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편
<사교육 정글 속 생존자의 기록 3 _ 중등 편>은 앞선 영유아편 / 초등 편과 달리, '본편'과 '못다 한 이야기' 외에 '번외 편'을 따로 마련하였습니다.
번외 편에서는 교육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덧붙인 이유는, 본편 18화에서 언급했던 '약 열흘간의 결석'에 얽힌 사정을 밝히고, 그 이야기를 통해 지금 이 시점에서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소 길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기록을 따라가며 지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중학교를 다니는 내내 과학고 입시에 몰두하며 지내던 아이는, 3학년이 되더니 어릴 때부터 줄곧 유지해 오던 '9 to 6' 생활, 그러니까 밤 9시에 잠들고 아침 6시에 일어나던 루틴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과 비교해 보니 자신의 수면시간이 지나치게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는데, 그 결과 수면 부족과 면역력 저하로 3학년 1학기 내내 쉽게 피로해했고, 목감기를 달고 살다시피 했습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닐까?"
"친구들 중에 저처럼 일찍 자는 애가 없어요."
"친구들은 학원을 다니니까 이동시간도 있고, 수업 시간도 있잖아. 너는 그 시간을 공부에 쓸 수 있으니까, 차라리 집중해서 하고 그냥 일찍 자는 게 어떨까?"
"일단 이렇게 공부해 보고요. 학교에서 너무 졸리거나 힘들면 조정할게요."
열심히 해 보겠다는 아이의 의지를 쉽게 꺾을 수 없었던 저는, 그저 간식과 영양제를 챙기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학고 입시에 3학년 1학기까지의 성적이 중요한 상황이었기에, 아이는 평소에도 시험 기간과 다름없는 몰입과 집중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중간고사가 끝난 뒤에도, 며칠간의 시험 보상(05화 참조)조차 제대로 누리지 않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1일 차 : 발견 / 2일차 : 동네 병원 내원]
그날도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공부방에 들어가 이른 기말고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열려 있는 문틈 사이로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저는 간식을 챙겨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거 먹으면서 조금 쉬다 하는 게 어때?"
아이는 하던 공부를 잠시 멈추고 저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아이의 목에서 무언가가 툭 튀어나온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잠시만, OO아, 목에 이거 뭐야?"
"아, 이거요? 며칠 전부터 생긴 건데... 임파선이 부은 거 아닐까요?"
"임파선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데?"
아이 목에 튀어나온 혹은, 일반적인 임파선이라고 보기에는 비정상적으로 커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동네 이비인후과에 들렀습니다.
"임파선염이네요."
동네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약을 지어주셨고, 그 말에 저는 한시름 놓았습니다. 아이 역시 별다른 변화 없이, 평소처럼 늦은 시간까지 공부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잠자리에 들기 직전, 아이에게서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비인후과에서 처방받은 약에는 해열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는데, 아이의 체온이 39도를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할 수 없이 집에 구비해 두었던 타이레놀을 먹이고 재웠습니다.
[3일 차 : 종합병원 내원]
다행히 아침에는 체온이 정상으로 내려가 아이는 학교에 갔습니다. 마침 수행평가가 한창이던 시기라, 아이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등교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날 밤의 고열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비인후과에 전화로 상담을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본인이 진단한 임파선염만으로는 그렇게 높은 열이 나기 어렵다며, 좀 더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아이의 하교 시간은 오후 4시. 그 시간을 감안하면, 병원 문을 닫기 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을만한 종합병원은 집 근처에 한 곳뿐이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저는 그 병원 소아과에 전화를 걸어 아이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원래는 전화 접수를 받지 않는 곳이었지만, 아이의 상태를 들은 의사 선생님의 배려로 오후 5시까지 내원하면 진료를 봐주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미리 연락을 해두고, 하교하자마자 곧바로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진료가 끝나 진료 대기실이 텅 비어 있었지만, 너무 감사하게도 과장님 한 분이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A 소아과 과장님은 아이의 전날 밤 상태를 꽤 진지하게 들어주셨고, 아이의 목에 튀어나온 임파선을 유심히 살펴보신 뒤 피검사를 권하셨습니다. 다만 아직 상황을 속단하기는 이르다며, 항생제는 처방하지 않고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해열제와 일반 감기약만 처방해 주셨습니다. 피검사 결과는 다음날 오전 중에 전화로 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는 낮동안 다소 나른하긴 했지만 열은 없었다며, 그날 밤에도 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했습니다. 시험까지는 앞으로 2주. 아이에게는 과학고 입시에 반영되는 마지막 성적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 무렵부터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처방받은 해열제를 먹어도 체온이 39도를 넘긴 채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밤새 끙끙 앓는 아이 곁에서 아이의 온몸을 식히며 저는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4일 차 (1) : 입원 1일차 & 가와사키병 의심]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침이 되자, 밤새 오르내리던 열이 거짓말처럼 떨어졌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열만 나지 않으면 잘 놀던 꼬맹이는, 중학생이 되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밤새 앓아누웠으면서도, 열이 내리자 아이는 학교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계속 이어지던 수행평가를 놓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열이 나면 꼭 전화해."
그렇게 당부하며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저는 피검사 결과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병원 진료가 시작되었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전화가 오지 않자, 결국 제가 먼저 병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님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나오자마자 바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오전 11시가 다 되어갈 무렵, 아이를 진료해 주셨던 과장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습니다.
"OO이 어머님, 아무래도 당장 입원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피검사 수치가 상당히 좋지 않고, 지금 상태라면 아이가 많이 힘들 겁니다. 바로 입원 절차를 밟으시죠."
"무슨... 병인가요?"
"일단 가와사키병이 의심됩니다. 다만, 입원 후 좀 더 정밀한 검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가와사키병...
저는 그날 처음 그 병명을 들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병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엄마의 직감으로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곧바로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고, 선생님은 마치 기다리고 계셨다는 듯 곧바로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OO이가 열이 너무 올라서요. 안 그래도 전화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어머님."
아이는 수업시간에 치르는 수행평가까지는 마무리했지만, 갑자기 열이 크게 올라 보건실에 누워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아이를 데리러 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고, 도착하자마자 입원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런데 병동 배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이는 소아과 병동에 가기엔 너무 컸고, 성인 병동에 가기엔 아직 너무 어렸습니다. 입원실 배정이 쉽지 않아 1인실이 있으면 들어가겠다고 했고, 마침 성인 병동에 1인실이 하나 비어 있어 일단 그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후 소아과 병동에 자리가 나면 옮기기로 했습니다.
소아과 병동에 자리가 나기 전까지는, 과장님과 간호사님들이 아이 한 명 때문에 병동을 오가셔야 했습니다. 꽤 번거로운 일이었을 텐데도, 그분들은 자주 올라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 주셨고, 고열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애써 주셨습니다.
입원 후 아이가 가장 먼저 받은 처치는 광범위 항생제와 해열제의 교차 투약, 그리고 정밀 피검사였습니다.
열이 너무 높아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 링거 주사를 놓는 데에도 애를 먹었습니다. 아이의 손등과 팔뚝에는 주삿바늘 자국이 하나둘 늘어났고, 결국 수간호사님이 오셔서야 링거 줄을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이 해열제가 마지막입니다. 이것마저 효과가 없으면, 열이 내려갈 때까지 어머니가 아이 몸을 닦아주셔야 할 것 같아요."
링거를 꽂아 주시던 수간호사님은, 아이의 피검사 결과 간 기능 수치가 너무 낮아 해열제 투약 자체가 위험하다는 과장님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도 제 눈에 보이는 아이의 상태는, 목에 부은 임파선과 높은 열 외에는 크게 나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과장님과 간호사님들의 긴박한 반응이 선뜻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과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지금 굉장히 힘들 텐데요. 너무 잘 견디고 있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평소에도 감정 기복이나 감정 표현이 적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조금만 더 주의 깊게 살펴봤어야 했는데, 제가 아이의 상태를 너무 늦게 알아차린 건 아닐까, 뒤늦은 자책이 밀려왔습니다.
아이는 병원에 와서 안심이 되었는지, 입원 직후부터 줄곧 잠만 잤습니다. 저는 아이 곁에서 10분 간격으로 체온을 재며, 마지막 해열제가 부디 효과를 내주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가와사키병'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와사키병이란 소아에서 발생하는 원인 불명의 급성 열성 혈관염으로 피부, 점막, 임파절, 심장 및 혈관, 간 등에 기능 이상을 가져올 수 있고, 위장관 장애, 담낭수종, 드물게 뇌수막 등의 염증이 나타날 수 있는 병이다. 원인은 불명확하지만, 현재까지는 유전학적 요인이 있는 소아가 다양한 종류의 병원체에 감염되면 과민반응이나 비정상적인 면역학적 반응을 일으켜 가와사키병이 발생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재발률은 3% 정도 되며, 치료는 발병 10일 이내에 급성기 치료가 시행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면역글로불린 다량 요법과 고용량의 아스피린 치료가 행해져야 하며, 사망률은 0.01%이다(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등 요약정리).]
원인을 알 수도 없고, 특별한 예방법도 없는 병인 데다, 유전학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말에 마음이 더 심란해졌습니다. 그나마 치료법이 있는 병이라는 점에 작은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를 입원시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제안하셨던 과장님께서 회진을 와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마지막 해열제 덕분인지 아이의 열이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정밀 피검사 결과는 1시간 이내로 나올 것 같습니다. 지금은 간 기능이 너무 떨어져 있는 상태라 급하게 광범위 항생제만 투여했고, 해열제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처방했는데, 약간이라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과장님께서 돌아가시고, 열이 조금 내린 아이가 잠에서 깼습니다. 오래간만에 푹 자서인지 컨디션이 괜찮아졌다고 웃어 보였지만, 제 눈에는 여전히 몹시 창백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니, 가와사키병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 회진을 마치고 나가셨던 과장님께서 급하게 다시 병실로 들어오셨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