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상 May 22. 2024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 리뷰

간단 후기

혹성탈출 리부트작 4편이다. 3편에서 리부트 시리즈가 끝이난 줄 알았지만 4편이 나왔다. 개봉 후 10일 정도가 지나서 감상했다. 간단히 후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서 '시저'는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그 후 300년 정도가 지난 후의 시대가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의 배경이다. 유인원들은 부족을 이루고 자연 곁에서 살아간다.


그중 '독수리 부족'의 '노아'(유인원)가 이번 영화의 주인공이다. '노아'는 '결속 의식'에 필요한 독수리의 알을 얻기 위해 친구들과 절벽을 오른다. '독수리 부족'은 독수리를 길러 사냥을 하며 함께 살아가는 부족이다. 일행은 천신만고 끝에 독수리의 알을 얻는다. 알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복귀하는 노아와 친구들,  부족과 가족의 환대를 받는다. 그러나 그날 저녁, 칩입자의 소행으로 노아의 '결속 의식'에 문제가 생긴다. 부족의 행사를 망칠 수 없던 노아는 해가 밝기 전에 이를 해결하려 숲으로 향한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던 찰나, 길가에 널브러져 있던 유인원들의 시체가 노아를 맞이한다.  다가가 얼굴을 확인해 보니 시체들은  노아의 부족원이었다. 그 순간, 다른 무리의 유인원들의 달려오고 노아는 이들을 피해 달아난다. 허나, 타고 온 말이 그들에게 발각되어 부족의 위치가 알려지게 된다. 허겁지겁 집을 돌아온 노아, 그들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집들은 불타고 친구들과 가족, 부족원 들은 정체불명의 유인원 무리에게 끌려간다. 이를 막지 못한 좌절감에 노아는 절망한다. 그러나 여기서 무너지면 주인공이 아닌 법, 노아는 마음을 되잡아 부족을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여정의 도중, '시저'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오랑우탄 '라카'를 만나고 '시저'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인간 '노바'를 만나며 여정의 변곡점을 맞는다.


여기까지가 대략의 줄거리이다. 영화는 대자연의 영상미와 유인원들의 감정 묘사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가치관을 통해 유인원과 인간의 관계를 긴장감 있게 표현한다. 흑성탈출 시리즈답게 '인류와 유인원의 관계'라는 시리즈의 핵심 틀도 빛을 잃지 않는다. 무엇보다 영상미와  연기는 영화의 최대 장점이라 할 정도로 훌륭하다.


다만 영화의 스토리는 살짝 아쉽다. 전작과 유사한 면이 꽤 있고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따른다. 하지만 흑성탈출 영화들을 봐왔던 사람들이라면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시리즈의 팬이라면 단점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작품의 성격에 더 끌릴 것 같다. 영화는 그러한 요소들을 보여주며 기대감을 갖게 한다. 앞으로 흑성탈출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면 꼭 봐야 되는 작품이다. 혹시 혹성탈출의 리부트 시리즈를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리부트 시리즈를 감상하고 본 작품을 감상하길 바란다. 더 깊은 재미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전반적인 배경만 알고 가도 충분하다. 전작을 보지 않았다 해도 이해 못 할 정도의 영화는 아니다.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부터는 주로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가치관 등을 통해 느낀 점을 적어보겠다. 리부트 시리즈를 포함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자라면 주의를 해주길 바란다.



노아

침팬지 유인원이다. 노아의 부족은 보노보에 가까운 특징을 보이는데 노아는 침팬지 유인원이라고 한다. 내 눈에는 다 비슷하게 보여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러하다고 한다. 아마도 '시저'와의 연관성을 높이기 위해 침팬지 유인원으로 설정된 듯하다. 혹은 밝혀지지 않은 출생의 비밀이 있을 수도 있다. 사실 '시저'의 후손이었다는..


 아직 어린 유인원으로 망설이거나 대담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전작, 즉 리부트작 3편이 '시저'가 유인원들을 이끌어 가는 내용이었다면, 이번 새로운 시대는 '노아'의 성장기이다. 가장 먼저 지능이 발달한 '시저'는 처음부터 유인원들을 이끄는 리더로서 활약한다. 이와 달리 노아는 어린 나이인 만큼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며,  아버지를 선망하고, 부족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허나 '시저'의 뒤를 따라 주인공으로 설정된 인물답게 멋진 면모들도 보여준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생긴 일이지만 책임을 인정하고 부족들을 구하러 가고, '프록시무스 시저'에게 굴하지 않고 계획을 실행하며 마지막에 부족들을 이끌고 승리를 쟁취한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시련을 극복하던 '시저'의 의지를 떠올리게 한다.


 노아와 '시저'의 여정도 대체로 비슷하다. 즉 이번 영화의 스토리나 특징이 전작들과, 특히 '혹성탈출 : 종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시저'는 '모세'를 모티브로 해 유인원들을 시련에서 구출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다. 노아는 부족원들을 구출하러 가는 여정에서 '시저'의 사상을 접한다. 그리고 '프록시무스 시저'와의 마지막 싸움에서 "유인원들은 뭉치면 강하다."는 '시저'의 사상을 동료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받아 실현하며 승리한다. 동료 유인원들의 구출하고 헌신하는 과정을 둘 모두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점은  영화의 혹평점으로 작용한다. 전작의 내용과 너무나 비슷하고 '시저'와 노아의 캐릭터성이 겹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노아가 '시저'의 뜻을 잇는 존재이고 작품의 결말부에서 보여주듯이 인간의 재기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유인원들에게는 훌륭한 리더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노아'가 이어받았다고 한다면 두 캐릭터의 유사성을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인간을 대하는 '시저'와 노아의 태도에서도 공통점과 차이점을 볼 수 있다. '시저'는 인간에게 길러진 존재로 인간의 이중적인 면모를 잘 알고 있다. 인간은 선함과 악함이 공존하는 존재다. 그래서 인간을 무조건 배척하지는 않지만 견제한다. 공존을 추구하지만 깊게 다가가지는 않는다. 이러한 모습들은 전작들을 통해 여실히 알 수 있다.


노아는 처음에는 여정 중 만난 인간 '노바'(본명은 '메이')를 짐승만도 못한 존재라고 무시한다. 자신의 독수리 알을 깨트린 존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어 좋게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러나 심하게 적대하지 않는다. 나아가 '노바'가 말을 할 줄 알게 되자 그와 소통하며 친밀감을 보인다. 인간을 돌봐야 한다는 '라카'의 가르침도 이유였겠지만 여정의 동료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프록시무스 시저’와의 대화를 기점으로 노아는 인간의 본성에 의구심을 가지며 '노바'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의심은 동족을 죽이고 유인원들의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방을 무너뜨리는 '노바'를 통해 확신이 된다.


처음부터 인간과 함께한 '시저'와 달리 노아는 일련의 과정으로 인간을 경험한다. 방식을 달랐지만 둘은  인간의 부정적인 면모를 확인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악함과 이기심을 견제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인간을 향한 불신과 의심을 가지며 공존에 대해 회의하게 된 것이다. 특히  노아에게 있어 "이것은 모두 인간의 것이었다." "유인원은 이것들을 가질 수 없다"는 '노바'의 말은 그녀에 대한 불신에 불을 질렀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노아는 '시저'의 후계자답게 다르기도 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통해  '시저'와 결을 같이 하게 된다.


그러나 둘은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면모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저'와 노아는 인간을 포용하고 신뢰하기도 한다. 자신을 길러준 주인을 끝까지 믿고, 말콤과의 우정을 신뢰하며, 버려진 인간 여자 아이를 돌봐줬던 '시저'와, 마지막에 '노바'에게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라카'의 목걸이를 직접 건네며 인간과 유인원의 공존에 대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노아의 모습은 인간을 향한 선한 측면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말에서 인간의 재기 가능성이 보이면서 노아의 사고가 인간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작용될지 궁금점을 자아냈다.  후속작의 스토리가 재기하는 인간과 유인원의 대결이라면 노아는 ‘시저’와 정반대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반격의 서막'에서 '시저'는 인간들에게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며 경고했다. 이와 반대로 노아의 미래에서는 부활한 인간이 노아의 영역에 다가와 경고를 하거나 침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의 말을 따르든지, 저항하든지 간에 노아의 선택이 유인원의 행보에 큰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하다.


덧붙여 노아는 이름에 대해서도 말할 거리가 있다. 이름답게 노아는 물난리에서 동료들을 구한다. 성경의 노아가 동물들을 구했다면 유인원 노아는 자기 동료들을 구한 것이다. 그리고 여정 중, '라카'를 만나 '시저'의 뜻을 접한 장면은 성경의 노아가 신의 게시를 받은 것과 비슷하다. 유인원 노아는 앞으로 '시저'의 뜻을 설파하며 리더로서 살아갈 것이다. 후속작이 나오면 문명을 재건하는 중추 인물로 활약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프록시무스 시저'를 물리치고 '시저'의 사상을 수용하면서 본 작에서도 충분히 그런 모습을  보여줬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노아라는 이름은 새로운 시대의 계승자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시저'와 비슷하지만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노아만의 모습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들어 낼 새로운 시대가 무엇일지 후속작이 기대된다.




프록시무스 시저

프록시무스 시저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배우는 자이다. 인간의 찬란했던 문명을 알고 이를 배워 유인원의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그에게 있어 새로운 시대는 유인원의 시대, 그 중심에 자신이 서는 것이다. 그것의 발판이 되는 것은 보물로서 묻힌 인간의 기술이다.


프록시무스는 '시저'의 사상의 수용에 있어 '노아'와의 차이점을 드러낸다. 프록시무스는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라는 '시저'의 아이덴티티를 자신을 위해 악용한다. 뭉쳐서 자신에게 봉사하는 것이 '시저' 사상의 계승이라는 식으로 동료 유인원들을 세뇌한다. 그에게 있어 유인원들의 협력은 강제인 힘을 통해 억지로 뭉치게 하는 것이다. 자발적인 협력과 인정을 통해 '시저' 사상을 실현하는 '노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는 또 다른 핵심 사상도 동족 살해와 다른 부족들을 노예로 이용하는 모습을 통해 철저히 악용하고 부정한다.


인간을 대하는 태도도 재미있다. 인간 개인 교사를 두어 이야기를 듣고 배우지만 인간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기술을 열망해 그것을 손에 넣고 싶어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 말살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해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이러한 사상은 '노아'에게 영향을 준다. 유인원들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이 제방을 터뜨려 물난리를 일으키는 '노바'를 보며 '노아'는 프록시무스의 생각처럼 인간은 악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작중 후반부 '노아'는 '노바'와의 독대에서 프록시무스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때 '노바'는 권총을 뒤에 숨기고 있었다. 이렇듯 프록시무스의 사상은 '노아'의 사고에 스며들었다. 그렇지만 '노아'는 '노바'에게 '라카'의 목걸이를 주면서 불신하지만 인간과의 협력과 공존이라는 이상에 대한 여지를 남긴다. '시저'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기본적인 인격의 차이가 둘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프록시무스는 '시저'하고도 비교할 수 있다. 뛰어난 지능과 동족을 통솔하는 능력은 시저와 닮았다. 그러나 동족을 대하는 태도나 인간에 대한 사고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우선, '시저'는 동족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유인원들의 연대와 평등을 추구했다. 프록시무스는 이와는 반대로 연대를 중요시하지만 강압적으로 자신을 향해 봉사하는 연대를 강요했다. 그리고 자신의 밑에서 이들을 지배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시저'는 인간과의 공존이나 평화를 지향했다. 그러나 프록시무스는 인간은 천성적으로 악한 존재여서 믿을 수 없기에 이들을 지배하고 몰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동족마저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시저'와 프록시무스는 닮았지만 서로 다른 특성을 보여주는 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캐릭터들이다.


작중 프록시무스는 다른 유인원 부족들을 공격해 그들을 노예로 끌고 와 부려먹는다. 전근대 인간의 역사에서 이러한 일들이 심심찮게 행해졌다는 것을 보면 프록시무스의 행보는 인간 문명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을 싫어하고 누구 부다 인간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인간과 가장 닮은 유인원이 자기 본인이었던 것이다. ‘반격의 서막’에서 '시저'가 유인원은 인간과 다름없다고 한탄하는 장면이 있는데 프록시무스가  그에 해당하는 존재로 형상화된 것 같다.


어쨌든 프록시무스의 새로운 시대는 '노아'와 '노바'의 계략으로 물거품이 된다. 그렇지만 그의 사상은 '노아'에게 전달되어 앞으로의 행보에 영향을 줄 것이다.



노바

인간 측 주인공이다. 옷을 제대로 입고 있는 장면을 통해 생존해 있는 인간 무리가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심지어 말도 똑바로 한다. '프록시무스'의 부하들에게 쫓기다가 '노아'를 향해 그의 이름을 외치는 것으로 비범함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진화의 시작'에서 '시저'가 처음으로 말했던 장면과 유사하다.  사육사인 '도콤'에게 'NO!'라고 외치는 장면과 '노아'의 이름을 외치는 노바의 모습은 발음의 유사성의 측면에서 비슷하다. 또한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기던 존재가 말을 하면서 충격을 선사한다는 점도 비숫하다. 다른 점이라면 '시저'는 인간을 거부하면서 말했지만 노바는 유인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했다는 점이다. 이후 장면에서 '노바'의 본명이 밝혀지는데 개봉 날짜를 지극히 노린 듯한 느낌의 ‘메이'이다.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았고 지능도 멀쩡하며 인간의 문명과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오랑우탄 '라카'는 배고파서 자신들을 쫓아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노아'와 목적지가 같기 때문에 따라온 것이었다. 어찌 됐든 '노아'와는 '프록시무스'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협력한다. 그 과정에서 목적을 위해 같은 인간의 묵숨도 서슴지 않고 처리하고 지하벙커의 기술과 유산을 뺏기지 않기 위해 유인원들을 희생하면서도 폭탄을 터트려 벙커를 물속에 잠기게 하는 극단적 면모를 보여준다.

 

 '노아'는 이러한 '메이'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불신을 확신하게 된다. 후반부의 둘의 독대 장면에서도 '메이'는 뒤에 권총을 숨기고 '노아'를 마주 본다. 스스로와 인간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녀의 의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즉 '메이'는 인간의 악함을 담은 캐릭터다. '노아'도 '메이'의 행보를 보며 인간을 비판한다. 


그렇지만 마냥 악하다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을 구해준 '라카'의 죽음에 슬퍼하고 '노아' 및 친구들을 살갑게 대하는 자세나 마지막에 굳이 '노아'를 찾아가 대화를 하며 죽일 수 있지만 죽이지 않는 자세를 통해 ‘메이‘를 선함과 악함이 공존하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인간이 처한 비극이 투영된 복합적 존재가 '메이'인 것이다.


'메이'의 활약으로 인간은 재기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대피소의 인류는 위성칩을 통해 다른 지역의 생존 집단과 소통을 준비할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메이’의 활약은 인류에게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물론 인류의 희망은 시미안 플루의 현황에 달려 있다. 시미안 플루가 사멸되지 않고 남아 있다면 인류의 희망도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시미안 플루의 상황에  '메이'의 미래도 결정된다. '메이'는 시미안 플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공대로 내던져진 존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메이'를 마주하기 위해 방호복을 입고 온 여자를 통해  알 수 있다. '메이'에게 건네받은 위성칩은 철저한 소독을 통해 안으로 전달된다. 이 모습은  바이러스가 아직 남아 있기에 이를 예방하는 전형적인 절차다. 이를 통해 시미안 플루의 상황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메이'는 시미안 플루에 내성을 가진 인간이다. 오랜 세대를 거쳐 내성을 가진 인간이 탄생했는데 그것이 '메이'와 작중 시점 전에 죽은 동료들이다. 이들은 필요한 훈련을 받고 작전에 투입됐다. 따라서 여전히 시미안 플루는 존재하고 내성을 가지지 않은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둘째, 앞에서 말한 것처럼 바이러스는 여전히 성행하고 '메이'에게 내성 따위는 없다. 그녀는 오직 작전을 위해 목숨을 걸고 투입된 존재다. 이렇다면 메이에게 남겨진 것은 지능은 퇴화하고 말을 잃어버려 '인간성'을 상실하는 미래뿐이다. 혹은 인간들에게 살처분될 수도 있다. 이 추측이 맞다면 작중에서 드러난 '메이'의 극단적인 모습들은 이미 목숨을 내던진 자의 처절함에 연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장면들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메이'가 '노아'와의 첫 만남 이후 만나게 된 인간 무리를 애처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장면은 순식간에 비참한 상황이 된다. 동족을 바라보던 애처로운 눈빛은 퇴화해 버린 동족에 대한 연민이 아니었다. 그건 운명의 미리 목도한 한 인간의 체념이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자신의 미래가 아른거렸던 것이다.


두 가지의 상황을 말했다. 이 중에서 나는 '메이'가 시미안 플루에 내성을 가진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슬픈 내용을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후속작을 기대하기에 '메이'라는 캐릭터가 남아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메이'가 비극적인 삶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직 내성이 없는 인간들과는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고 그녀를 두려워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인간이 재기하게 된다 쳐도 유인원과 부딪치게 되는 순간에 심한 내적 갈등을 경험할 수도 있다. 위성이 작동되는 순간, 하늘을 바라보며 슬며시 보이던 미소와는 달리 그녀는 미래는 불확실하다. 어쩌면 흑성탈출 시대의 인간이 처한 비극을 꾹꾹 눌러 표현한 존재가 ‘메이‘가 아닐까. 우리는 그녀를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맺음말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각자의 등장인물들이 꿈꾸는 새로운 시대를 짐작하게 한다. 명작의 반열에 오른 리부트작을 잇는 작품으로 앞으로도 이 훌륭한 시리즈가 계속되길 바란다. 팬심을 넉넉히 담았다. 꼭 후속작이 나왔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산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