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편
중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아이는 과학고 입시를 향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미리미리 챙겨야 했던 성적과 수상실적, 봉사활동, 독서 기록, 학교생활기록부 관리까지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3학년에 올라와서는 성적 관리와 더불어, 입시의 핵심인 원서 준비에 집중했습니다.
과학고 입시 원서의 첫 단추는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자소서가 좋은 자소서, 그러니까 합격을 부르는 자소서일까요?"
그 해 입학 모집 요강이 아직 나오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아이는 과거의 모집 요강을 바탕으로 자소서 문항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생전 처음 써보는 자소서 앞에서, 아이는 이내 막막함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저 역시 자소서를 써본 지 너무 오래된 데다, 과학고 입시에 맞춘 자소서는 처음이었기에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소서 쓰는 법'이 포함된 책을 몇 권을 골라 함께 읽으며, 자소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소서는 결국 아이가 스스로 써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동시에, 다른 아이들처럼 자소서 컨설팅을 받아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교장선생님께서 교육청 진로진학 담당관을 특별히 초청해, 자사고나 특목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자소서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럭키비키(lucky vicky)였습니다.
교육청 진로진학 담당관의 '자소서 쓰는 법' 특강은 학교 시청각실을 학생과 학부모로 가득 메울 만큼 성황리에 진행되었고, 내용 또한 매우 유익했습니다. 더 인상 깊었던 점은, 이 특강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담당관님은 특강 후, 아이들에게 직접 자소서를 써보라는 과제를 내주셨고, 일주일 뒤 다시 학교를 찾아 아이들이 제출한 자소서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피드백까지 해주셨습니다. 쉽지 않았을 텐데도, 그 수고를 기꺼이 감내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는 자소서 쓰는 요령을 조금씩 터득하며, 과학고 입학을 위한 자소서 작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귀에 쏙쏙 들어오는 발성과 구체적인 사례를 곁들인 특강 덕분에, 과학고에 맞는 자소서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고, 아이의 자소서를 함께 고민하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두 번의 컨설팅만으로 과학고 맞춤형 자소서를 술술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조차 몰라 막막해하던 아이에게, 그 컨설팅은 단비 같은 시간이었음은 분명했습니다.
그 컨설팅 이후, 아이가 자소서를 준비하며 거쳤던 과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학교가 원하는 인재상 파악하기
자소서를 쓰기 전, 모집요강과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학교가 어떤 인재를 선발하고자 하는지부터 살펴보았습니다. 인재상이란 곧 그 학교의 선발기준이기에, 자소서 전체의 방향을 잡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아이가 희망했던 학교의 인재상은 '창의인, 도덕인, 봉사인'이어서, 자소서 문항마다 이 요소들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둘째, 자신의 활동을 되짚으며 자소서 문항에 맞는 이야기 구성하기
이후 아이는 그동안 해왔던 활동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며, 각 문항에 어울리는 경험을 골라내고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미리부터 자소서를 염두에 두고 활동해 왔음에도, 꼭 맞는 스토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경험을 해 두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셋째, 초안 작성하기
아이가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은 제한된 글자수를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자소서를 처음 써보는 아이는, 시작부터 글자수에 매여 좀처럼 진도를 나가질 못했습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아이 아빠가 몇 가지 조언을 건넸습니다.
자소서 문항별로, 우선은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써볼 것
다 쓴 뒤, 각 문항에 핵심 키워드(인재상 등)가 담겨 있는지 확인할 것
핵심 키워드가 없다면 다른 경험으로 다시 써보고, 있다면 반드시 필요한 내용과 덜어낼 수 있는 내용을 구분해 볼 것
문항별로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내용만 남겨 1차 초안을 완성하되, 이 단계에서는 글자수는 신경 쓰지 말 것
글자수에 얽매이지 말고 먼저 써 내려가라는 아빠의 조언 덕에, 아이의 자소서가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퇴고하기
자소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했는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그리고 어떤 성장이나 변화를 이루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 사례만 써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패한 경험 역시, 충분히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학 탐구 활동으로 한 확률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면, 그 과정을 숨기기보다 상황을 설명하고,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며,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나아가 앞으로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쓰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소서 퇴고 과정은 단순히 글자수를 맞추는 작업이 아니라, 이런 중요한 요소들이 자소서 안에 제대로 담겨 있는지를 점검하는 단계였습니다.
3월부터 시작된 자소서 작성은 초안부터 제출용 원고를 완성하기까지 거의 6개월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바쁜 중학교 3학년 생활 속에서 틈틈이 작성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습니다. 학기 중에는 시험과 수행평가, 숙제 등 바쁜 일정으로 인해 손도 대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였지만, 아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소서를 붙들고 애를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 역시 의견을 보태긴 했지만, 아이 아빠의 도움이 특히 컸습니다.
아이가 스스로의 기준에 맞춰 작성한 자소서를 아빠에게 보여주면, 아빠는 내용부터 문장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살펴보고 피드백을 해주었고, 아이가 그에 맞춰 다시 수정하면, 함께 확인하며 의견을 건네는 날들이 수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아빠의 피드백은 문장을 대신 고쳐주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담겨 있는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왜곡되지 않았는지를 점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런 반복된 코치와 이른 준비 덕분에, 아이는 과학고 모집요강이 확정되고 입학원서를 접수하기 전 이미 자소서를 완성해 둘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자소서는 남들이 보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일 수도 있는 글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애썼고, 아빠 역시 피드백을 하면서도 가능하면 어른의 코멘트가 아이의 글 쓴 의도를 덮어버리지 않도록 끝까지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과학고에 합격한 이후, 간혹 아이의 합격 자소서 내용을 궁금해하며, 자소서를 공유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아이가 자소서를 쓰던 당시, 다른 아이들은 과연 어떤 자소서를 썼을지 궁금했던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자소서를 써 내려가는 과정을 함께 겪으며 느낀 것은, 자소서에는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중학교 생활을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면, 비록 다소 어설프고 투박해 보일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좋은 자소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흔여섯 번째 고슴도치 시선] 아이가 3학년이 된 뒤, 과학고 입학설명회에 다시 한번 더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느낌은 중2때와는 또 달랐습니다. 이번에는 학교에서 설명해 주는 입시 절차에 온 신경을 모아 귀 기울였고, "과학고 입학은 중학교 과정 3년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라는 입학사정관님의 말에 살짝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학생과 학부모는 우리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더 중요한 이야기는 그 뒤에 있었는데 말이죠.
"다만, 과학고에 입학한 뒤에는 중3 공부만으로는 벅찰 수 있습니다."라는, 선행의 필요성을 에둘러 전한 말이 핵심이었지만, 당시에는 그 말이 그리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는 두 번째 과학고 입학설명회에서도 마치 처음 방문한 것처럼 학교 곳곳을 꼼꼼히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또 아이스크림자판기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그날도 아이스크림은 품절이었습니다. 이쯤 되니 아이스크림자판기가 혹시 장식용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의심까지 들었는데, 아이는 그 앞에서 또 한 번 다짐을 했습니다. "여기 입학해서 꼭 아이스크림을 먹어야겠어요."
아이는 그렇게 소소한 다짐과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동기를 만들어 가던 아이였습니다.
[다음 이야기] 과학고는 자기주도학습전형이에요!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