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건강하게만 살아다오! (2)

중등 편

by My Way

<지난 이야기 요약>

과학고 입시를 앞두고 마지막 수행평가와 2주 앞으로 다가온 기말고사 공부를 하던 아이의 몸에 이상 신호가 나타났습니다. 수면 부족과 면역력 저하로 중학교 3학년 1학기 내내 목감기를 달고 살긴 했지만, 목에 생긴 커다란 혹(임파선)은 더 이상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는 임파선염으로 진단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아이는 고열에 시달렸고, 다음 날 찾은 큰 병원에서는 가와사키 병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피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또 하루가 흘렀습니다. 그 사이 아이는 아픈 몸을 이끌고 수행평가를 치겠다며 학교로 갔습니다. 하지만, 병원의 연락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아이의 상태가 매우 나쁘니, 당장 입원이 필요하다는 소견이었습니다.

교복도 벗지 못한 채 바로 병실로 옮겨진 아이의 상태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매우 위중했습니다. 특히 간 기능 수치가 지나치게 나빠, 정밀 피검사가 나올 때까지는 약물 사용조차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4일 차 (2) :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 의심]


저녁 회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과장님께서 병실로 들어오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명치 근처에서 스멀스멀 불안함이 올라왔습니다.


"저, 어머니. 정밀 피검사 결과가 나왔는데요. 아무래도 가와사키병이 아니라 다른 병이 의심됩니다.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는 희귀 질환인데,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골수 검사가 필요합니다."

"혈구... 뭐라고요?"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고 합니다. 이 병은 빠른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내일 바로 골수검사를 진행했으면 합니다. 혹시 서울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싶으시다면 전원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저희 병원에 얼마 전 스카우트한 소아암 담당 과장님이 이 질환 분야의 권위자이십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과장님께 맡겨보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 잘 판단하셔서 결정해 주시면, 저희가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조금 있다가 이 병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드리기 위해 B 과장님께서 직접 들르실 겁니다."


이름조차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병명이었습니다. 과장님의 말을 듣는 동안 귀는 먹먹해졌고, 머릿속은 텅 빈 것처럼 멍해졌습니다. 과장님은 한동안 말없이 제 얼굴을 바라보시더니,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고 다시 한번 신신당부하시고는 병실을 나가셨습니다.


가와사키병도 처음엔 생소해 인터넷 검색을 하며 알게 되었는데, 이번엔 한 번 들어서는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병이라니. 더군다나 담당 과장님이 소아암 분야의 권위자라는 말까지 덧붙여지자, 상황의 무게가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과장님이 나가신 뒤, 아이와 저는 말없이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조심스럽게 휴대전화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는 병명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HLH)이란, 전신 염증과 면역반응 조절이상으로 고열과 범혈구감소증 및 장기부전을 초래하는 치명적인 면역조절장애 질환이다. 원래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을 포식해야 하는 대식세포가 이상 증식해서 적혈구, 다른 백혈구, 혈소판의 전구 세포인 거대핵세포 등을 잡아먹어 생기는 질환으로 희귀병이자 자가면역질환이다. 원발성(가족성 or 유전성)과 이차성으로 나뉘고, 표준 치료법이 없어 백혈병 치료법을 대부분 따와서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빠른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치사율이 높고 재발률도 높은 병이다(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등 요약정리).]


사실, 그 당시에는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 일명 HLH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고, 의사들에게조차도 생소해 진단이 쉽지 않은 병이었습니다. 이 병은 치료 시기를 놓쳐 급속도로 진행될 경우,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두 달 안에 사망에 이를 수 있으며, 5년 생존율도 55%로 낮은 매우 위험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재발률 또한 높은 편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진단과 치료 프로토콜이 마련되어, 비교적 빠른 대응이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그저 가벼운 임파선염쯤으로 여겼던 일이, 치료가 가능한 가와사키병으로 바뀌더니, 다시 치사율과 재발률이 높은 희귀병이라니...

상황이 너무 빠르게 바뀌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 역시 인터넷 검색을 해본 뒤 적잖이 놀란 듯,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1인 병실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간호사님이 소아암 병동 1인실에 자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소아암 병동이라니...


아이와 함께 주섬주섬 짐을 챙겨, 성인 병동에서 소아암 병동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소아암 병동은 성인 병동보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였지만, 복도를 지나며 본 다인실에는 제 아이 키의 절반, 아니 3분의 1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들이 빼곡히 누워있었습니다.


옮긴 병실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을 즈음, HLH 분야의 권위자라고 소개받은 B 과장님이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병실로 들어오셨습니다.

과장님은 병에 대해 차분히 설명하시며,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병을 확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골수검사를 내일 바로, 급행으로 진행해야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치료는 보통 세 단계로 나뉘어 진행된다고도 덧붙이셨습니다(2018년 당시의 치료법이라 지금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1단계 : 항암치료

2단계 : 면역치료

3단계 : 스테로이드 치료


어떤 단계부터 시작할지는 병의 경과를 보며 결정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 고열이 떨어졌고 지금은 계속 미열 상태인데요."

"열은 떨어졌을지 모르지만, 피검사 결과로 보면 아이의 상태는 계속 나빠지고 있습니다."


저는 혹시 오진의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하지만, 과장님의 태도에서 이미 판단이 끝났다는 확신이 느껴졌습니다.


그때 곁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과장님께 질문이 있다며 입을 열었습니다.


"이런 병은 왜 걸리는 건가요?"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유전일 수도 있고, 바이러스 감염 때문일 수도 있어. 골수 검사를 하면서 왜 걸렸는지도 함께 확인할 거야. 아마 2~3주쯤 지나면 원인을 알 수 있을 거야. 또 궁금한 거 있니?"

"치료하면... 살 수 있어요?"

"그럼. 내일 골수검사로 확진이 되면 바로 치료에 들어갈 거고, 그러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런데 애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너 꽤 똑똑한가 보구나?"


과장님은 아이의 질문 하나하나에 성심껏 답해 주신 뒤, 제게 잠시 따로 이야기를 하자며 병실 밖으로 나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가요? 전원을 고려하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옮기는 게 아이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이 병은 조기 발견과 빠른 치료가 예후를 좌우합니다."

"여기 남아서 치료받겠습니다. 내일 당장 골수검사 잡아주세요."


과장님이 병실에 오시기 전, 저는 검색을 통해 B 과장님이 이 병의 권위자라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고, 아이 아빠와 상의해 이 병원에 남기로 결정을 해 둔 터였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 더는 망설이지 않고 치료를 받겠다고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다. 과장님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제 결정을 받아주셨습니다.


그날 밤, 퇴근한 아이 아빠도 병실로 와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쉽게 잠들지 못한 채,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의 판단이 오진이길, 검사 결과가 별일 아니길. 그저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복도가 소란해지더니 '코드 블루'가 발생했다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어수선해진 복도와 옆 병실에서 들려오는 아이 엄마의 울음소리는,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참 무거운 밤이었습니다.


[5일 차 : 입원 2일 차 & 골수검사 ]

아침 일찍부터 피검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아이는 여전히 미열 상태였지만, 계속 잠을 잔 덕분인지 컨디션이 크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한 시간쯤 뒤, 골수 채취를 위해 5~6명의 의료진이 병실로 들어오셨습니다. 원래는 아이가 검사실로 이동해야 하지만, 1인실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이의 안정을 우선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병실에서 채취를 진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골수 채취에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30분, 채취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에는 두 시간까지도 소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보호자는 병실 밖에서 대기해 달라는 말에, 아이 아빠와 저는 병실 앞에서 나란히 기다렸습니다.


과학고를 꿈꾸며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희귀 난치성 질환에 걸렸을지도 모른 채 전신 마취를 하고 골수를 채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병실 안에서는 간호사님들이 들락날락했고, 의사 선생님들은 아이 곁에 서서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습니다. 문틈으로 보이는 그 장면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흘러갔습니다.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으로 확진되면... 바로 항암치료를 위해 무균실에 들어가야 한대."

"응."

"상태가 심하면 골수이식을 해야 할 수도 있대."

"응."


항상 어떤 일이든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냉철하게 판단하던 아이 아빠 역시, 아이의 병 앞에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럼에도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는 듯 보였습니다. 저 또한 불안한 마음을 꾹 눌러 담은 채, 담담하게 아이의 병을 받아들이는 척했습니다.


다행히 아이의 골수 채취는 30분 만에 끝났습니다.

아이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전신마취를 한 상태여서 아이는 검사 후에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다만 자세가 어딘가 엉성해 보여 편안하게 눕혀 주고 싶었는데, 골수 채취 부위의 지혈이 무엇보다 중요해 당분간은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골수 채취에 함께하셨던 선생님 중 한 분은 병실에 남아 아이의 상태를 계속 살펴봐 주셨습니다. 호흡에 이상은 없는지, 심장 박동은 괜찮은 지 확인하며 거의 두 시간 가까이 함께 계셨고, 아이의 숨소리가 안정되고 지혈 상태도 양호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병실을 나가셨습니다.

아이는 그로부터 장장 6시간을 자고서야 깨어났습니다. 골수 채취 당시의 기억은 전혀 없었고, 채취한 부위가 조금 뻐근하다는 말만 했습니다. 지혈도 잘 이루어져 검사로 인한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골수 검사 이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계속 미열 상태였던 아이의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많이 고단해 보였고, 며칠 사이 눈에 띄게 핼쑥해지긴 했지만, 과장님이 그토록 확신하던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 정말 맞긴 한 걸까 싶을 만큼 아이는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병이 쉽게 치료되는 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한 뒤, 과학고 입시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HLH로 확진될 경우 항암치료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다음 단계의 치료로 넘어간다는 설명을 함께 들었기에, 당분간 학업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이번 학기 기말고사만 잘 치르면 입학원서를 넣기 위한 준비는 다 끝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상황을 좀 봐야겠지만, 치료가 시작되면 우선 휴학을 하고 건강부터 회복한 후 다시 3학년 1학기부터 학교를 다닐 수도 있고, 아니면 검정고시를 통해 중학교 졸업을 인정받고 과학고에 도전할 수도 있어. 준비기간이 조금 늘어나긴 하겠지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지금은 무엇보다 건강을 회복하는 게 가장 중요해."


아이는 그동안의 노력이 아쉽긴 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사실 그때의 저는, 아이의 건강 회복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가 우리 곁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만 준다면 다른 것은 모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과학고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제발,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만 아니길. 만약 그 병이 맞더라도, 치료가 잘 맞아 예후 좋게 완치되길.'


과장님의 반응으로 보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골수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유난히도 길고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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