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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가 있어야지?!

초등 편

by My Way

'9 to 6'라고 하면, 보통은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인의 생활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저희 집의 '9 to 6'는 밤 9시면 잘 준비를 해서,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아침형 아이의 수면 습관을 뜻합니다.


사실, 저는 아침형 인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 덕분에 그 시절만큼은 억지로라도 아침형 인간으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등 고학년이 된 아이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등교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 동안 참으로 느긋하게 학교 갈 준비를 했습니다. 든든히 아침을 먹고, 화장실 볼일을 보고,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거울 앞에 한참 서 있다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은 뒤에야 집 밖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워낙 일찍 일어난 덕분에 단 한 번도 지각을 한 적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 느긋한 아침 풍경을 지켜보는 제 마음만 괜히 타들어갔다는 것이죠.


솔직히 매일 아침, "왜 이렇게 꼼지락거리는 거야!"라고 잔소리하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벌써 8시네."라고만 말했습니다. 화장실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 답답할 때는 "어디 있니?"라고 아이를 찾는 척하며, 아이가 스스로 서두르게끔 독려했습니다.

제가 매우 현명한 엄마여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침 등교 시간에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아, 하고 싶을 말을 삼켰을 뿐이었습니다.


전학 이후, 또래 엄마들과의 교류가 끊긴 저는, 아침마다 치르는 이 고뇌의 시간을 이미 아이를 다 키운 선배들에게 하소연했습니다. 그런 제게, 선배 언니들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3학년과 4학년은 난이도가 크게 달라져. 초등 4학년이 얼마나 중요한데. 네 아들은 수학 선행 어디까지 했니?"


선배 언니들의 조언을 요약하면, 4학년은 3학년보다 교과 전반의 난이도가 높아지는데, 특히 논리력을 요구하는 국어와 첫 수포자가 나오는 수학에 중점을 두고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이의 생활습관에만 신경 쓰고 있던 저는 그제야 아이의 공부법점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 초등 고학년에도 적합한지 미리 확인했어야 하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사실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된 후에는 제가 아이의 일상에 개입할 부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게다가 아이가 생활 루틴을 제법 잘 지켰기 때문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간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주변에서 걱정 섞인 조언들을 해주시니, 일단 국어 과목부터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선배 언니들의 말에 따르면, 초등 고학년 국어에는 다음 네 가지(?)가 있어야 했습니다.


첫째, 독서 습관

여전히 'Why?' 시리즈를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책들을 읽었습니다.

아이는 다독보다는 정독, 즉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보다는 책을 소장할 수 있게 사 주었습니다.

초등 저학년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아이가 좋아하는 책 외에도 학교에서 보내주는 '추천 도서 목록' 중 1~2권 정도를 아이가 선택해 읽도록 한 점입니다. 저는 '초등 필독서'나 '추천 도서'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았습니다. 다만, 초등 고학년에게 있어 책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사고력을 키우고 스스로 탐구하는 힘을 기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여겨, 다양한 책을 접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둘째, 글쓰기 실력

초등 저학년 때는 하지 않았던 독서 후 기록하기는 주로 학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는 숙제를 열심히 해 가는 편이어서, 좋아하는 책을 읽은 후 기록하는 일을 성실히 해 갔습니다.

독서 기록장 외, 일기도 참 열심히 썼습니다. 원래 일기는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지만, 초등학생 시절 일기 쓰기는 글쓰기 훈련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검사를 받으며 꾸준히 작성을 했습니다.

아이가 독서기록장과 일기를 쓰면, 학교에 제출하기 전에 제가 먼저 확인을 했습니다. 실제로는 맞춤법 정도만 살폈고, 아이가 쓴 글을 함께 보면서 일상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셋째, 발표력

저와 아이 아빠는 내향적이지만, 아이는 저희와 다른 성향을 가졌습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꽤 활발한 아이였지만, 수업 시간만큼은 집중해서 선생님의 가르침과 지시를 잘 따랐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중저음으로 변해버린 아이의 목소리는 그 시절엔 높고 맑았으며, 발음도 정확했습니다. 그래서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또박또박 말을 잘해, 발표력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발표력이 좋아진 데에는, 책을 읽고 이야길 나누었던 저와의 대화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빠와의 일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추후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넷째, 디베이트(Debate)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아이가 국어를 즐기게 된 데에는 디베이트 수업의 영향이 컸습니다.

초등 고학년이 된 뒤, 국어 수업 시간에 논리적 찬반 대립을 전제로 한 토론 수업이 있었는데, 이 수업이 아이에게 꽤 깊은 인상을 준 것 같았습니다.

수업 구조상 어떤 주제든 찬성과 반대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속한 팀이 논리적으로 우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디베이트 수업이 있는 날이면 논거를 찾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곤 했습니다. 논리적 사고력과 발표력, 그리고 승부욕이 어우러진 디베이트 수업은 아이에게 맞춤 수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학교 교육을 통해 디베이트를 접하면서, 규칙을 지키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말하는 태도를 익혔습니다.


돌아보면, 제 아이의 초등 고학년 '국어 공부'는 일반적인 문제풀이 형식과는 달랐습니다.

늘 책을 읽었고, 그 내용을 말과 글로 잘 표현했기 때문에, 따로 '국어 공부'를 해야 한다거나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아이는 네 가지(?)를 고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수학은 어땠을까요?




[스물네 번째 고슴도치 시선] 초등 4학년 때 아이가 받은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4학년 1학기 : 교우관계가 원만하며 친구를 도우며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의리 있는 친구임. 발표력이 뛰어나고 매사 정직하고 온순할 뿐 아니라 예의가 매우 바름. 여러 사람 앞에서 알맞은 목소리로 분명히 자신의 의견을 말함.

4학년 2학기 : 규칙을 잘 지키고 명랑 쾌활하며 탐구 활동에 흥미와 적극성을 보임. 기본 학습태도가 잘 형성되어 학습효과가 우수하며 착실함. 무엇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아이임.




[다음 이야기] 수포자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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