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편
<지난 이야기 요약>
과학고 입시 전, 마지막 수행평가와 기말고사를 불과 2주 앞둔 시점. 공부에 매달리던 아이의 몸에서 이상 신호가 나타났습니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는 '임파선염'으로 진단받았지만, 그날 밤 아이는 고열에 시달렸고, 결국 큰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가와사키 병'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밀 피검사 결과 치사율과 재발률이 높은 희귀 난치성 질환,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HLH)'이 의심된다는 말에 따라, 확진을 위해 골수검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6일 차 : 입원 3일 차 &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 확진]
급행으로 골수 검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확인하기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회진을 오셔서,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계획에 일부 차이는 있겠지만, 무엇이 되었든 바로 치료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아이는 아침과 저녁에 피검사를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치료 없이 수액만 맞으며 지냈습니다. 입원 당시 투여했던 광범위 항생제는 HLH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단되었고, 해열제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식이 제한은 없어 병원 식사 외에 과일 등을 가져다주며, 아이가 최대한 푹 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오전 정규 회진 시간에 과장님께서 직접 오셔서 골수검사 결과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HLH는 당시 기준*으로 6개 진단 항목 중 4개 이상이 충족되면 진단되었는데, 아이는 그중 5개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최종적으로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HLH) 진단을 받았습니다.
* 2026년 현재, HLH는 발열, 비장 비대, 혈구감소증, 고중성지질혈증 또는 저섬유소원혈증, 골수나 비장 또는 림프절에서의 혈구포식 관찰, NK세포활성도의 저하 또는 결핍, 고페리친혈증, 높은 농도의 sIL-2r 등의 8개 기준 중 5개 이상을 만족할 경우 진단된다고 합니다.
혹시나 했던 기대 위로 찬물이 끼얹어지며 가슴이 무너져 내렸지만, 이미 나온 결과를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런데 과장님께서 뜻밖에도 치료를 당장 시작하지 말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셨습니다.
"OO이의 피검사에서 일부 수치가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항암치료는 정말 신중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아이 상태에 호전이 보이는 상황에서 섣불리 치료를 시작하기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루 정도 더 지켜본 뒤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7일 차 ~ 13일 차 : 입원 4일 차 ~ 10일 차 & 퇴원]
치료 계획이 보류된 이후, 아이는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며 식사 시간 외에는 거의 눈을 뜨지 않을 만큼 하루 종일 잠만 잤습니다. 특별한 치료 없이 그렇게 잠을 잤고, 밥과 과일도 곧잘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아침저녁으로 피를 뽑았고, 저녁 회진 때마다 피검사 수치가 계속 호전되고 있다는 말을 듣는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아이의 몸이 정말 회복되고 있는지, 낮동안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러자 이번에는 기말고사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장님께서도 회진 중에 아이에게, "이제 몸 좀 괜찮으면, 공부 좀 해야지?"라며 농담처럼 말을 건네셨습니다.
저는 그저 웃어넘겼는데, 아이는 학교에 가서 교과서와 문제집을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진짜 하려고?"
"네, 쉬엄쉬엄할게요."
결국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드렸고,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결석해 있는 동안 각 과목별로 배부된 학습지들을 챙겨 주셨습니다.
그렇게 며칠간 주치의 선생님들과 과장님께서 아이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신 끝에, 예정되어 있던 항암 치료와 면역 치료, 스테로이드 치료를 하나씩 취소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입원 첫날 급하게 투여했던 광범위 항생제와 해열제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치료도 받지 않은 채 며칠을 푹 쉬며 회복한 셈이었습니다.
저희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결과였습니다.
담당 과장님께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는 처음 보신다며 학회에 보고할 가치가 있을 정도로 드문 자연 회복 사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HLH 치료 계획이 모두 취소된 이후에도, 과장님께서는 퇴원 결정을 쉽게 내려주지 않으셨습니다. 간 수치와 페리틴 수치가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시더니, 마지막 남은 간 수치가 정상에 가깝게 회복된 것을 확인한 뒤에야 퇴원을 결정해 주셨습니다.
과장님께서는 퇴원약으로 간 기능 회복약을 처방해 주셨고, 1주일 뒤 다시 내원해 피검사를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간에 부담이 되는 음식은 철저히 피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잘 챙겨주면 좋겠다고 당부하셨습니다. 또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은 재발이 잦은 병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열이 나면 반드시 지체하지 말고 응급실로 내원하라고도 하셨습니다.
아이는 약 열흘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열이 나기 시작한 날로 치면 약 13일에 걸친 투병이었습니다.
퇴원은 했지만, 간 기능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어서, 아이는 집에 돌아온 뒤 쉽게 피로를 느꼈습니다. 그런데도 다음 날부터 곧바로 기말고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병에서는 일단 회복했으니, 과학고 입시를 위한 마지막 시험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입원하기 전 미리 해 두었던 공부가 있어 시간을 조금 단축할 수는 있었지만, 이틀 만에 기말고사 범위를 다시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장기가 손상되었다가 회복되는 과정을 겪은 뒤라 그런지 피로를 견디는 힘이 예전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해보겠다는 아이의 의지가 분명해 차마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제가 옆에 붙어 아이의 공부를 도왔고, 그렇게 이틀간 정말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과학고 입시에 필요한 마지막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서야, 아이는 비로소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2주 가까운 공백이 있었으니 성적이 조금 떨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미리 해 두었던 공부 덕분에 시험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느새 내신 공부의 노하우가 몸에 밴 아이는, 그 와중에도 성적과 등수를 모두 지켜냈습니다. 결국 아이는 원하던 대로 과학고 입학 원서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주일 뒤, 피검사를 위해 다시 소아과에 내원했고, 이후에는 피검사 간격을 점차 늘려가며 병원을 오갔습니다. HLH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추적 검사는 아이가 카이스트 입학을 앞둘 때까지, 그러니까 과학고에 재학하는 동안 내내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 원인 불명의 열이 날 때도 있어 응급실을 여러 차례 오가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열이 나기만 하면 모든 일상이 멈췄고, 시간은 어김없이 HLH가 발병했던 그날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다 점차 열이 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피검사 결과도 계속 안정적으로 나오면서, 저희 가족은 그날의 기억과 공포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HLH는 최종적으로 이차성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으로 판별되었습니다. 원발성, 즉 유전성 질환이 아니었고, 드물지만 자연 회복이 된 사례였기에 재발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주변에서는 사춘기 시기에 나타날 수 있는 급격한 신체 변화로 인해 병이 발생했다가 호전된 것일 수도 있다고도 말했지만, 생사를 오갔던 그 시간만큼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지금도 아이가 열이 난다고 하면 제 가슴은 여전히 덜컥 내려앉습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재발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B 과장님의 말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이 역시 그 이후로는 자신의 건강을 늘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저희는 운이 좋았습니다.
사전 조치도 빨랐고, 진단도 비교적 신속했으며,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 회복하는 행운까지 누렸습니다.
하지만 추적 검사를 받던 2년 반동안, 신생아부터 제 아들 또래의 아이들까지 많은 아이들이 HLH라는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한 유명 가수의 아내가 같은 병으로 사망하게 되면서, 이 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게 짧지만 깊게, 아이를 잃을 뻔한 경험을 한 이후, 저의 모든 우선순위는 '아이의 건강'에 맞춰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생기든, 그 순간을 떠올리며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
내 아이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지금, 원 없이 사랑해 주자.
건강하게만 살아다오!
우리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자.
아이의 학교생활기록부에 남은 '열흘간의 결석'은 남들이 보기엔 단순히 학교를 가지 않은 날일지 모릅니다.
과학고 출석면담에서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아이의 답변이 무엇이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그 시간을 견뎌낸 아이가, 지금도 너무 대견합니다.
'삶'에서 '교육'은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물론, 저희도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며, 한때는 모든 것이 '교육'에 맞춰져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닥친 시련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이와의 관계, 특히 사춘기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사춘기는 잠시 지나가는 시기일 뿐, 아이의 전부가 아닙니다.
이 순간,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이 '성적'이든 '훈육'이든 '입시'든, 그 어떤 것도 아이의 생명과 건강보다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사교육 정글 속 생존자의 기록 3 _ 중등 편>을 마칩니다.
<사교육 정글 속 생존자의 기록 4 _ 고등편>은 2월 3일 화요일, 프롤로그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