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련이에게 최선을 다했던 것 같이.
30대 중반이 넘어, 나는 오춘기가 왔다. 왜 그렇게 엄마에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맞벌이를 하고 아이를 셋을 낳으면서,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던 것은 맞는데, 그냥 엄마에게 그렇게 화가 났다. 내가 전액 장학금을 받아 왔을 때 칭찬하지 않고 헌금으로 낸 것, (지금 엄마에게 말하니 그런적 없다고 한다. 누구의 기억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언제나 동생을 잘 돌보다 동생이 바퀴벌레를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청나게 맞은 것, 성적이 계속 올랐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엄친딸과 엄친아들에 비해 부족해서 칭찬받지 못했던 것, 내가 아픈데 엄마에게 말하니 그만큼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 했던것. 그냥 폭포같이 엄마에게 대한 불만이 쏟아 나왔다.
그냥 엄마에게 혼이 나면 나는 마음에 뭍었다. 그런데 그게 30대 중반에 가서 터져버렸다.
내가 나이를 먹고나니, 내게 12살 짜리 딸이 있다면 그러지 않을 거 같은데 엄마는 왜 그런거야? 이런 의문이 계속 터져 나왔다. 내 안의 그 내면아이가 자꾸 울어서, 나도 같이 함께 울었다.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엄마를 원망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아프면서, 엄마가 최선을 다한게 맞을수도 있겠다 싶다.
나도 고양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너무 아프다. 의사선생님은 내 탓이 아니라고 했는데 다 내탓인거 같다.
나도 고양이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고양이가 아팠다.
엄마도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아플 수도 있는거다.
모두 최선을 다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