때 이런 감정의 과용이 가슴을 머물다가 연애가 끝나면 그 넘쳤던 에너지를 떨쳐버리느라 진땀을 뺀다. 그러나 내 경우는 모든 관계들이 이랬던 것 같다. 연애든 인간관계든.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교류만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가끔 너무 과하게 몰입하는 그런 관계망들이 있다. 왜 그랬을까?
지나고 보니 결국 다 내 탓이었다. 누가 그렇게 좋아해 달라고 한 적 없다. 내 어떤 마음이 끓어 올라서 나 혼자 원맨쇼 하고 끝나버린다. 뻘쭘하다.
우스운 사람이 돼버렸다. 말하지 말 걸 하는 후회. 그냥 혼자 삭이고 말았으면 그냥 이 거리라도 지켜졌을 텐데... 늘 난 말로 풀려다가 말로 푼수가 돼버린다.
그래서 이런 영역이 내겐 참 두려웠다. 서운한 거 말하고 나면 그 자리는 늘 폐허가 된다. 늘 뼈아프게 후회한다. 차라리 가깝게 다가서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아 아예 친해지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관계들도 많았다. 그럴 때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놓쳤다. 늘 이랬다. 아마 평생 이럴 것 같다, 나는.
이젠 뭔가 놓친 것 같다. 정말 다 떠나버린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있을 걸... 타인에겐 별 것도 아닌 사소함이 내겐 별의별 것이고, 달의 달 것이었다. 그걸 다 느끼고 있으니, 안다, 나도 피곤한 사람이라는 거. 그걸 대부분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하기에 난 자꾸 유리되었었다. 그냥 내 맘의 십 분의 일만 주고 다 닫아버리면 편했다. 그렇지만 늘 고독했다. 많이 외롭기도 했고.
남편만이 알아줬고 받아줬다. 생각해보면 날 여자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정말 받아주기 힘든 스타일이다, 나란 사람은. 그래서 남자들과의 우정이 내겐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주 옛날. 나 스무 살 때. 내게 작은 새라 불렀던 이가 있었다. 난 당시 우정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나를 정말 사랑했던 거 같다. 내가 말하는 걸 듣고 싶어 했고, 나 웃는 거 보기 좋아해서 많이 웃겨줬고, 나 울리기도 참 많이 했던 그 이가 지금 생각해보니 나를 참 많이 좋아해 줬던 것 같다. 그때도 지금과 다를 바 없었던 이런 나를 다 받아주었으니... 내게 작은 새라 불렀던 그는. 내 이런 점을 작은 새라고 했고, 이 모습조차 사랑스럽다고 했던 것이다. 같이 사는 남편이라야 가능한 그 경지를. 그는 다 봐주었다. 이제야 그이의 진심을 알겠다. 이렇게 뒤늦게서야.
마음 한 구석이 서걱인다. 마른 낙엽만이 남아 썩어갈 수밖에 없는 이 황량한 곳에서 길 잃은 작은 새가 되어 하늘 향한 그리움을 토해낸다. 사람들을 "너무 많이" 사랑했다고 생각해서 생겨난 사고 처리를 하다 보면, 다 내가 있다. 정확히는 내 에고이즘인 것 같다. 어쩌면 난 그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사랑했던 모든 자리에 나 홀로 피투성이가 돼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젠 그만. 거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