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적은 주제 글쓰기 올리기
과거에 적은 주제 글쓰기다. 주제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를 선택해 여러 판본들 중 어느 것이 그럴싸하고 마음에 와닿는지 적는 것이었다. 창작자가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해 보는 것도 허락됐다.
<서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인류의 가슴에 떠오른다. 힘이 아닌 음악, 즉 예술로 자신을 드높였던 영웅은 사랑하는 여인을 잃는 운명을 맞는다. 전승되는 이야기나 작가들의 작품은 비슷한 변주를 보여준다. 유명한 작품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와 베르길리우스의 '농경시(Georgics)'일 것이다. 두 작품에 주안점을 두고 비교하고 여러 설화들도 살펴본 다음 플라톤의 향연(Symposion)을 통해 이야기의 새 변주를 그려보겠다.
<본론>
1. 줄거리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와 결혼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그녀는 뱀에 물려 죽는다.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간다. 하데스 앞에 선 오르페우스, 아내를 데려가기 위해 진심을 담아 노래한다. 그의 노래에 망령들이 울고 지옥의 형벌이 멈춘다. 결국 하데스의 마음을 움직여 그녀를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단, 지상으로 올라가기 전까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이 두 사람을 따라온다. 지상에 다다른 순간, 오르페우스는 그만 뒤를 돌아본다. 조건이 어겨졌고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옥으로 떨어진다.
2. 판본 소개
‘변신 이야기’와 ‘농경시(Georgics)가 모두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담는다. 두 작품은 대체로 비슷한데 몇몇의 차이점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의 주체다. ‘변신 이야기’에서는 하데스가 허락하지만 ‘농경시’에서는 페르세포네가 간청하는 것으로 나온다. 두 명 모두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감동하는 것으로 나오니 큰 차이는 아니다. 둘째, 뒤돌아보는 이유의 차이다. ‘변신 이야기’에서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는 이유는 걱정과 그리움으로 표현된다. 지상에 다다르자 오르페우스는 아내가 잘 따라오는지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거의 다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아내를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뒤를 돌아본다. 반면, ‘농경시’는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광기’라고 짤막하게 말한다. ‘광기’에 의해 그의 의지가 정복당해서 결국 실패한다.
다른 전승들을 살펴보면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는 오르페우스의 모습,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이유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변신 이야기’나 ‘농경시’에서는 올라갈 때 둘의 대화가 나오지 않는데, 대화를 하며 잘 올라가다가 다 올라왔을 것이라 착각, 혹은 방심한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는 내용의 전승이 있다. 또 손을 잡고 올라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서는 손을 잡고 대화를 하며 잘 올라왔는데 마지막 순간에, 지금 대답하며 손을 잡고 있는 여인이 에우리디케가 맞는 건가 하는 의심을 못 이겨 돌아보게 된다.
3. 판본 선택과 이유
내가 선택한 판본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는 판본에 따라 구체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미묘함 만이 존재할 뿐이다. 바로 이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작은 숨구멍 같은 차이는 역시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는 이유다. 대체로 두려움과 걱정, 사랑으로 인한 그리움, 의심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두려움과 걱정은 전형적인 해석이다. 너무도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안을 수 있다는 희망에 조건을 망각하고 뒤를 돌아본다. 오비디우스는 지상에 다다른 순간, 아내에 대한 걱정과 사랑의 그리움이 발현된 것이라 표현했다. 오르페우스는 여타의 영웅들과 달리 음악으로 역경을 헤쳐온 인물이다. 부드러움이나 평정심과 가깝고 신화에서 흔하다는 불륜이나 강간을 저지르지 않고 단 하나의 여인만을 바라본 애처가다. 그런 오르페우스에게 지상의 빛은 태산만 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걱정이 되고 기대와 함께 그리움이 되어 그의 고개를 움직였다. 오르페우스의 선택은 자발적인 결과다.
‘농경시’에서는 뒤를 돌아본 이유가 ‘광기’라고 나온다. 농업은 신이 정해진 자연과 굴레를 같이 한다. 인간은 이를 수용하고 순간마다 노력할 뿐이다. 오르페우스의 운명도 이미 신이 정해준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광기’라는 표현을 썼을 수 있다. 알 수 없는 힘에 굴복하는 영웅을 통해 죽음의 절대성과 나약한 인간, 신의 위엄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정복이라는 표현도 나왔다고 생각한다. 전승되는 이야기 중 손을 잡고 대화를 하며 올라왔지만 ‘의심’을 이기지 못하고 뒤를 돌아본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알게 모르게 생긴 강력한 의심은 내적인 동기보다는 외부의 절대적인 힘을 설명할 때 더 잘 연결된다. 갑자기 밀려오는 파도를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즉 돌아보는 것은 정해져 있었고 의심은 신이나 절대성이 부여한 것으로 이해된다.
최종적으로 비교하자면 ‘변신 이야기’ 같이 사랑과 스스로의 선택으로 말미암은 비극이 더 좋게 느껴진다. 첫째, 인간적이다. 연인에 대한 사랑과 기대감에 혹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다. 잔인한 이야기는 본인이 결정했다는 것에 더욱 잔인해지므로 이야기의 애달픔이 더 극대화될 것이다. 둘째, 오르페우스의 모습이나 성격에 부합한다. 그는 무력보다는 음악을 내세운다. 아름다움을 담은 예술성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신들은 물론 자연마저 감동시킨다. 이렇게 노래를 부로고 연주하는 행위는 집중력과 침착함을 요구하는데 갑작스러운 의심이 신이 정해준 조건을 무시하게 할 만큼 그를 낮춰 볼 수는 없다. 그 이유가 사랑이었다고 해도 그 사랑은 신의 조건을 지키기 위해 반대로 작용했을 것이다. 신을 찬미하는 연주가가 신을 의심한다는 것도 이상하기 때문이다. 셋째, 내용의 구성상 운명은 이야기의 재미를 떨어뜨린다. 죽은 연인을 구하러 지옥에 간 남자가 찰나의 실수로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데, 이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고 그것을 유도하기 위해 의심이나 장애물이 주어졌던 거라면 신화의 매력은 반감될 것이다. 천천히 쌓인 서사나 극적인 감동은 힘을 잃을 게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는 그의 선택과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더 잔혹하고 아름답다.
4. 플라톤의 향연(Symposion)과 오르페우스
플라톤의 ‘향연’에서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 못한 유약한 자로 그려진다. 또 하나의 판본이라 할 수 있는데, 본인의 목숨을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생하지 않고 지옥으로 왔기에 모든 것이 신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 나온다. 하데스는 그에게 에우리디케의 환영만 보여주고 그녀를 주지 않는다. 애초에 신들이 오르페우스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한 것이다. 사랑을 위해 희생하지 않은 자의 마지막으로 여인들에게 죽는 벌을 준 것은 덤이다. 이 내용과 앞서 설명한 운명을 강조한 판본을 잘 조화한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다. 처음부터 신의 과제로 오르페우스의 사랑을 시험한다는 암시가 있다면 갑작스러운 운명은 사라지고 서사는 보충이 된다. 그리고 연인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그의 사랑은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변신 이야기’에서 그가 죽은 후 ‘엘리시움’으로 가 에우리디케와 못다 한 사랑을 한다는 내용이 있다. 지옥으로 찾아가지 않고 자신과 그녀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목숨을 희생해 신들의 시험을 합격하고 엘리시움으로 갔다면 오르페우스는 사랑의 실패자가 아닌 사랑의 순교자로 더 빛나고 애달픈 이미지를 가졌을 것이다. 서사는 더 강화되고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랑은 더 신비해지지 않을까, 이야기의 갈래를 생각해 본다.
<결론 및 느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매력이 있다. 오르페우스 자체가 다른 영웅들에 비해 도덕적이고 음악이라는 색다른 특징을 가졌다. 이런 영웅이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지옥으로 가는 것은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오르페우스의 자발성은 사랑과 실수라는 공감을 낳고 그로 인해 신화가 인간적인 매력을 갖는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향연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지 않는 오르페우스의 사랑을 평가절하한다. 이는 그 자체로 신박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한다면 분명히 좋은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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