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편
3학년이 된 아이는 시험기간 외에는 웬만하면 지켜오던 '9 to 6' 생활(2편 12화 및 05화 참조)을 결국 청산했습니다. 친구들과 비교해 보니 자신의 수면시간이 지나치게 많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아이의 취침시간은 9시에서 10시로, 다시 11시로 조금씩 뒤로 밀렸고, 시험기간 3주 전쯤에는 자정까지 공부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리한 변화였는지 피곤해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고, 수면 부족이 겹치면서 면역력이 떨어져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즈음에는 결국 감기에 걸려 한동안 고생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학고 입시에서 3학년 1학기가 가장 중요한 마지막 학기라는 사실 앞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아이의 의지를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감기약을 챙겨 먹어가며, 아이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아침형이었던 아이는 취침시간이 늦어지자 아침에 일어나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침밥을 먹여 학교에 보내려고 일찍 깨웠고, 아이가 너무 피곤해하는 날에는 15분 거리의 학교를 차로 데려다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평일과 토요일(영재교육원)까지, 가능한 아이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는 동시에, 학교에 대한 정보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학교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하려 노력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이후 결성된 학부모 모임은 그 뒤로도 꾸준히 유지되긴 했지만, 모든 아이들이 과학고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아이의 진로가 과학고로 정해진 뒤부터는 관련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초등 시절 전학(2편 11화 참조) 이후, 학급임원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았던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결국 제가 더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정보를 얻고, 친구 엄마들과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신경을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가장 자주 맡게 된 역할이 바로 학부모 시험감독이었습니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부정행위를 방지하고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일환으로 시험 때마다 학년을 섞어 시험을 치렀고, 선생님을 보조할 학부모 시험감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실제로 시험 감독을 들어가 보면, 한 반에 1, 2학년 혹은 2, 3학년이 반반씩 섞여 있었고, 한 줄씩 학년을 달리 배치해 번갈아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부정행위를 원천봉쇄하려는 학교의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저는 아이가 중2가 된 이후부터 졸업할 때까지 꾸준히 시험감독을 자원했습니다. 학부모 감독을 하면, 일단 자신의 아이가 시험 보는 반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었고, 선생님들을 도와 문제 오류 전달, 화장실 동행, 떨어진 학용품 챙겨주기, 답지 걷기 같은 사소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들을 맡아했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교실에 선생님 외에 '또 하나의 눈'이 있다는 사실이 시험 분위기를 좀 더 긴장감 있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부모 시험감독은 학생들의 시험 시간과 동일하게 운영되어, 하루 2~3과목을 치르는 동안 꼼짝없이 시간을 할애해야 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3일간의 시험 중 하루만 참여하면 되었지만, 인원이 부족해 중복 참여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가능한 한 참여했고, 그러다 보니 자주 마주치는 분들과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아이 친구 엄마들과 담소를 나눌 시간들이 생겼고, 그러면서 과학고 진학을 꿈꾸는 아이들이 누구인지도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시험감독을 하며 알게 된 아이 친구 엄마였는데, 과학고를 희망하는 학생들의 엄마끼리 모여 정보도 교환하고 친목을 다져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일명 '과학고 희망 학부모 모임'이었죠.
다들 학교 근처에 살고 있어서 첫 모임은 저녁에 했는데, 그날 하마터면 자정을 넘겨 집에 들어갈 뻔할 정도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가장 신기했던 건, 과학고라는 목표는 같은데, 희망하는 이유만큼은 아이마다 전부 달랐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엄마의 희망이 아이보다 더 앞선 경우도 있었고,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이가 그 목표를 품게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엄마와 아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 준비하는 가족도 있었고, 저희처럼 오롯이 아이 스스로의 의지로 과학고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모임에서 저는 과학고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뿐 아니라 일반고 입시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모임에만 다녀오고 나면, 늘 명치끝이 꽉 막힌 듯한 묘한 불편함이 남곤 했다는 점입니다.
"과학고 가려면 수학은 OO만큼, 물리는 OO만큼은 하고 들어가야 하는 거 알죠?"
"과학고 떨어지면, 일반고 가야 할 텐데, 내신 잘 받으려면 학생수가 많은 학교를 선택해야 해요."
"우리 애는 OO 학원 과학고 전담반에 들어가서 준비하고 있어요. OO이는 어디 다녀요?"
"OO이는 고등수학 몇 번 돌렸어요?"
"OO이는 자소서 컨설팅 어디서 받아요?"
모임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누구는 과학고 입학을 위해 유명 학원들을 다니고 있었고, 누구는 벌써 고등 수학을 끝내 대학 수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자소서 컨설팅을 받고 있다는 말도 들려왔습니다. 모두가 과학고 입시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게다가 혹시라도 과학고에 불합격했을 때를 대비해, 어떤 일반고를 선택해야 내신에서 유리한지까지 이미 전략을 세우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내신을 잘 받으려면 학생수가 많은 고등학교가 유리하다"거나 "고등학교 내신은 9등급제*로 운영된다"는 이야기를 그날 처음 들었습니다.
* 내신 9등급제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25년 현재 고1 학생이 입시를 치르는 2028학년도 대입부터 내신 5등급제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방식이 정말 최선인지, 집에서 묵묵히 공부하고 있는 아이에게 제가 더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는지 자꾸 의문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기주도학습이 습관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제 아이는, 친구가 어떤 유명 학원을 다니든, 선행을 어디까지 했든, 고등 수학을 몇 바퀴 돌렸든 전혀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플랜대로 꾸준히 과학고 입시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과학고 희망 학부모 모임'은 그 뒤로 몇 번 더 이어졌지만, 실질적인 입시가 시작되면서부터는 각자 자기 방식대로 준비하느라 자연스럽게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입시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첫걸음은 자기소개서 작성이었습니다.
[마흔다섯 번째 고슴도치 시선] 과학고를 가겠다는 목표가 생긴 뒤, 아이는 중학교 생활 내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부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축구 방과 후 수업은 없었지만(02화 참조), 여느 남자 중학생처럼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을 누비며 축구를 하느라 매일 땀에 젖은 체육복과 더러워진 운동화를 집에 갖고 왔습니다. 하교하는 시간만이라도 친구들과 더 있고 싶어, 학원까지 배웅한 뒤 도보 15분 거리인 집을 40분 넘게 걸려 돌아오기도 했습니다(06화 서른여섯 번째 고슴도치 시선 참조). 또한 틈틈이 친구들과 온라인상에서 만나 PC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습니다.
다만, 또래보다 일찍 '과학고'라는 목표가 생기다 보니, 아이는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려고 애썼습니다. 시험이 끝난 뒤 일주일간 누리던 달콤한 보상 시스템(05화 참조)만으로 순간순간의 유혹을 조절했고, 하고 싶은 일들은 '과학고 입학 후에 할 것들'이라는 위시리스트를 작성해 두고 잠시 미뤄두며 마음을 다스려갔습니다. 그만큼 제 아이는 스스로를 잘 관리하려고 노력하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위시리스트는 과학고 합격 후에도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과학고 입학은 끝이 아니라, 훨씬 더 높은 단계를 요구하는 또 다른 시작이었으니까요.
[다음 이야기] 자소서엔 정답이 없다.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