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이야기 2. 중학교 성적의 함정

중등 편

by My Way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말,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제1조(목적)에 따르면, 공교육 정상화란 초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이 본래 목적에 맞게 운영되도록 선행교육과 선행학습 유발 행위를 규제하고, 학생의 건강한 성장과 교육 기회의 균등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 현장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한때 학원은 분명 학교 수업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었는데, 이제는 학원에서 먼저 배우고 학교에서 그 내용을 다시 듣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원 숙제를 하고,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학원 수업으로 부족해진 잠을 교실에서 보충하기도 합니다. 이제 이런 모습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습니다.


저는 학교 수업만으로 부족한 부분을 사교육으로 보완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기주도학습이 '사교육 없는 학습'과 동일하지 않다는 점도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사교육이 그 역할과 범위를 넘어 공교육의 영역까지 잠식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어쩌다가 사교육을 이토록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게 된 걸까요?


제 아이가 과학고에 진학하기 전까지 친구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나는 고등 수학을 OO번 돌렸다."라는 자랑 아닌 자랑이었습니다. 저 역시 아이 친구의 엄마들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15화 참조). 그럴 때마다 선행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현행 위주로 공부하고 있는 아이의 학습에 괜스레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아마 제가 느꼈던 그 '불안감'이야말로 사교육을 부추기는 가장 큰 원흉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변에 돌아보면, 아이 스스로 원해서 학원을 다니는 경우보다 엄마의 권유로, 혹은 남들이 다니니까 학원을 다니는 경우를 더 자주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학원에 다녀온 날이면 아이도, 엄마도 "오늘은 공부를 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는 말도 흔히 듣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 아이는 정말로 공부를 한 걸까요?


물론, 학원을 다니며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다만 제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학원에 다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공부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느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만약 학원에서의 공부가 유일한 정답이라면,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제 아이는 늘 뒤처져 있어야 했을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는 학원의 존재 자체보다도,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느냐, 얼마나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중학교 시기에 자기주도학습이 몸에 배도록 실천해야 하는 진짜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평가방식과 학습 수준 차이 때문입니다. 이는 과학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고등학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안이기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드릴까 합니다.


첫째, 평가 방식의 차이

중학교에서는 원점수가 90점 이상일 경우, 대체로 A라는 성취도를 받습니다. 이 성취도는 지필평가(중간, 기말고사)와 수행평가를 반영한 결과로, 절대평가 방식입니다. 물론 전교 등수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이는 공식적인 평가 자료로 활용되지는 않습니다.

반면 고등학교는 석차를 기준으로 일정 비율 안에 들어가야 등급을 받은 상대평가제입니다. 기본적으로 1등급은 전체 수강생의 상위 10% 이내에 들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고등학교에서도 성취도 등급(A~E)이 병행되지만, 이 성취도 결과가 석차 등급과 직접적으로 연동되지는 않습니다.

고교 내신 비교.jpg 출처 : 지혜의 동산 블로그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중학교 성적의 함정이 생깁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학교에서 A 등급을 받은 학생의 평균 비율은 28.2%인 반면, 고등학교에서 A등급을 받는 비율은 18.3%에 그친다고 합니다(출처 : 종로학원, 2024년 공시자료 분석 결과). 이를 단순 비교해 보면, 중학교에서 A 등급을 받던 학생들 가운데 약 9.9%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더 이상 A 등급을 받기 어려워진다는 의미가 됩니다. 더 나아가, 고등학교에서 A 등급을 받는 학생 비율이 18.3% 임을 고려하면, 이들 모두가 상대평가에서 상위 10%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1등급'에 속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중학교 때는 분명 공부를 잘한다고 여겨졌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성적이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성적만으로는 고등학교의 학업 성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학습 수준 차이

중학교에서는 비교적 암기 위주의 학습이 가능합니다. 시험 범위가 넓지 않고 난이도도 적당해, 교과서와 문제집을 반복해 익히는 방식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정 부분에서는 벼락치기식 공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시험 난이도가 높아지고, 단순 암기보다는 응용력, 즉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출제됩니다. 공부해야 할 분량 또한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중학교 때와 같은 벼락치기식 학습으로는 분명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겁니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과정이 중학교에 비해 갑자기 어려워졌다고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단계로 '건너뛴' 결과라기보다는, 이전 단계에서 차곡차곡 쌓아야 했던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수학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연계성이 매우 강한 과목이어서 어느 한 단원에서라도 개념이 흔들리면 이후 과정이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는 자기주도학습을 해 온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가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시기부터 자기주도학습이 몸에 배어 있다면, 고등학교에 올라가 특정 과목, 특히 수학에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스스로 개념과 원리를 점검하고 이를 응용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지금까지 해왔던 학습방식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에도, 그 변화가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럽게 느껴질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고등학교 성적은 단순한 암기력이 아니라, 사고력과 응용력, 그리고 자기 주도성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그렇기에 중학교 시기는 고등학교 학습을 대비해 자기주도학습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준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켜본 바로는, 사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학원 의존도가 낮은 아이들 가운데에는 공통된 모습이 있습니다. 학습 속도가 빠르지 않고 요령이 부족해 보이지만, 수업시간만큼은 늘 선생님과 눈을 맞추며 끝까지 집중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태도는 자연스럽게 수업 시간에 드러나고, 결국 선생님들에게도 눈에 띌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중학교에만 국한된 장점이 아니라,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이어지는 중요한 학습 습관이 됩니다.


중학교 시기의 성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업에 임하는 태도와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려는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결국 성적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사교육의 유무가 아니라, 학교 수업을 대하는 태도와 배운 내용을 스스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힘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 힘은 중학교 시기부터 차근차근 길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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